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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26년 9월
평점 :

고정순 작가님의 그림책 <흑산>은 유배지의 척박함 속에서도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정약전 선생님의 시선과 형제간의 깊은 그리움을 가슴 뭉클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유배지 흑산의 바다는 아득하고 아픈 공간이다. 밤하늘보다 검고 동굴보다 깊은 바다 앞에 섰을 때, 누구나 절망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약전은 그 검은 바다 속에서 수많은 생명의 숨소리를 듣는다. 시련에 굴복하기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아이들과 이웃을 만나며 삶의 이치를 다시 깨달아간다.
"신기한 것을 보면 가장 먼저 불러 보고 싶은 아우야."라는 문장처럼 책 전반에 흐르는 형제간의 우애와 그리움은 참으로 깊고 아련한다. 강진과 흑산이라는 서로 다른 유배지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바다 생물의 생태를 탐구하고 섬 아이들과 배움을 나누는 유배 생활은 형제에게 슬픔을 견뎌내는 당당한 방식이었다. 몸이 어디에 머물든 공부를 않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했던 그 고결한 마음이 보는 마음을 크게 울린다.
그림책의 판형과 텍스트의 배치에도 눈길이 간다.
세로로 긴 판형이다. 그리고 왼쪽에는 흰 면위에 글자만 있다.
그 글자들도 맨 밑에 깔려 있다. 오른쪽에는 어두운 풍경이 짙게 깔려 있다.
한 번 생각해 본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글이 아래쪽에 가라앉듯 낮게 배치된 것은 유배지 흑산이 지닌 시련의 크기, 바다의 깊이, 그리고 인물이 느꼈을 고독과 막막함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은 아닐까?
글 위로 넓게 트여 있는 흰 여백은 말을 아끼는 침묵이자 아우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며 느꼈을 깊으느 한숨과 그리움의 공간이었을까?
어둠 속에 나직하게 읊조리는 글의 배치가 오른쪽의 어두운 풍경과 만나면서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도 배움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편지 속 마음을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켜준다.
정말 영광스럽게도 고정순 작가님의 만남을 파주교육청 주체로 다녀 온 적이 있다. 그 때 작가님께서 몸이 아프시다고 했었다.
책의 뒷표지 작가님의 말씀과도 이어진다.
"몸이라는 유배지에 갇힌 사람이 한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책은 길이 되고 바닷길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에 가슴이 쿵 울린다. 그 때의 감동이 또 다시 파도처럼 밀려 온다.
삶이 우리를 아무리 어두운 곳을 내몰지라도 우리가 타인을 아끼고 배움과 일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더 이상 절망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약전이 흑산의 검은 물결 속에서 발견한 희망처럼,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다정한 온기와 단단하게 살아갈 용기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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