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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번역 - 요리가 주는 영감에 관하여
도리스 되리 지음, 함미라 옮김 / 샘터사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음식이나 요리에 관한 제법 진지한 에세이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짧은 호흡의 유쾌한 글들이 컬러풀하고 심플한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아주 맛있는 책이었다. 영화 감독인 작가가 세계를 다니며 만난 음식들과의 추억 모음집이랄까? 어릴 적 친구 콜라비와의 추억부터 시댁의 호박씨기름, 잊을 수 없는 뇌 요리, 고통스러웠던 다도 등등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가득 채워져있다.
우리는 삼시세끼 밥을 먹으며 살아가지만, 모두들 좋아하는 음식도, 음식을 먹는 법도, 추억도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미각의 번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책은 그 수많은 이야기들 중 도리스 되리의 추억을 엮은 것인 셈인데, 특별한 요리들보다 두부, 닭, 피자, 커피 등 평범한 음식들이 등장해서 좋았다. 맛을 알고 있으니 이해나 공감이 쉬웠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이지만 일본과의 교류가 많았는지 일본 음식 문화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녹차, 오니기리, 우메보시, 말차, 다도, 나베모노 등등. 유럽 사람의 시선으로 만나는 아시아 음식들에 대한 인상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식도락에 대해서만 논하는 것이 아니라 채식이나 다도 유기농 농법, 나아가 생명 윤리 등 식재료와 식생활, 그 속에 담긴 철학까지도 자연스레 언급한다. 어찌 먹는 것이 먹는 행위 뿐이겠는가? 단순한 행위 그 너머까지 보는 작가의 통찰력이 이 책을 더 맛있게, '번역'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글이 되게 해주는 것 같다.
"자기 앞에 놓인 그릇 위에 음식이 담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와 협력 그리고 동물, 식물의 희생이 있었는지 식사 때마다 들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