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새벽 - 다시 쓰는 인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외 지음, 김병화 옮김, 이상희 감수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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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앞서, 책을 읽고 난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의 저자를 사랑하게 되었다(책의 작가들과 쉽게 사랑에 빠지는 타입이긴 하다만). 학문의 위대함을 일깨우면서, 실로 오랜만에 학구열에 불을 지피는 그런 책이다. 얼만큼이냐면 석사 학위를 하며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학계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미뤄왔던 박사 과정 준비를 진지하게 재고할만큼이었다. 물론 이는 본인이 사회과학도 출신(?)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점.. 아무튼 묵직한 무게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부신 지적 자극의 세계에 풍덩 빠져 읽었다.


<모든 것의 새벽>이라는 제목과 동이 트는 듯한 표지와 다르게 이 책은 상당히 학술적이다(그렇지만 책의 두께가 이러한 제목과 표지의 서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상쇄한다. 매우 적절한 표지와 제목이라는 뜻). 실제로 이 책의 여러 챕터는 저자들이 이전에 발표했던 논문에서 내용을 가져온 것이라 한다.

책의 띠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문명과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을 송두리째 뒤엎는 문제작". 그리고 책의 뒷표지에는 리베카 솔닛의 추천사가 적혀있다: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책. 역사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을 해방시킨다. 인류는 처음부터 창의적인 존재였으므로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만 행동하고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사실 위 두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니 위의 두 문장이 한 치의 과장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로, 두 데이비드가 공동으로 집필한 인류학 저서다. 그레이버는 현대의 사회와 경제, 정치 구조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아주 저명한 인류학자다. 특히나 인류학이 현실 사회의 변화를 위한 실천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창한 학자이다. 한편 웬그로는 고고학자로, 농경과 문자의 기원, 고대 예술, 초기 도시와 국가의 출현 등 인류 문명의 근원에 대한 주제로 연구해왔다고 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이 두 학자가 기분 전환을 위해(???) '인류의 역사에 관한 대화'를 하다가 완성된 책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기존의 역사 서술자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증거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해왔다고 비판한다. 특히 “소규모 사회는 평등하고, 대규모 사회는 반드시 왕, 대통령, 관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통념은 과학적 근거라기보다, 오히려 역사적 편견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문명’, ‘역사’, ‘사회’에 대한 믿음들이 사실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외친다.

최근 축적된 방대한 증거들이 이러한 주장에 탄탄한 뒷받침을 이룬다. 고고학, 인류학, 그리고 그와 관련한 분야들에 최근 축적되어 온 증거들은, 인류가 "지난 3만 년의 세월 동안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설명 방향을 가리킨다"(책의 14쪽).

그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1) 농경 등장 전의 인간 사회가 소규모의 평등한 무리로만 이뤄지지 않았으며, 2) 농경 출현 이전 수렵 채집인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했으며, 일종의 정치적이고도 사회적 실험이 다양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한, 3) 농경의 발전으로부터 사유재산 제도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인류 사회가 지금과 같이 불평등해졌다는 명제 또한 근거가 없다.

저자들은 천 쪽이 넘는 이 벽돌책의 많은 부분을 ‘계층적 사회로의 선형적인 발전’, ‘문명을 위해 자유를 희생해야 했다는 믿음’, 그리고 ‘자본주의가 필연적인 사회 체계’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데 할애한다. 이는 결국, 계몽주의 철학에 뿌리를 둔 서구 중심적 세계관이 인류의 과거를 하나의 단일한 서사로 재단해온 결과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풍부한 사례를 토대로 기존 문명론의 토대를 흔들고, 서구적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역사를 과연 ‘누가’, ‘무엇을 중심으로’ 써왔는지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다.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결코 단선적이고 불가피한 경로를 따라 흘러온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의 새벽>은 우리가 지금까지 진리처럼 받아들여온 많은 통념들, 즉 '문명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자유의 희생을 요구했고,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최종적 체계라는 믿음'이 모두 재검토되어야 대상임을 시사한다. 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역시 유일한 길이 아니며, 다른 삶의 방식과 사회 구조에 대한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힐링 도서’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러나 내가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책보다도 나에게 힐링과 위안을 선사했다... 기존의 문명사 담론은 농업혁명이 인류 사회의 질서를 만들었고, 그 연장선에서 결국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인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절실히 감각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넘어서야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수천 년 전의 수렵채집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른 가능성은 없다’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렵채집 대 농경, 국가 대 무정부, 발전 대 정체라는 이분법을 넘어, 인간은 늘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얼마 전에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읽기 시작했다. 과학적 회의주의 학자로 유명한 마이클 셔머가 편집장인 회의주의 과학 잡지 '스켑틱'에서 10주년을 기념하여 베스트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마이클 셔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이런 예문이 나와 있다. "모든 회의주의에는 긍정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 회의주의적 논변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전적인 확신 같은 것 말이다."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하고 있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 중 스켑틱 편집장인 마이클 셔머의 서문 중


마이클 셔머에 따르면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한다. 하지만 단순히 불합리한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는 진보를 이룰 수 없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다음을 이끄는 뭔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상상력과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바로 그 “그다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부정과 회의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가능한 사회에 대한 상상과 실천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 책은 올해에 읽은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가닿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계절적인 이합집산의 패턴은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스톤헨지에 왕과 여왕이 있었다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왕과 여왕이었을까? 어쨌 든 그들의 긍정과 왕국은 한 해에 두어 달 동안만 존재했으며, 다른 시 간에는 견과류 채집인들과 가축 몰이꾼들의 작은 공동체로 흩어졌을 것이다. 노동력을 소집하고, 식량 자원을 저장하며 수많은 상시적 사용인들을 먹여 살릴 수단을 가졌는데도,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왕족은 어떤 왕족일까? - P155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분명 그것을 현대가 아니라 구석기시대의 시점에서 보아야 하고, 어떤 부르주아 영장류 인간이라는 상상 속 종족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화 창조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버린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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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 전쟁 - 리튬, 구리, 니켈, 코발트, 희토류 미래경제를 지배할 5가지 금속의 지정학
어니스트 샤이더 지음, 안혜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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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든 우리는 탄소중립을 위해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내연기관차는 전기차로 바꾸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로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필수적인 5대 핵심 금속(리튬, 구리, 니켈, 코발트, 희토류)을 둘러싸고 새로운 국제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로이터의 베테랑 기자인 어니스트 샤이더는 이러한 '금속의 지정학'을 주제로 <광물 전쟁>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책은 미국과 중국의 광물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어떻게 국제사회가 광물자원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와 함께, 광물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경제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사실 조금 더 현장감 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책장을 펼쳤지만, 500쪽이 넘는 분량 중 많은 부분을 미국의 핵심 광업 기업들의 이야기에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해서 무지한 나로서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간의 이야기, 그들이 첨예하게 다투는 세부적인 내용들이 기술적으로 느껴져서 읽기에 쉽지는 않았다. 책의 앞뒤에 등장하는 추천사도 모두 기업 관계자들이 썼던데, 관련 업계 관계자라면 이 책을 읽으며 동향도 파악하고,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광물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도 전자기기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광물들이 어떻게 채굴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손 안에 들어오게 되는지는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광물들이 얼마나 많은 자원과 노동을 착취하는지에 대해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생각해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광물자원을 채굴하고 가공, 사용하는 과정이 얼마나 환경을 파괴하는지이다.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 뒤에 숨겨진 이면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인류가 달성해야 하는 탄소중립 과제를 이행하려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수적인데, 그러한 전환 과정이 어마무시하게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딜레마를 뼈아프게 알 수 있었다.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는 책의 표지였다. 책 한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는 광물 표면이 특수코팅처리가 되어있어 질감이 까끌까끌해서, 책을 읽으며 손에 닿을 때마다 광석을 만지면서 읽고 있는 것과 같은, 약간의 4D 체험 효과를 주는 디테일이다.


아직 현재의 기술로는,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 책에 등장하는 금속들을 방대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신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거슬러서도 안될 흐름이다. 저자는 이 금속들이 초래할 엄청난 환경 문제를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지만, 한 가지 간과하는 부분은 화석연료 또한 결코 무해하거나 깨끗하지 않다는 점이다. 화석연료 산업에는 노동 착취, 환경 파괴, 선주민과 지역사회 착취 문제가 켜켜이 얽혀 있으며, 어쩌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손끝에 느껴지는 까끌한 광물 표지를 쓰다듬으며, 나는 이 문제들을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았다.

오늘날 핵심 광물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정학적 재편성은 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질문을 고심하게 합니다. 상동광산은 과거에 문을 닫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문을 여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이 더 많은 프로젝트에 관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하는 토론의 물꼬가 되길 바랍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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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
김보미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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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나이의 멤버 중 해금을 연주하는 음악인 김보미가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 쓴 에세이다. 에세이를 읽는걸 좋아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름의 책 선정 기준이 높기도 한데, 이 책은 락과 국악을 접목한 밴드인 잠비나이의 멤버가 썼다는 것 이외에도, 최근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이승윤이 추천사를 썼기 때문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추천사는 과장되지 않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학창 시절 어떻게 국악을 처음 접하고 발을 들였는지부터 시작해서 밴드 잠비나이의 결성하게 된 계기, 그리고 잠비나이의 일원이자 해금 연주자로서 음악적 외연을 넓혀가면서 동시에 자신을 채워나가는 과정까지, 그야말로 '음악'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몇 년 전 잠시 국악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해금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해금이 어떤 악기인지, 얼마나 다루기가 까다로우며 해금 연주자는 어떤 노력을 들여 소리를 만들어나가는지도 어림짐작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음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고민과 정성은 그야말로 장인 정신 그 자체였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업으로는 삼지 못하고 취미로만 음악을 즐기는 나로서는 저자의 음악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만족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쉬이 감동하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차례 감동을 받았다. 특히 이 책을 잠비나이의 음악을 들으며 읽었기 때문인 점이 큰 듯 하다. 연주자가 쓴 글, 해금과 피리 소리, 거문고와 기타의 선율, 드럼의 비트가 뒤엉켜서 큰 감동을 만든다. 이 책은 무조건 잠비나이의 음악을 BGM 삼아서 읽어야 한다. 권유가 아니고 필수다. 잠비나이의 음악은 대부분 노랫말과 가사가 없기 때문에 배경음악으로 틀고 읽기에도 아주 좋다. (살짝 다른 이야기지만, 환경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 중에 지속가능한 공연에 대한 부분도 있어서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필요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왜 음악을 사랑하는지, 왜 음악 덕분에 미치지 않고 정신 멀쩡한 21세기의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인지, 왜 지출의 상당 부분을 문화예술에 할애하고 있는 건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음악을 한다는 것‘은 나아가 ‘삶을 산다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몸으로 부딪혀 끝내 알아낸 이의 담담한 고백과도 같다고 할 것이다. 끊임없이 한계와 마주하며 싸우고 이겨내고 확장하고,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고, 무척 자주 외롭다고 느끼지만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걷는 길에 동행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 음악과 삶이 아주 닮아 있다. 나는 조금은 다른 길에서 깨닫게 된 것들이지만 각자가 주어진 재능으로 살아가는 길 위에서 깨닫는 모든 감정과 사랑은 우리의 인생의 길 아래에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서로 다른 삶의 어느 순간이 불현듯 나에게 큰 위로로 다가올 수 있음을 해금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알게 되었다. 나의 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하기를 바란다. - P7

개인 연주를 할 때면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편의상 그렇게 분류하지만 나는 전통과 창작이라는 경계를 굳이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라고 답한다. 전통음악도 과거 어느 시절에 창작된 음악이었고, 내가 현재 연주하는 음악도 미래의 언젠가는 전통이 될 것이다. 나에게 두 음악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아니다. 두 음악은 이미 내 안에서 시간을 뛰어넘어 뒤엉켜 있다. (...) 나는 늘 현재를 연주할 뿐이다. - P55

많은 사람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위해 투합하고 혼신을 다하는 모습에 뭉클해졌다. 왜 우리는 이렇게 모여 자신의 최선을 쏟으며 이 추운 날 함께한 것일까. 과연 무엇이 이 고행을 기쁘게 느끼게 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오늘 현장에 모인 이들은 각기 다른 예술 장르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어느 순간 들었던 노래 한 곡이, 어느 순간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때론 삶을 지탱하는 힘을 만들어냈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많은 예술 작품을 보며 자양분 삼아 성장한 이들은 오늘처럼 모여 다시 작품을 만들고 세상에 씨를 뿌리게 되리라.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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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증보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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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지난 해 작고하신 홍세화 선생님이 '빠리'에서 택시운전사를 하며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1970년대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저자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던 중 파리 지사로 발령을 받고 떠났는데, 이후 '남민전 사건'이 터져 파리에서 정치적 망명을 하며 귀국하지 못하게 된다. 생계가 막막해진 그는 당시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였던 택시 운전을 선택했다.

이 책에는 그러한 과정과 함께 택시 기사로 일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조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기억들과 뒤섞여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나 1980년대 파리의 풍경뿐 아니라 이념적 충돌로 인해 경직된 우리 사회가 어떠한 모양이었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덕분에 그 시대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 교과서나 책에서만 보았던 나로썬 그 당시의 풍경을 조금 더 생생히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의 서장이 상당히 흥미롭다. 마치 투어 가이드가 나의 손을 잡고 파리 전역을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을 소개해주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파리의 이모저모를 소개해준다. 마치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오프닝의 홍세화 선생님 버전 같달까..


이방인으로서 머나먼 타지에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높아진 한국 문화의 위상으로 어디서든 한식집이나 한국 식료품점을 찾을 수 있었던 요즘과 달리, '꼬레'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아갔을 이방인의 고독함이 어떠했을지 쉬이 가늠되지 않는다. 게다가 당시의 한인 사회는 더더욱 폐쇄적이었고, 그 속에서 '빨갱이'로 낙인 찍혀 배척당했기에 '삼중적 이방인'으로서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저자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이방인이 베푸는 사소한 친절에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친절은 '똘레랑스' 정신으로부터 나온다. '똘레랑스'는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사실 나도 '똘레랑스'를 전부터 많이 접해보기는 했지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 단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파리를 가장 최근에 방문한 것은 2019년 여름이다.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에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차들 중 많은 경우에 범퍼가 찌그러져 있었다. 파리에선 좁은 골목길에서 주차할 때 앞뒤 차량의 범퍼를 밀어대며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흔하다고 들었다. 그러한 광경을 보며 과하게 질서정연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살기에 꽤나 좋은 곳일 거라 막연히 생각해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러한 문화도 '똘레랑스'로부터 뻗어져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금의 흠집이나 충돌은 큰 문제로 여기지 않고, 서로 간의 불편을 일정 수준까지는 너그러이 감수하며 살아가는 태도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랑스식 똘레랑스가 일상에 스며든 방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똘레랑스'는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발전되어온 가치이며, 수백 년의 시간에 걸쳐 프랑스인들의 일상 곳곳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반면 우리 사회는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높은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사회를 일구어 냈다. 척박한 땅에서 벼농사를 짓던 조상들의 집단적 생존 방식이 사회 깊이 스며든 것이다.

그렇기에 프랑스식 똘레랑스를 지구 반대편의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똘레랑스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정신이다. 물론 홍세화 선생님이 살던 시절보다는 민주주의와 사회 전반이 한층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다름’에 대한 여유와 ‘실수’에 대한 너그러움이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그런 오늘의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곰곰이 되짚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빠리에서 나에겐 경계와 불신과 무관심의 시선밖에 없었다. 그 중에 프랑스인들이 보내는 무관심의 시선이 가장 따뜻한 것이었다. 내가 이른바 프랑꼬필르(francophile, 프랑스를 좋아하는 사람)가 되었다면 그것은 한편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 P81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합니다.
- P374

프랑스의 개인은 권력에 대해 똘레랑스를 갖고 있음에 반해 한국의 개인은 똘레랑스 없이 다만 권력으로 강제되고 희생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권력은 사회와 역사에 책임을 지는 데 반해, 한국의 권력은 그 현대사가 증명하듯이 역사나 사회에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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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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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는 영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맥스 디킨스가 결혼을 하기 위해 신랑 들러리를 찾다가, 본인에게 신랑 들러리를 할만한 친밀한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남성 간의 우정에 대해 탐구하는 에세이다. 


저자는 본인이 경험한 남성들의 우정과 문화가 왜 이러한 양상을 띄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꽤나 다양한 전문가와 관련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우정과 관련한 서비스(?)들도 체험해 보면서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저자의 자기반성 능력과 메타인지 통찰력이 상당하여 읽으며 무릎을 자꾸 탁 치게 되었다.


이론서는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상당히 뼈가 있다. 책은 결국 남자아이들이 유아기-아동기를 거쳐 청소년기까지 지속적인 양육과 교육을 받으며 억압-소외-무감각의 3단계로 감정을 무디게 하는 연습을 하면서 애착에서 멀어지는 방식으로 사회화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에서 소위말하는 '성공했다'라고 평가되는 지위에 오르기에 적절하다. 다시 말하면, 남자아이들은 자신과 타인을 정서적, 심리적으로 분리하면서 성취를 지향하기에 더 유리한 방식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그 결과로 여자아이들에 비해 깊은 유대관계를 맺지 못하고, 피상적이며 유머로 점철된, 보다 얕은 인간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의 우정은 대화(예: 카페나 맛집에서의 만남)를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남성의 우정은 행위(예: 축구와 같은 여가 활동)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책의 내용은 내가 그동안 '젠더'와 관련하여 가졌던 많은 의문을 해소하게 했다. 이를테면 얼마 전 읽기 시작한 <불안 세대>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나 어릴적부터 스마트폰과 SNS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 전의 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의 불안 증세를 겪는다. 특히 여자 아이들이 불안 증세를 보일 확률이 훨씬 더 높은데, 그 이유로 다양한 복합적인 젠더 요소와 맥락이 자리하겠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양육과 교육 방식이 성별 격차를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 유추해볼 수 있다.


동시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특히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이전과 달리 여가의 많은 부분을 타인이 아닌 혼자서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며 보내게 된 현대인들에게 "관계"란 무엇일까, "우정"이란 어떤 것일까 고찰하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책은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주요 문제의 핵심을 통과하고 있으며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영국식 블랙 유머를 통해 분위기를 중화시킨다. 덕분에 읽는 데 부담이 없었던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 생각한다. 웃겨서 낄낄대며 읽었다.


아울러 책을 읽을 때 늘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선 이 책의 표지가 썩 마음에 든다. 통통 튀는 색감과 함께 멀리서도 제목이 잘 보이는 폰트가 꽤나 볼드하면서도,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한켠에 넣어 볼드함을 살짝 중화했다. 원문은 "Billy No-Mates"로, "친구가 없는 빌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더 잘 읽힐 수 있도록 바꾼 제목인 듯 하며 표지와 적절히 어우러져서 마음에 든다. 표지 또한 원서 표지보다 우리나라 번역판 표지가 미감이 백배는 더 좋다.


남성들이 실용서를 많이 읽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지하철에서 더 열심히 읽었다. 실용서의 얼굴로 위장한 이 책이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길 바란다.

*도서 제공: 창비

토요일 아침에 내가 조깅을 한답시고 나가서 병든 여우처럼 발을 끌며 걸을 때면, 자전거 동호회 부류의 남자들이 떼를 지어 내 옆을 쓱 지나쳐 간다. 이들은 공력 최적화 헬멧과 랩어라운드 곡면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1파운드 숍에서 산 듯한 파워레인저 원색 쫄바지 차림으로 자전거에 구부정하게 상체를 오그리고 앉아 줄지어 이동한다. 이들은 ‘한계 출력‘ ‘파워 출력‘ ‘페달링 회전수‘ 등에 대해 너무나도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눈다. 그들의 즉흥적인 떼 안무에서는 친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얼굴만 한 선글라스 뒤에 본인을 감춘다. 이들에겐 독립성과 상호의존성이 공존한다. 함께 모여 있는 가운데 어딘가 분리되어 있다. - P195

나오미는 깊은 근심과 가장 어둡고 광적인 생각들을 발가락 사이에 끼고 다닌다: 그리고 밤에 침대에 누워 몸이 수평 상태가 되면 발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모든 것들이 중력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그것들이 나오미의 머리로 흘러들어가고, 다시 입을 통해 분사된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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