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을까? 그건 이 책에서 대한항공 기장 저자 김동현은 비행과 관련된 33개의 인생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개개인을 삶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그 범위를 확장해간다. 독자는 그 인생을 통해서 개인이 가진 욕망과, 사회의 욕망, 국가의 욕망들 속에 녹아든 비행과 비행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개인의 삶을 휘두르던 사회와 역사를 조망하게 한다.
과학의 발전으로 발명된 비행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국주의시대 물품과 우편물배송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여객기도 등장하게 된다. 세계전쟁 초기 정찰기로 운영되던 것이 경쟁적인 개발로 무기를 싣고 다니게 되고 미사일을 피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희생도 따랐다. 초기 비행기의 불안전함으로 인해 조종사들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이후 젊은 생명들이 전쟁으로 사라져갔다. 전후에도 정적을 제거하고 범죄에 이용되는 등 어두운 일면도 많았다.
346페이지에 담겨진 이야기들이 빽빽하게 담겨있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의 역사 속 이야기들도 소개되는데, 최초의 파일럿 안창남, 영화 <청원>의 주인공 박경원, 독립을 위한 비행을 꿈꿨던 권기옥.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비행역사와 발전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감정이 건드려진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 지어진 이야기로 여겨질만한 사연들의 실제 자료들이 신빙성을 더하고, 지도와 비행경로를 안내하는 그림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름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잘 끌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 사연들에 더 콧등 찡해지고, 더 분노하고, 더 안타까워하면서 역사를 객관적 사실로서만이 아니라 주관적인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하는 말이 귀에 박힌다. "타인의 욕망을 좆다 스스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만큼 공허한 것도 없다"는 말처럼,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책이 마지막에는 의미있는 문장이 되어 남는다. 이 책이 나오기 전 쓰여진 [플레인 센스]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