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 판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있으면 나쁘다거나 못됐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별나다고 했다. 엄마뿐 아니라 내가 못마땅할 때도 똑같이 별나다고 했다. 사람마다 제각각 별난 개성들이 있는데,함께 살다 보면 그것이 때로 견디기 힘들 지경이 되곤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할머니는 그렇게 표현했다.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갈등들이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부대낌의 문제인 것을 그분은 알고 있었다. - P62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 P371
내가 잘 먹거나 어른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면 친척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예뻐."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 P59
ㅋㅋㅋ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할머니가위풍당당하게 휘두르는 똥침이라는 특수 무기였다. 똥침은 말그대로 똥을 겨냥한 침으로, 총 모양으로 손깍지를 끼고 양검지를 마주 붙여 바늘을 만든 다음 남의 항문을 불시에 푹 찌르는 놀이다. 무시무시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한국에서매우 흔한, 말하자면 웨지와 유사한 놀이지 무슨 성추행 같은건 전혀 아니다. - P52
늘상 마지막 순간은 마지막이 아닌 척 우릴 스쳐갑니다.그 순간을 한참이나 놓치고 살고 나서야 뒤늦게,그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었구나 깨닫게 됩니다.많은 후회와 미련을 남겨두고 차마 돌이킬 수도 없게 말입니다.운명이란 정말 얄궂지요. -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