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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 페미니즘과 기술과학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14
다나 J.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 갈무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여성주의 과학사가인 다나 해러웨이의 여러 저작들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저작이다.
해러웨이는 1985년에 발표한 유명한 글 「사이보그 선언문」에서 과학기술과 금융 테크놀러지를 앞세운 전지구적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여성주의 형상화로 사이보그를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 세력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융합되던 시점에 <사회주의 리뷰>(Socialist Review)에 실렸던 「사이보그 선언문」은 출판 이후 과학기술에 대한 여성주의적 개입의 지평을 열어주었으며, 다른 한편 과학기술 및 매체의 변화에 열광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사이버 페미니즘의 선구적 논문으로 읽혀왔다. 사이보그는 원래 2차대전 때 발명된 것으로 그 기원상 매우 남성적인 전쟁기술이었다. 해러웨이는 가장 남성주의적인 전쟁과학기술인 사이보그를 전유하여 여성주의 형상(feminist figure)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런 점에서 「사이보그 선언문」은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에서, 즉 지배 이데올로기와 남성중심적인 과학담론의 한 가운데에서 여성주의적 개념과 형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사이보그 선언문」은 선언문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여성주의 형상화로서 사이보그의 주체입장과 정치학에 대해서는 자세 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겸손한 목격자>는 과학연구를 문화연구로 접근하면서, 최근의 생명공학을 포함한 하이테크 시대의 문화, 하이테크의 작동방식을 분석하면서 테크노문화가 우리 시대 지닌 정치적 이론적 함의점을 찾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테크노문화가 촉발한 상상력을 여러 사진, 예술작품과 과학연구를 연결한다는 점. 이 점이 이 책에서 가장 탁월하고 흥미로운 부분일 것이다.
해러웨이는 영장류 학자로 연구를 시작하였다. 미국이 전지구적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하던 무렵 미국에서 영장류학이 발흥한 것을 해러웨이는 우연으로 보지 않는다. 첫 저작 <영장류의 비젼>(Primate Visions)에서 해러웨이는 다른 류의 동물을 포함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던 영장류학은 20세기 초반 미국의 확장주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치밀하게 논증한다. 그녀는 영장류학부터 최근의 사회생물학이 미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분석하면서 2차 대전 이후 새로이 등장한 생명과학들의 사회적 목적은 복잡한 통신, 커뮤니케이션 체계들을 통해 대중의 생명과 생활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공학(engineering)이 20세기의 여러 생명과학들을 이끄는 논리가 되는 것은 바로 과학, 테크놀러지, 커뮤니케이션 체계들의 “효과적” 사용을 통한 사회통제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통제가 그 은근한 중심으로 설정된 여러 공학들이 생산하는 담론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간” 개념에는 여성, 유색여성, 노동계급, 자연이 공동의 행위자로 설정되지 않는다. “공동-행위자”란 말로 해러웨이가 의도하는 것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지배 세력 역시 한 세력일 뿐이며 유적 존재로서 인류 역시 이 세계의 한 부분일 뿐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또한 “공동행위자”란 용어는 자연으로 규정되는 주체들, 그리고 (유색)여성, 노동계급, 하위주체 등이 비록 주류 담론과 사회공학에서 주변화되긴 하지만, 남성중심적인 백인 가부장 자본주의의 담론과 통제의 사회공학에 의해서, 지배의 작용을 받는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행위주체성(agency)을 일상적으로 실천한다는 점을 표현하려는 용어이다. “공동행위”(co-action)란 인간의 행위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 휴머니즘적 담론을 비판하는 용어이다. 즉, 인간의 작용(human action)이외도 여러 비인간적 존재들의 작용 역시 이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작용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겸손한 목격자>는 위에서 말한 것들을 넘어 우리가 최근의 테그노과학과 테크노문화를 어떻게 활용하고 개입할지를 조단조단 보여주는, 통찰가득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