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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포르투갈 - 산티아고 순례길, 지금이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면
한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11월
평점 :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순례길에서 순례자에게 건내는 응원의 한마디.
순례 중 머물게 되는 마을의 현지인들이, 지나가는 차에서 운전자들이, 아베르게의 주인과 스텝들이 순례자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에 순례자들을 위하는 마음, 배려, 친절이 녹아있다.
저자도 순례중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커플의 이 한마디에 울컥하는 경험을 한다.
오랜 순례길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이 한마디가 순례자들을 오늘 하루도 걸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에는 여러 경로가 있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프랑스길, 이 책의 저자가 다녀온 포르투갈 해안길 그리고 은의 길, 북쪽길 등이 있다.
저자는 10년 전 저술한 「지금 여기 산티아고」에서 프랑스길을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40일 간의 900km의 순례 여정을 책에 담았었다.
이번 책에서는 그 프랑스길 보다는 짧은 총 300km 정도의 포르투갈 해안길을 따라 걷는 13일 간의 여정과 그 순례길 전후로 방문했던 포르투와 리스본의 모습을 담고 있다.
13일 간의 순례길에서 저자는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순례길을 걸으며 인생의 축소판과 같은 순례 여정 속에서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길을 잃고 순례길의 노란 화살표를 찾아 헤매기도 했고, 새로운 만남에 즐거워도 했고 사소한 오해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순례의 시작부터 혼자만의 순례길을 원했던 저자였지만, 인생이 그렇듯 순례길에서도 온전히 혼자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기도 했고 그 벽을 소통을 통해 극복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여행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국 여행의 이유는 현실에서의 결핍을 충족시킨 후 본래의 위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저자는 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간다.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이고 또 새로 태어날 아기의 할머니로서의 자리로.
나도 어릴 적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고픈 꿈을 갖고 있었다. 종교적인 목적을 떠나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정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같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이도 곧 40대를 앞두게 되면서 언젠가부터 마음을 접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환갑의 나이에도 당당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저자의 여정을 보고 나도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 저자의 순례길은 고행의 길이 아니었다. 순례 중 들리는 마을 마다 그 마을의 문화를 즐기고 음식을 즐기고 술도 즐기며 여유로움을 느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함께 여행을 하는 마음이었다.
언젠가 나도 저 포르투갈 해안길의 유칼립투스 나무향을 맡으며 순례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