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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 상품으로 소모되는 아이들에 대하여
전다현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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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 중학생이 되었을 때 어느 2세대 아이돌 그룹의 팬이 되며 케이팝 세상에 입문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케이팝 세상의 이면도 접하게 되었다. 당시의 아이돌 그룹들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다 교통사고를 당하기 일쑤였으며, 기획사들은 대부분이 1020 여성인 어린 팬들을 돈벌이 수단 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한편에선 아이돌의 사생활을 따라다니는 팬들이 과도한 사생활 침해와 아이돌 멤버에 대한 집착으로 범죄를 저지르다가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중학생이던 내가 고등학생을 거쳐 성인이 되었고, 어느덧 삼십대 초반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지금 케이팝의 위상은 당시의 내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이 올라갔다. 한편, 그동안 케이팝 산업에 산적한 문제들은 얼마나 나아지거나 바뀌었을까?

“여자 연습생 열 명 중 여덟 명은 월경을 안 해요.”라는 문장으로 본문을 시작하는 <케이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은 연습생, 전/현직 아이돌과 업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하며 케이팝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책이다.


책은 아이돌 연습생의 학습권과 건강권 침해부터 부당한 계약,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에 아이돌 및 관계자를 자발적으로 내몰아가는 환경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구체적인 증언과 데이터로 폭로한다.

지난 약 1n년 동안 팬으로서, 그리고 ‘국민 프로듀서’ 시절을 거쳐 최근까지 '스타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며 케이팝 산업을 보아온 사람으로서 대부분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그 심연을 낱낱이 까발리는 증언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심히 어지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연습생과 아이돌에 대한 착취는 '개인의 선택' 문제로 치부되고, 이에 따라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성공을 위해 개인의 권리 유예를 당연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산업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런 의미에서 케이팝 산업은 유달리 더 신자유주의적이다. 성공과 경쟁, 효율이 모든 윤리를 압도하고, 인간의 몸과 감정은 자본의 논리로 계산된다.


이렇듯 케이팝 산업이 얼마나 신자유주의적이며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해괴한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산업이 우리나라가 가진 온갖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 문제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책은 '팬'과 '아이돌'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는 다루지 않았는데 이 점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케이팝 산업을 둘러싼 문제는 이 책에서 언급된 것 이외에도 산적해있으며 그것을 모두 다루기엔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이 산업은 결국 팬과 아이돌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획사들이) 돌아가고 그러한 관계의 다이나믹 안에서 수많은 문제가 양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관련 종사자들의 입장에서도 들어보고 싶었는데 관련 내용이 크게 언급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도 이 부분을 건드리면 이 책 만큼의 분량이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상당히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여 다루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처음 아이돌 덕질을 시작했을 때와 십여년이 흐른 지금 달라진 점을 생각해보자면, (결국 코어는 비슷하나 여러 부분이 조금씩 변주되어 달라진 것이라 생각은 들긴 하다만..) 과도한 노예 계약이나 아이돌과 팬에 대한 인식은 조금 나은 방향으로 달라졌지 않은가 생각하는 반면, 팬이 소비자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내면화하게 된 것은 안좋은 방향으로 한층 더 나아간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 문제는 특히 엠넷을 선두로 한 프로듀스 101부터 보이즈 플래닛 그리고 그 사이에 양산된 셀수없이 많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한층 심화된 것 같다. 100여 명의 연습생들을 줄세워 평가하면서 '능력'과 경쟁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적 케이팝 신앙이 더욱 공고해졌으며, 그 속에서 팬과 시청자들은 투표권을 가진 소비자이자 심사위원으로, 아이돌은 그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엔터사의 업계 종사자 노동 착취 문제도 심각하다. 대학교 동기 중에 케이팝을 너무나도 사랑하여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의 엔터사에 취직한 중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토록 한국과 케이팝을 사랑하던 친구는 한국의 어느 유명 프로듀서가 운영하는 중소 규모 엔터사에서 1-2년을 울며 버티다가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중국으로 돌아갔다. 나의 또다른 친구도 어느 엔터사 신인개발팀에 취직을 했다가 주말과 밤낮없이 불려나가는 터에 사람답게 사는게 어렵다며 1년만에 퇴사한 후 다른 업계로 이직했다.

말이 조금 길어졌는데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능력'과 경쟁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적 케이팝 신앙 앞에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있으며 이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할 문제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케이팝 산업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가장 극단적으로 압축하고 드러내기 때문에.

이 뿌리 깊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득하다. 책에서도 이러한 케이팝 산업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며 여러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가진 가장 중요한 가치는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 자체보다도(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업계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케이팝의 모순을 기록하고 축적한 데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달 초에 공식 출범한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대중음악' 분과에는 엔터 대표 4사의 대표이사 4명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분과별 전문가 참여를 통해 "예술 현장의 의견을 정책적으로 반영하고 문화예술 생태계 전반의 발전 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기사를 찾아보니 위원장인 문체부 장관은 '소외되는 현장 없이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자문과 소통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대중문화'를 '교류'하고 (그들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k-문화'를) '전파'하려면 부디 이 책부터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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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쑤기미 - 멸종을 사고 팝니다
네드 보먼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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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기후위기의 시대. 전 세계의 국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후위기 문제 해결 방법 중에 '탄소 크레딧' 제도가 있다. 단어만 보면 꽤나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것처럼 들리는 이 제도는 쉽게 말하자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나 기업이 다른 곳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돈을 주고 사들여, 그만큼의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했다고 간주하는 방식이다.

말이 안되어보이는가? 실제로도 구조적 허점이 많아 문제가 많고 제대로 작동이 어려우며, 기후위기의 진짜 문제를 간과하고 문제 해결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영국의 소설가 네드 보먼의 <독쑤기미>는 이러한 현실의 부조리를 풍자한 기후SF 소설이다.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기온이 2도씨 이상 상승하여 기후위기의 임계점을 넘어선 근미래에, '멸종 크레딧'이라는 제도를 기반으로 생물종의 멸종을 사고파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크레딧'을 활용한 환경위기 타개라는 발상이 자세히 보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 이 책에 등장하는 멸종크레딧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선, 개발로 인해 어느 생물종을 멸종시키게 되면 해당 멸종 크레딧에 해당하는 돈을 내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탄소 크레딧도 마찬가지의 구조다.)

또한 개념 자체는 간단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를 실제로 이행하는 것은 복잡한 현실로 인해 구조적 허점이 많으며 거래가 엉망이 되어 다양한 문제점을 양산한다. (탄소 크레딧도 마찬가지다2)

소설에서 조금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신경망 스캐닝 기술을 이용해 멸종 직전의 생물종을 스캔해 해당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면 ‘멸종한 것이 아니다’라고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은 아직 이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 해야할지.. 정말 섬뜩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책의 서사가 독쑤기미를 중심에 두고 흘러가기는 하지만 세계관을 설명하는 내용과 인물들간의 서사 등등 곁가지 내용을 포함한 다른 요소들이 꽤 많아서 독쑤기미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조금 아쉬웠다. 환경이나 독쑤기미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 확 몰입되고 인물들간의 이야기가 나올때는 몰입감이 다소 느슨해지는 측면이 있는 점은 살짝 아쉽기는 하였으나, 이 책은 섬세한 감정선 등의 문학적 요소들보다도 멸종 크레딧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생물종의 멸종에 대해 생태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환경 분야에 몸 담근 사회과학도로서 아주 만족스럽게 읽은 기후SF다. 특히나 경제/금융 제도에 대한 내용들을 SF에 담은 것이 신선하고 좋았고, 작가가 자본주의 시스템과 국제 환경 체제, 환경과 생태 등에 대해 관련 조사를 많이 하고 쓴 것이 느껴졌다. 이런 소설이 국내에서도 번역된 것이 감개무량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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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 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
김정환 지음 / 창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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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광장에서 보냈다. 거리에 함께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이 나라의 미래가 그래도 어둡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가도, 일상에 돌아와 뉴스를 보고 온갖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마주할 때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싶은 괴리감이 밀려왔다. 심지어 우리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이후 광장을 통해 이들을 파면시켰지만, 불과 몇 년 이후 그들보다 어찌보면 더한 일을 저지른 내란수괴를 우리의 손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리지 않았는가(난 그를 뽑지 않았긴 하지만...)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는 이처럼 "축제와 탈진을 오가는(27쪽)", 마치 진자운동과도 같은 일련의 과정이 우리의 역사에서 왜 자꾸만 구간반복하며 전개되는지를 진단한다. 이를 위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극'을 평가한다. 저자는 그 평가를 위해서는 "극의 주제는 무엇인지, 어떤 서사구조를 이루고 있는지, 작품이 관객에게 어떤 미적/정치적 효과를 발휘하는지, 그리고 향후의 공연을 어떠헤 개선할지" 물어야한다고 말한다(22쪽). 이를 위해 사용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상상계'이다.

책에 따르면 상상계는 "이미지들의 방대한 집적이며 이 이미지들이 펼쳐지는 문화적 스크린"이라 볼 수 있는데,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와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 무수한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특정한 상상계의 제약 속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즉, 한국인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나타나는 상상계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제약한다는 것이다(39쪽). 이와 같은 한국의 상상계는 "죽음과 결집이라는 두개의 스펙터클을 양축으로 하여 진행"된다(52쪽).


죽음은 "몸과 몸의 부딪힘이 낳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 사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죽음이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이는 1980년대에 국한되지 않고 최근까지 반복된다. 예컨대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정농단 시위의 최전선에 섰던 일, 그리고 가장 최근의 내란 시위에서도 같은 양상을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처럼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폭발적으로 정점에 치닫는 순간마다 죽음이 핵심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죽음'과 '결집'이라는 스펙터클을 양 축에 둔 한국인들의 상상계 속에서, 역사와 민주주의는 자질구레한 일상이 아니라 예외적인 장면들로 구성된다(119쪽). 여기서 문제는, 그러한 상상계가 오싹하거나 뜨겁지 않은, 미지근한 일들은 민주주의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참혹한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등장하여 민주주의를 구원하고 떠나버리는 메시아로서 민을 상상하고 수행하는 오랜 관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민주주의나 정치가 비일상적인 장면에서만 발생한다는 한국인의 감각은 매일 마주하는 불의와 불합리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우리는 뜨거운 광장의 열기보다, 식은 정치의 일상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민의 마음속 스크린에 가장 먼저 영사되는 장면이 바로 국가의 물리적 폭력에 직면한 몸의 이미지다.

- P86

민은 상자 속에서 모습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고,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생명이 없이 굳어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포효하는 오데사의 사자 석상과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민이 하나의 신체로 결집하며 동원이 이루어지는 이 기적적인 현상은 사람들이 도시의 한 장소로 모여드는 장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같은 도시 내에서도 개별화된 몸으로서 각자의 리듬과 궤적과 동선에 따라 움직이며 엇갈리던 민은 물리적•신체적(physical) 동원이 이루어짐으로써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향하여 움직인다.

(...)

하나의 신체로 결집하기 위해 모여드는 민은 갈가리 찢긴 몸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본류에 합류하기 위해 흘러오는 지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 P255

이렇게 결집한 몸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물결의 이미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상계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이룬다. 광장과 거리가 인파로 가득 차서 넘실대는 바로 이 장면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정점이자 이상적인 순간으로 기억되며, 한국 민주주의는 결국 이 장면을 향해 흘러가는 드라마로 여겨진다. - P256

이제 나는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무대에서 끌어내림으로써가 아니라 누구라도 무대에 오를 수 있게 함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을, 스펙터클이 난무하는 무대 외에는 조명이 꺼져 있는 극장에 들어섬으로써가 아니라 누구나 고르게 햇살을 받는 광장에 나옴으로써 실현된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다시 배우고 몸에 익히고자 한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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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시간 - 안희정 몰락의 진실을 통해 본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속성
문상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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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중요한 자산이 될만한 책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이 책을 필히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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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새벽 - 다시 쓰는 인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외 지음, 김병화 옮김, 이상희 감수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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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앞서, 책을 읽고 난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의 저자를 사랑하게 되었다(책의 작가들과 쉽게 사랑에 빠지는 타입이긴 하다만). 학문의 위대함을 일깨우면서, 실로 오랜만에 학구열에 불을 지피는 그런 책이다. 얼만큼이냐면 석사 학위를 하며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학계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미뤄왔던 박사 과정 준비를 진지하게 재고할만큼이었다. 물론 이는 본인이 사회과학도 출신(?)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점.. 아무튼 묵직한 무게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부신 지적 자극의 세계에 풍덩 빠져 읽었다.


<모든 것의 새벽>이라는 제목과 동이 트는 듯한 표지와 다르게 이 책은 상당히 학술적이다(그렇지만 책의 두께가 이러한 제목과 표지의 서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상쇄한다. 매우 적절한 표지와 제목이라는 뜻). 실제로 이 책의 여러 챕터는 저자들이 이전에 발표했던 논문에서 내용을 가져온 것이라 한다.

책의 띠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문명과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을 송두리째 뒤엎는 문제작". 그리고 책의 뒷표지에는 리베카 솔닛의 추천사가 적혀있다: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책. 역사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을 해방시킨다. 인류는 처음부터 창의적인 존재였으므로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만 행동하고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사실 위 두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니 위의 두 문장이 한 치의 과장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로, 두 데이비드가 공동으로 집필한 인류학 저서다. 그레이버는 현대의 사회와 경제, 정치 구조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아주 저명한 인류학자다. 특히나 인류학이 현실 사회의 변화를 위한 실천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창한 학자이다. 한편 웬그로는 고고학자로, 농경과 문자의 기원, 고대 예술, 초기 도시와 국가의 출현 등 인류 문명의 근원에 대한 주제로 연구해왔다고 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이 두 학자가 기분 전환을 위해(???) '인류의 역사에 관한 대화'를 하다가 완성된 책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기존의 역사 서술자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증거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해왔다고 비판한다. 특히 “소규모 사회는 평등하고, 대규모 사회는 반드시 왕, 대통령, 관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통념은 과학적 근거라기보다, 오히려 역사적 편견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문명’, ‘역사’, ‘사회’에 대한 믿음들이 사실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외친다.

최근 축적된 방대한 증거들이 이러한 주장에 탄탄한 뒷받침을 이룬다. 고고학, 인류학, 그리고 그와 관련한 분야들에 최근 축적되어 온 증거들은, 인류가 "지난 3만 년의 세월 동안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설명 방향을 가리킨다"(책의 14쪽).

그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1) 농경 등장 전의 인간 사회가 소규모의 평등한 무리로만 이뤄지지 않았으며, 2) 농경 출현 이전 수렵 채집인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했으며, 일종의 정치적이고도 사회적 실험이 다양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한, 3) 농경의 발전으로부터 사유재산 제도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인류 사회가 지금과 같이 불평등해졌다는 명제 또한 근거가 없다.

저자들은 천 쪽이 넘는 이 벽돌책의 많은 부분을 ‘계층적 사회로의 선형적인 발전’, ‘문명을 위해 자유를 희생해야 했다는 믿음’, 그리고 ‘자본주의가 필연적인 사회 체계’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데 할애한다. 이는 결국, 계몽주의 철학에 뿌리를 둔 서구 중심적 세계관이 인류의 과거를 하나의 단일한 서사로 재단해온 결과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풍부한 사례를 토대로 기존 문명론의 토대를 흔들고, 서구적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역사를 과연 ‘누가’, ‘무엇을 중심으로’ 써왔는지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다.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결코 단선적이고 불가피한 경로를 따라 흘러온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의 새벽>은 우리가 지금까지 진리처럼 받아들여온 많은 통념들, 즉 '문명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자유의 희생을 요구했고,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최종적 체계라는 믿음'이 모두 재검토되어야 대상임을 시사한다. 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역시 유일한 길이 아니며, 다른 삶의 방식과 사회 구조에 대한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힐링 도서’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러나 내가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책보다도 나에게 힐링과 위안을 선사했다... 기존의 문명사 담론은 농업혁명이 인류 사회의 질서를 만들었고, 그 연장선에서 결국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인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절실히 감각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넘어서야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수천 년 전의 수렵채집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른 가능성은 없다’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렵채집 대 농경, 국가 대 무정부, 발전 대 정체라는 이분법을 넘어, 인간은 늘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얼마 전에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읽기 시작했다. 과학적 회의주의 학자로 유명한 마이클 셔머가 편집장인 회의주의 과학 잡지 '스켑틱'에서 10주년을 기념하여 베스트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마이클 셔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이런 예문이 나와 있다. "모든 회의주의에는 긍정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 회의주의적 논변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전적인 확신 같은 것 말이다."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하고 있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 중 스켑틱 편집장인 마이클 셔머의 서문 중


마이클 셔머에 따르면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한다. 하지만 단순히 불합리한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는 진보를 이룰 수 없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다음을 이끄는 뭔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상상력과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바로 그 “그다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부정과 회의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가능한 사회에 대한 상상과 실천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 책은 올해에 읽은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가닿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계절적인 이합집산의 패턴은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스톤헨지에 왕과 여왕이 있었다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왕과 여왕이었을까? 어쨌 든 그들의 긍정과 왕국은 한 해에 두어 달 동안만 존재했으며, 다른 시 간에는 견과류 채집인들과 가축 몰이꾼들의 작은 공동체로 흩어졌을 것이다. 노동력을 소집하고, 식량 자원을 저장하며 수많은 상시적 사용인들을 먹여 살릴 수단을 가졌는데도,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왕족은 어떤 왕족일까? - P155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분명 그것을 현대가 아니라 구석기시대의 시점에서 보아야 하고, 어떤 부르주아 영장류 인간이라는 상상 속 종족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화 창조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버린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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