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는 노화와 치매 전문 의사다.지은이는 건망증이 정상적인 현상이며 한편으로는 건망증이 삶을 유익하게 한다고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망각’하는 것이 어쩌면 축복과도 같다.평소 나는 건망증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외출 직전에 지갑이나 자동차 키를 찾는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주차해둔 위치를 잊어버려서 주차장을 헤매기도 한다.어떤 경우엔 혹시 병이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런 기억들을 잊지 않으려고 속으로 몇 번씩 반복해서 되뇌이며 기억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하지만 이 책에서 지은이는 이런 망각이 자연드러운 현상이며, 심지어는 망각이 선물이라고도 이야기 한다.지은이는 사람에게 부여된 망각이 어떤 결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 인지 영역에 꼭 필요한 선물 같은 것이라고 한다.유익한 기억을 머릿속에 채우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비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인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기억과 망상이 균형을 이뤄야 하고, 그래야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융통성을 발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융통성을 통해서 뒤죽박죽 흩어져 있는 기억들을 통합해서 추상 개념을 추출할 수 있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기억 속에 담게 된다. 그 기억에는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도 있겠지만,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고통을 주는 기억도 분명 있을 것이다. 대형 참사의 현장에 있었거나, 갑작스러운 재난을 겪었거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을 불의의 사고로 잃는 경우 등 잊지 못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몹시 괴로운 일이다. 너무 아픈 기억은 고통 속에 갖혀있는 감옥과도 같다. 이런 아픔을 내려놓기 위해서 망각은 필수적이다.제목처럼 우리는 왜 잊어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책이다.작품 속에서 말을 타다가 떨어져 의식을 잃은 푸네스는 깨어난 뒤에 결코 잊지 않는 흥분 상태의 뇌를 지니게 된다. 이제 그는 한 번 보기만 해도 모두 암기하고 떠올릴 수 있다. 탁월한 인지 능력을 새로 갖게 된 푸네스가 최근 읽은 책의 긴 구절을 술술 외우거나 새로운 언어(심지어는 라틴어도!)를 며칠 만에 습득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대다수 독자가 도입부에서 느끼는 감정은 부러움이다. 그러나 그가 겪는 정신적 혼란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질투는 연민으로 바뀐다. (중략) 안타까운 기억이나 두서없이 이어지는 그 어떤 기억도 고통 받는 불쌍한 푸네스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예전 일에 대해 누군가 물어 오면 설령 그것이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어느 오후의 일이라도 머릿속은 그날의 세세한 것들, 가령 눈에 보이는 구름의 모양이라든가 시시각각 느껴지는 기온 변화라든가 팔다리의 동작 형태들로 가득 넘쳐 나게 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악몽일 수 있음을 우리는 순식간에 깨닫는다. 16p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라면 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끝없이 변하고 더러는 소용돌이치듯 격동하는 세상에서는 기억과 망각의 균형을 이룬 사람만이 적응하며 이상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맙게도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모든 사람,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일정 수준의 망각 기능을 갖고 있다. 망각하지 못하는 정신은 세상을 변화 없이 단조로운 상태로 계속 고정해두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절박함에 마비되고 말 것이다. 8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