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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읽기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유럽의 식민주의를 경험한 아프리카 흑인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탈식민주의의 선구적인 책이지만, 우리는 이 책의 구체적 역사적 맥락을 확장하여, 피지배집단은 왜 자신들을 억누르는 지배에 동의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한 책으로 읽을 수 있다. 우리들 자신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적) 억압repression은 외부로부터 오는 탄압oppression과는 달리 자기생성적인 성격을 갖는다. 흑인들의 경우, 벗어나기 힘든 열악한 물적 조건과 인종차별적 세계와 그러한 세계관의 영향하에서 흑인들은 자기 부정, 검은 육체에 대한 수치심, 자기비하, 무력감, 백인에 대한 선망과 증오(라는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양가적 감정), 공격적 성향 등을 내면 심리에 키우게 된다. 파농이 더 무서운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식민적) 탄압 자체 보다는 탄압 속에서 파생하기 마련인 (자기)억압과 그로 인한 자기 부정인 것 같다. 자기를 부정하는 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장 정교한 가면도 그 타고난 피부를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비록 그 가면이 타인들의 눈을 보기좋게, 완전하게 속였다 할지라도. 파농은 흑인과 백인의 조우(인종차별주의에 기반한 식민화라는)를 통해서 흑인들(특히 앙틸레스 흑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검은 피부를 부정하며 하얀 가면 (백인에 대한 선망, 동일시를 통한 정신적 표백. 앙틸레스 흑인들은 정신적으로 백인이다)을 자기의 피부인양 오인하게 되는가, 그리고 검은 피부(부정할 수 없는 육체), 하얀 가면(백인화된 정신, 세계관)의 불일치속에서 드러내는 그들의 심리를 파헤치고 있다. 파농은 흑인문제를 인종갈등으로만 보지 않는다. 여기에 그의 심오한 탁월함이 있다. 흑백 평등을 주장하는 열변과 그 투쟁만으로는 개선되지 않는 그 무엇에 파농은 주의를 집중한다. 왜 그랬을까?
지배와 착취로 점철된 경제적 사회적 흑백관계는 피지배자요 피착취자인 흑인들에게 비참한 생활만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 열악한 물적 조건이란 인간 개인의 심리를 구조화하는 위력을 갖는 법. 이 위에 문화와 교육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의 존재를 열등한 것, 혹은 비존재non-being, 무인no-man으로 규정당한다면.....
파농은 흑인들에게서 보이는 존재의 소외, 연속적인 정서적 탈선과 열등콤플렉스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흑인의 삶은 이중적으로 왜곡된다. 첫째는 경제적으로, 다음에는 심리적으로, 즉 열등감의 내면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중심테제다). 파농은 흑인문제에 관해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의 제일 근간은 경제적인 것, 물적인 조건임을 먼저 분명히 하고 있다: "흑인이 자신의 소외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회적 경제적 현실에 대한 즉각적인 이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파농이 시종일관 유물론적 시각과 토대에서 흑인들의 (정신병리적) 심리를 분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다른 학자들 (예컨대 {프로스페로와 칼리반}의 저자인 마노니)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유는 그들의 흑인들의 삶과 심리에 대한 훌륭한 분석을 제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물론적 토대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파농은 흑인들의 심리를 정치하게 분석해 낸다. 이 책의 1, 2, 3장은 동시대 흑인들이 백인 세계에서 취하는 태도에 관한 분석이고, 4, 5장은 식민성과 흑인성, 그리고 마지막 두 장에서는 흑인들의 존재 상태에 대한 병리적이고 철학적인 설명(정신병리와 인정투쟁)이다.
이 모든 분석은 진정한 인간 해방(!)을 향하고 있다. 모름지기 인간 해방이란 인간들 자신의 존재 조건, 즉 외적이고 내적인 존재 조건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를 기반으로 해야만 한다. 유물론 만세!). 20세기는 외적, 즉 물적 조건에 대한 이해만을 기반으로 한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러저러한 물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자신의 내면 심리, 그 구조에 대한 자기 이해, 파농이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된다: 진정한 해방을 향한 전제 조건은 자기 이해에 기반한 내적 해방이다. 그런데 이 내적 해방이 모든 해방의 형태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성취하지 못하면 (어떤 적을 겨냥하는) 자유를 향한 투쟁은 상당부분 헛수고가 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