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몽골 - 몽골로 가는 39가지 이야기 당신에게 시리즈
이시백 지음, 이한구 사진 / 꿈의지도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이렇게 되어먹지 못하고, 신성모독이며, 보드카에 취하는 게 전부였던 여행이건만 이후 ‘아무 것도 볼 것 없는‘ 몽골에 깊이 함몰되고 말았다. 일부 물정 모르는 이들이 "거기 가 봐야 뭘 볼 게 있다고 한 번도 아니고 자꾸 간대?"라고 묻는다면 "볼 게 없는 거 보러 가는 겨."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 뒤로 여름이면 정기화물처럼 몽골항공에 몸을 싣게 되었다. - P18

고비(Gobi)에 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아무 것도 없다. 하릴없이 나뭇잎 뒤에 숨어서 목이 쉬도록 우는 풀벌레도 없으며, 조잘대며 흐르는 개울도 없고, 한국 사람이 제 안방보다 더 좋아한다는 노래방도 없고, 악어 쇼나 연에 매달려 타는 놀이기구도 없다.
고비는 그렇게 ‘없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럼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 뭘 보러 가느냐고 묻는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러 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곳에 가면 무얼 하면 좋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사람은 무얼 해야 할까‘ 이런 불온한 질문이 가슴에서 뭉글거린다면 서둘러 짐을 꾸려 고비로 날아가야 한다. - P23

서두름이 없이, 그러나 게으름도 없이 터벅터벅 사막을 걷는 낙타를 보면 성지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가 연상된다. - P47

별에 관한 몽골의 설화에 이런 것이 있다.
하늘에는 엄청나게 넓은 초원이 있다. 그곳에도 양떼가 있고, 그를 지키는 목동이 있다. 밤이 되면 하늘 초원의 목동은 모닥불을 피운다. 그리고 잠을 잘 때 몸에 덮는 가죽 덮개를 펼친다. 오래된 가죽 덮개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는데, 그 사이로 모닥불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별빛이라고 믿었다.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이 있을까.
광활한 태허의 천궁에 보석처럼 박힌 별들의 수는 ‘못 헤아릴 수’ 이다. 그러나 도심에서 바라보는 별은 어떠한가. 쇠약한 별빛은 고사하고, 24시간 야식 배달이니 찜질방의 네온사인 불빛에 시들어 버린다. 그마저 즐비하니 가로선 빌딩들에 가로막혀 좌면우고하기 바빠, 고개를 뒤로 꺾고 손바닥만하게 열린 밤하늘을 치켜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몽골의 하늘은 180도 반구로 펼쳐진다. 상상해 보라. 동서남북으로 끝없이 펼쳐진 반구의 하늘에 가득 들어찬 별들의 무리를 발이 닿는 땅 끝부터 반짝이는 별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 막힌다.
엉기히드 부근에서 만난 별들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반구의 하늘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그야말로 검은 공간보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 많았다. 몽골의 설화에 따르자면, 저 하늘 초원의 목동이 덮고 자는 가죽 덮개는 너무 해지거나 좀이 슬어서 온통 구멍투성이임이 틀림없었다. 그 많은 별들이 땅과 하늘이 맞닿은 지평의 시점부터 시작하여 반구를 채우고 도처에서 별똥별이 폭죽처럼 동시다발로 터지느라 미처 탄성을 내지를 틈조차 얻지 못했다. 초원의 여름밤은 구름 한 점 없이 공활하여, 진주를 빻은 듯한 별들을 검은 벨벳 위에 흩뿌렸다.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별들을 보 - P185

자니,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는 되어먹지 않은 노래를 부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어느 게 누구 것인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듯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은 조금만 까치발이라도 디뎠다가는 쟁그랑 소리를 내며 별에 머리를 부딪칠 듯했다. 가만히 벌판에 누워 바라보자면, 온몸으로 사정없이 떨어지는 별똥들에 몸은 이내 전신 타박상을 입고, 가슴에는 영 치유될 수 없는 내상을 입고 마는 것이다. - P187

몽골 여행의 아름다움은 절반이 길에 있다.
길이 어디에 있는가 없다. 그대의 발길이 닿는 곳이 길이다. 말하자면 망망한 초원은 아무렇게나 가면 길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행하는 차들은 앞서 간 차들이 남긴 바퀴 자국들을 따라 달린다. 온통 풀로 덮인 초원에도 차들이 오가며 밟은 자리에는 흰 넥타이처럼 곧게 이어진 길이 남게 된다. 대체로 직선으로 남지만, 때로는 이리저리 구부러지기도 한다. 초록 도화지에 흰 크레용으로 한 줄 그으면 몽골의 길이다. 시력이 닿지 못할 만큼 막막하게 이어진 길을 보면 무작정 걷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지평선 끝으로 난데없는 바다가 나타난다. 점점이 떠 있는 섬이 보이고, 어촌의 풍경을 닮은 야트막한 산의 능선도 가물거린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가도 그것은 닿을 수가 없다. 지르테(신기루)이다. 초등학교 때 읽던 탐험가들의 글 속에나 읽던 신기루가 도처에 널려 있다. 물이 떨어진 채 터덜거리며 걷는 여행자라면 환장할 풍경이다.
사면팔방 아무 것도 눈을 가리는 것이 없으며, 나를 기억하거나 내가 눈치를 보아야 할 사람도 없다. 살아 있는 어떤 생명체도 없이 비어 있는 적멸의 길을 걷다보면 피아가 사라지고, 주객이 소멸한다. 직장상사며, 집에 두고 온 금붕어며, 적금통장과 주식 잔고는 잠시 내려놓기 바란다. 살면서 가슴에 못처럼 박혔던 분노와 증오와 질시와 슬픔을 지나치는 길처럼 던져 버리라. 함께 걷는 동행이 없어도 좋다. 귀에 꽂을 음악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 P221

한국을 몽골말로는 ‘솔롱고스‘라 한다.
솔롱고스라는 말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첫 번째는 몽골말의 ‘무지개‘와 관련지어, 고려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고 예부터 불렀다는 설이다. 두 번째로는 고려시대의 ‘색동저고리‘에서 기인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족제비‘를 뜻하는 몽골말 ‘솔롱‘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심지어 ‘한단고기‘에 등장하는 ‘다물(다물)‘이 고조선과 고구려를 상징하는 말로서, 그 어원이 다섯 가지 오방색에서 기원했으며, 그것이 오색영롱한 무지개나 색동저고리의 빛깔과 이어진다는 주장까지 있다.
이처럼 다양한 설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세 번째 설이다. 몽골학의 세계적인 거장인 프랑스의 펠리오의 말에 따르자면, 몽골말의 ‘솔롱(solon)‘은 족제비과의 동물을 지칭하는데, ‘몽골비사‘에 고려를 가리키는 ‘솔롱가(Solonga)‘는 ‘족제비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 된다. 솔롱고스(Solongos)는 솔롱고의 복수로 ‘족제비 가죽을 가진 부족‘이란 뜻이다. 주로 담비나 족제비 같은 모피로 몽골과 교역했던 당시 고려를 지칭한 데서 유래된 말이라 하겠다. 서역과 중앙아시아에서 부여와 발해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담비길‘이라 부른 것에 비추어 볼 때, 이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 P237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나라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고 믿고 싶어 한다. 사람은 사실을 믿기보다, 원하는 것을 믿는 법이다. 다른 민족이 제 나라를 향하여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고 칭송하는 것에 흡족해 할 뿐이다. - P240

바람에 날리는 모래와 사태가 나면서 내는 소리 때문에 홍그린 엘스는 ‘우는 모래언덕(Duut Mankhan)‘이라고 불린다.
아무 때나 우는 게 아니다. 모래 우는 소리를 들으려면 사구 꼭대기에 올라야 한다. 아래에서 보면 별 것 아닌 듯해 보여도, 막상 사구에 오르는 길은 여간 힘이 든 게 아니다. 두 걸음 오르면 한 걸음이 주르르 미끄러져 내리는 모래 때문에 가파른 사구를 오르는 일은 도로(徒勞)의 깨달음을 얻게 한다.
전날 비가 내려 모래가 단단히 굳었다면 힘이 훨씬 덜 든다. 그러나 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 해발 800 미터급의 모래 언덕을 오르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그냥 오르는 것도 힘이 드는데, 내려올 때 미끄럼을 타겠다고 플라스틱 썰매를 기어이 들고 오르는 이들이 있다.
말리지 말라. 거북이 등 같은 썰매를 들고 올라온 여행지는 막상 정상에 - P281

도착하면 쓰러져 정신을 못 차린다. 그때 재빨리 팽개쳐진 썰매를 타고 내려오면 된다.
홍그린 엘스의 사구에 오르는 일은 놓칠 수 없는 경험이다. 숨이 턱에 차고, 뜨거운 철판처럼 달궈진 모래에 발이 익고, 그냥 미끄러져 내려가고 싶다는 유혹과 무수히 싸우면서 한 발, 한 발 딛고 올라서면 알타이를 넘어온 서늘한 바람이 그대를 맞아 줄 것이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정상에서 바람에 수시로 깎여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래톱을 딛고 서서, 망망한 사구의 바다와, 그 너머의 알타이를 바라보는 장쾌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칼날 같은 모래톱에 오를 때마다 나는 끝없이 하늘로 올라가는 몽골의 장가(오르틴도)를 즐겨 듣는다. 좋아하는 노래를 엠피 쓰리에 담아 사구에 앉아 들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바람이 이내 지우고 말 이름이지만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모래톱에 적어 두라. 바람이 우표 딱지도 없이 그대의 안부를 전하도록.
모든 길에는 샛길이 있다. 비스듬히 누운 모래언덕을 따라 지그재그로 오르면 덜 힘이 든다. 체력이 달려서 사구 너머의 풍경을 만날 수 없는 여행자라면 그 길로라도 오르라. 그러나 가능하면 눈치 보지 말고 정면으로 가파른 모래언덕을 향하여 올라 보라. 일직선으로 달라붙어 오르는 모래언덕의 고행이 있어야 정상에서 만나는 감동이 깊어지는 것이니.
내려올 때는 여러 명이 함께 천천히 모래를 발로 무너뜨리며 내려온다. 발에 무너진 모래들이 저 깊은 곳에서 울어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땅이 쩡쩡 울며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묵중한 모래들의 울음소리를. - P284

따지고 보면 몽골의 초원은 그리 정갈하지가 않다. 먼지와 무엇인가가 반납해 놓은 배설물들의 분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초원을 여행한다는 것은 먼지 닷 도와 가축들의 마른 배설물 가루를 두 되쯤 들이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초원은 질산, 인산, 칼리로 만든 비료가 없이도 비옥해지고, 풀들은 꽃들을 피우는 것이리라. - P287

지붕도 없이 돌로 삼면을 둘러싼 측간은 그야말로 전면이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었다. 아침에 그 측간에 앉아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이슬에 젖은 풀들이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 초원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완전한 배출과 정화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돌 틈에서는 새가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생음악까지 들려준다. 천상의 측간이 따로 없었다. 막상 그렇게 활짝 열려 있으니 누가 그 앞에 얼쩡거리겠는가. 관음증이야 몰래 숨어서 들여다볼 구멍이 있어야 발현하는 것. 초원을 향해 활짝 열려진 측간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상쾌한 변소였다. - P291

몽골 사람들은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텡기스라는 호수를 건너 오는 강가에 자리잡는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바타치칸이다. 몽골족은 바타치칸의 계보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늑대처럼 용맹스럽고 흰 사슴처럼 아름다운 부족이다. 몽골이라는 말은 ‘용감하다‘라는 뜻이다. - P293

내가 가장 먼저 배운 몽골말이 ‘쥬게르‘이다.
쥬게르는 두 번 붙여서 말한다.
쥬게르, 쥬게르!
괜찮아 괜찮아.
낯선 이국말이 내 귀에 익숙해질 만큼 ‘쥬게르‘는 몽골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말이다.
나는 여행 중에 몽골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별로 보지 못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그들은 ‘쥬게르‘를 되뇐다. 차가 빠져서 두 끼를 굶어도 쥬게르! 일행들이 기다리는 목적지까지 달리다가 캄캄한 밤길에 길을 잃어도 쥬게르! 달리던 차의 앞바퀴가 빠져서 굴러가도 쥬게르! 차축이 우지끈 부러져도 쥬게르! 100킬로미터만 가면 된다더니 200킬로미터를 가도 쥬게르…
그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는 그 여유가 막상 지나고 나면 그 말 그대로 ‘쥬게르‘였다.
이 말이 내 귀에 모래알처럼 남게 된 것은 그만큼 내가 괜찮은 일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람에 날리는 모래톱처럼 늘 안절부절 못하고, 시계의 초침보다 더 앞서 서둘러야 하고, 남들이 다한다는 재태크를 놓칠까 노심초사하며, 좌불안석 조급해 하던 생활이 몽골의 막막한 광야에서는 부질없는 노력일 뿐이다. 사교육이며, 청약통장이며, 주식투자며, 출근부나 근무평가도 없는 이 곳에는 ‘쥬게르!‘만이 있을 뿐이다. 반구로 열려져 티끌 하나 숨길래야 숨길 수 없으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에 뛰어 봐야 벼룩이니, 조금 앞서봐야 무얼 하며, 뒤처진다고 별일이 있겠는가.
쥬게르, 쥬게르! - P311

그것은 자연의 엄청난 위력을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유목민들이 얻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 조드와 모래바람과 사막과 혹한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들에는 끝이 있으며, 지나고 나면 괜찮아진다‘는 깨우침이 아니었을까. 사람의 힘을 과신하며 자연의 질서마저 좌지우지하려는 현대인들에게 ‘쥬게르‘란 말은 한 번도 부족하여, 두 번씩 겹쳐 들어야 할 말이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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