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것의 새벽 - 다시 쓰는 인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외 지음, 김병화 옮김, 이상희 감수 / 김영사 / 2025년 5월
평점 :
책 소개에 앞서, 책을 읽고 난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의 저자를 사랑하게 되었다(책의 작가들과 쉽게 사랑에 빠지는 타입이긴 하다만). 학문의 위대함을 일깨우면서, 실로 오랜만에 학구열에 불을 지피는 그런 책이다. 얼만큼이냐면 석사 학위를 하며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학계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미뤄왔던 박사 과정 준비를 진지하게 재고할만큼이었다. 물론 이는 본인이 사회과학도 출신(?)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점.. 아무튼 묵직한 무게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부신 지적 자극의 세계에 풍덩 빠져 읽었다.
<모든 것의 새벽>이라는 제목과 동이 트는 듯한 표지와 다르게 이 책은 상당히 학술적이다(그렇지만 책의 두께가 이러한 제목과 표지의 서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상쇄한다. 매우 적절한 표지와 제목이라는 뜻). 실제로 이 책의 여러 챕터는 저자들이 이전에 발표했던 논문에서 내용을 가져온 것이라 한다.
책의 띠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문명과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을 송두리째 뒤엎는 문제작". 그리고 책의 뒷표지에는 리베카 솔닛의 추천사가 적혀있다: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책. 역사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을 해방시킨다. 인류는 처음부터 창의적인 존재였으므로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만 행동하고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사실 위 두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니 위의 두 문장이 한 치의 과장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로, 두 데이비드가 공동으로 집필한 인류학 저서다. 그레이버는 현대의 사회와 경제, 정치 구조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아주 저명한 인류학자다. 특히나 인류학이 현실 사회의 변화를 위한 실천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창한 학자이다. 한편 웬그로는 고고학자로, 농경과 문자의 기원, 고대 예술, 초기 도시와 국가의 출현 등 인류 문명의 근원에 대한 주제로 연구해왔다고 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이 두 학자가 기분 전환을 위해(???) '인류의 역사에 관한 대화'를 하다가 완성된 책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기존의 역사 서술자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증거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해왔다고 비판한다. 특히 “소규모 사회는 평등하고, 대규모 사회는 반드시 왕, 대통령, 관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통념은 과학적 근거라기보다, 오히려 역사적 편견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문명’, ‘역사’, ‘사회’에 대한 믿음들이 사실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외친다.
최근 축적된 방대한 증거들이 이러한 주장에 탄탄한 뒷받침을 이룬다. 고고학, 인류학, 그리고 그와 관련한 분야들에 최근 축적되어 온 증거들은, 인류가 "지난 3만 년의 세월 동안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설명 방향을 가리킨다"(책의 14쪽).
그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1) 농경 등장 전의 인간 사회가 소규모의 평등한 무리로만 이뤄지지 않았으며, 2) 농경 출현 이전 수렵 채집인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했으며, 일종의 정치적이고도 사회적 실험이 다양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한, 3) 농경의 발전으로부터 사유재산 제도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인류 사회가 지금과 같이 불평등해졌다는 명제 또한 근거가 없다.
저자들은 천 쪽이 넘는 이 벽돌책의 많은 부분을 ‘계층적 사회로의 선형적인 발전’, ‘문명을 위해 자유를 희생해야 했다는 믿음’, 그리고 ‘자본주의가 필연적인 사회 체계’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데 할애한다. 이는 결국, 계몽주의 철학에 뿌리를 둔 서구 중심적 세계관이 인류의 과거를 하나의 단일한 서사로 재단해온 결과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풍부한 사례를 토대로 기존 문명론의 토대를 흔들고, 서구적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역사를 과연 ‘누가’, ‘무엇을 중심으로’ 써왔는지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다.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결코 단선적이고 불가피한 경로를 따라 흘러온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의 새벽>은 우리가 지금까지 진리처럼 받아들여온 많은 통념들, 즉 '문명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자유의 희생을 요구했고,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최종적 체계라는 믿음'이 모두 재검토되어야 대상임을 시사한다. 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역시 유일한 길이 아니며, 다른 삶의 방식과 사회 구조에 대한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힐링 도서’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러나 내가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책보다도 나에게 힐링과 위안을 선사했다... 기존의 문명사 담론은 농업혁명이 인류 사회의 질서를 만들었고, 그 연장선에서 결국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인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절실히 감각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넘어서야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수천 년 전의 수렵채집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른 가능성은 없다’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렵채집 대 농경, 국가 대 무정부, 발전 대 정체라는 이분법을 넘어, 인간은 늘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얼마 전에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읽기 시작했다. 과학적 회의주의 학자로 유명한 마이클 셔머가 편집장인 회의주의 과학 잡지 '스켑틱'에서 10주년을 기념하여 베스트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마이클 셔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이런 예문이 나와 있다. "모든 회의주의에는 긍정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 회의주의적 논변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전적인 확신 같은 것 말이다."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하고 있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 중 스켑틱 편집장인 마이클 셔머의 서문 중
마이클 셔머에 따르면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한다. 하지만 단순히 불합리한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는 진보를 이룰 수 없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다음을 이끄는 뭔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상상력과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바로 그 “그다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부정과 회의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가능한 사회에 대한 상상과 실천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 책은 올해에 읽은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가닿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계절적인 이합집산의 패턴은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스톤헨지에 왕과 여왕이 있었다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왕과 여왕이었을까? 어쨌 든 그들의 긍정과 왕국은 한 해에 두어 달 동안만 존재했으며, 다른 시 간에는 견과류 채집인들과 가축 몰이꾼들의 작은 공동체로 흩어졌을 것이다. 노동력을 소집하고, 식량 자원을 저장하며 수많은 상시적 사용인들을 먹여 살릴 수단을 가졌는데도,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왕족은 어떤 왕족일까? - P155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분명 그것을 현대가 아니라 구석기시대의 시점에서 보아야 하고, 어떤 부르주아 영장류 인간이라는 상상 속 종족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화 창조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버린다. - P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