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 한 지붕 퀴어 대가족
김현경.나영정.정현희 엮음, 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 / 오월의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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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 김순남은 "불안전한 삶의 핵심은 삶의 장소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며, 강제된 관계에 머물러야 - P9

한다는 것이며, 다른 삶으로의 이동이 봉쇄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가족이라는 제도 및 혈연가족이라는 관계와 불화할 때 바꿀 것인지, 떠날 것인지, 머무를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좌우할 만큼의 절실하고 기본적인 인권이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개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구성한 다양한 관계를 어떻게 호명할 것인지를 열어두면서도, 어떤 가족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권리와 새로운 가족을 재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족구성의 권리로서 정립해왔다. - P10

가족을 구성할 권리의 관점에서 볼 때 무지개집은 가족을 구성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가족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행과 노력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가족은 규정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해주었다. - P11

무지개집은 이성애중심적인 기존의 가족제도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상상되는 장소로서의 집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집과 대비되는 임시적이고 고립된 장소로서의 집도 아니다. 무지개집은 안전, 정체성과 친밀성 실천, 공동체, 비혈연 돌봄망의 공간으로서 다양한 방식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성소수자들의 대안적 주거공간이다. 하지만 무지개집이 성소수자의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공간은 아닐 것이 - P14

다. 이곳의 이야기는 공유와 존중을 통해서 함께 성장하는 삶을 보여주고, 삶에 뿌리내리기가 가능한 공간의 의미와 삶의 정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지개집 이야기를 통해 지속 가능한 장소로서의 집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 P15

제도가 인지하지도 보장하지도 못하지만, 이러한 돌봄망 안에서 서로의 위기를 방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문란한promiscuous 돌봄‘은 바로 이처럼 국가가 허락하고 인정하는 관계를 넘어 스스로 만들어내는 상호 책임을 뜻한다. 이 개념은 오늘날 돌봄이 마주한 다면적이고 심각한 위기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영국의 학술모임 더 케어 콜렉티브The Care Collective가 제안한 것으로, 《돌봄 선언》에서는 ‘난잡한 돌봄‘으로 번역되었다. 에이즈인권활동가 더글러스 크림프가 감염병 위기 시대에 새로운 쾌락의 발명을 통해서 서로를 보호하고자 했던 것을 ‘문란함‘이라고 제시한 데 착안한 개념이기도 한 문란한 돌봄은 국가와 시장이 제시하는 일방향적이고 의무와 소비에 기반한 관계를 넘어서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돌봄을 실천할 것을 추동한다. 무지개집에 거주하는 퀴어들은 ‘문란한 존재‘라는 사회적 차별과 낙인을 경험한 이들이면서도, 이에 대항하는 방식의 돌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이다. 이 비차별적 돌 - P120

봄인 문란함은 퀴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도와 시장이 책임지지 못하는 모두의 삶을 위해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 P121

인생에서 힘든 순간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조건이다. 관계 속에서 산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누군가가 나를 대하는 태도나 대접을 통해서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그러한 순간들을 통해 우리는 사람으로 존중받고 있음을, 사람답게 살고 있음을 체감한다. - P128

성소수자에게 ‘이웃‘과 ‘마을‘은 전혀 다른 말일 수 있다. 편안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관계 맺을 수 있는 이웃들은 이태원, 홍대, 종로의 포장마차, 술집, 인권단체 같은 곳에 있지 ‘마을‘에는 없다. "우리끼리 비밀로 살아도 되는데"라고 말하면서도 무지개집 사람들이 구태여 마을주민으로 어울려 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을에서 이웃을 만든다는 건, 이웃에게 자신을 내보인다는 건 누구에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이 앞에 빌라가 나름 오래된 고급빌라거든요. 예전에 ○○○당 지역의원 했던 사람도 살아요. 그 집의 몇몇 분들은 무지개집 공사할 때 시끄럽다고 매일 민원을 넣었어요. 근데 또 뒷골목으로 가면 다세대주택에 1인 가구들이 좀 사는데 [그쪽에서는] 별 민원이 없었어요. 앞집은 계단실 불이 너무 밝아서 잠을 못 자겠다, 길고양이 밥 주지 마라, 하수구 소리가 시끄럽다, 처음 몇 달 동안 컴플레인을 많이 했고요. (재우)

재우는 "나름 오래된 고급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동네 원주민이자 터줏대감인 것 같았다고 했다. 익숙히 살아온 환경 - P135

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는 메시지, 이 골목에서 무엇이 용인되지 않는지 알려주는 사람들을 보며 무지개집 사람들은 직감했다. "내가 이 동네에 산다"는 주장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 P136

성소수자들이 ‘가족적인 것‘과 어울리고 경쟁하는 건 다소 낯선 일이었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아이로 완성되는 다른 가족들이 자신들보다 더 ‘주민스럽게‘ 보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젊은 애들=1인 가구=뜨내기들‘이라는 통상적인 인식은 ‘동네 주민‘이라는 말이 환기하는 ‘평범한‘ 가족 이미지의 대척점에 있다. 무지개집의 무대가 동네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성소수자 친화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보면 그곳은 반감도 환대도 조화도 분리도 잘 느껴지지 않는, 반응이 유보된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날 무대에 섰던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해석되지 않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가 주민이자 생활인으로서 받아들여진다는 건 한 동네가 퀴어 혐오적 또는 퀴어 친화적이라는 의미 너머에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성소수자’란 낯섦과 ‘주민‘이라는 친숙함 사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접촉이 요구되는 다분히 실천적이고 물질적인 과제인 것이다. - P152

도시에서 지역성을 만들고 다르게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고급빌라, 연예기획사, 교회, 시민단체, 작은 가게, 지역 풀뿌리운동 등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는 망원동에서 다양한 규범과 문화가 경합하는 장소로서의 동네를 만났다. 그러면서 동네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 이웃을 만든다는 것, 주민이 된다는 것 모두가 정치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끼리 비밀로 사는 것‘과 ‘마을에 어울려 사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경험 세계의 격차 또한 체감했다. 마을에 어울리는 경험이 늘어나는 만큼 지역 안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 또한 확장된다는 걸 느낀 것이다. 더 많은 퀴어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소소한 일상을 성취해낼 수 있기를 고대한다. - P156

주거정책은 정부가 구사해온 인구정책의 기조 아래에서 특정한 생애주기와 삶의 형태를 ‘정상‘이라고 상정하거나 기대하면서 추진되어왔다. 인구정책은 인구의 구성과 재생산이 국가와 사회의 재생산에 기여하도록 마련되는 정책인데, 1960~1970년대 발전주의 국가 기조 아래에서는 인구를 줄이도록 하는 가족계획 사업과 연동되었다. 반면에 2000년대 이후에는 저출산·고령사회 구조에 직면하여 국가는 혼인과 출산을 장려하면서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국가 운영 기조에 따라 규제 완화와 시장화를 통한 주거정책을 구사해왔다. - P160

가족구성권연구소는 가족정책이 주거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하는 필요에 대해서 역설해온 바 있다. 가족구성권을 보장하는 가족정책이 시행될 때에야 시민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상호적인 협조와 부양, 돌봄의 행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는 그러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삶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적절한 주거의 마련과 안정된 정주일 텐데, 이는 단지 금전적인 여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거문제는 국가가 제도적으로 어떤 존재와 관계성을 무시하고 보호하지 않는지, 어떠한 삶의 방식과 형태를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지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가치판단은 공적 자금과 자원을 누구에게 어떠한 이유로 투여할 것인가에 영향을 미친다.
‘집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간명한 명제에서 가족을 이루지 않거나 이루지 못하는 많은 이들, 사회적으로 가족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들, 가족을 이루었다가 자의 혹은 타의로 해체 후 위기에 처한 이들, ‘비정상‘이며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낙인찍히는 이들은 쉽게 지워진다. 이들은 - P161

어떻게든 살아가고는 있지만 주거환경이 불안정하거나 안전하지 않거나 물리적으로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안정된 정주는 자유를 보장하는 조건이다.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자유롭게 관계 맺는 것. 이러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소속은 통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집에서 청소년의 위치, 거주시설에서 수용자의 위치가 바로 그렇다. 그렇다면 성소수자가 안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집, 지속 가능한 삶을 보장하는 장소의 측면에서 무지개집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나 자신으로서의 생애 기획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로서의 측면도 중요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 P162

안전하다는 건 집이라는 장소에 기대하는 중요한 감각이다. 그렇다면 안전한 집이란 정확히 어떠한 집을 의미할까? 단순히 보안과 치안의 문제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방범창, CCTV로 대표되는 안전은 집 안에서는 무조건 안전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감시와 치안 권력을 강화하고, 집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루지 못하게 한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집이 안전하다‘고 표현했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안전한 집이라는 감각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안전이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안전감의 시작점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정체성과 일상에 대한 온전한 인정이다. 이것이 결여된 채 추구되는 안전은 무언가를 조심하거나 어떤 행동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크며 또한 누군가에게 보호와 감시를 위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도 인정받는 것도 힘든 한국사회에서 무지개집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거리낌 - P167

없이 드러내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드문 공간이다. 하지만 안전하다는 감각은 정체성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것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안전감의 핵심은 혹여나 퀴어라는 정체성 때문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숨기거나 떠나는 방식이 아니라 갈등을 직면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재난이나 폭력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도 평등해야 한다고, 평등해야 안전하다고 주장해온 인권활동가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안전은 모든 위험을 예방하거나 삭제함으로써 실현되는 게 아니라는 전제하에, 어떤 조건에 있는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차별로 인해서 구조적인 위험에 빠지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퀴어의 안전은 퀴어의 존재 인정을 넘어, 퀴어들이 재난과 불평등의 원인을 제거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공론장에서 얼마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또한 사람들 간의 갈등이 생겼을 때 정체성으로 인해 공격받지 않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된다.
사생활 보장은 숨김이 아니라 존중으로 가능하다. 즉, 자유롭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안전한 집이란 누군가의 보호나 물리적인 장치로 확보될 수 없으며, 집의 구성원들이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는가, 이 공간이 나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느낌을 주는가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는 뒤 - P169

집어 생각해보면 집에서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도 보여준다. 가족관계에서, 특히 집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정체성에 대한 부정과 관계에 대한 통제와 간섭, 능력의 무시가 원인이자 결과이다. 여성 구성원들은 특히 안전에 대해 강조했는데, 이때의 안전이란 집 안에서 신체적 자유로움이 확보되는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무지개집 사람들이 무지개집에 살면서 느끼는 안전과 소속에 대한 감각은 자신이 통합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온전한 존중의 감각이고, 이는 집 바깥에서 성소수자로서 마주하는 삶에도 큰 영향을 준다. 이러한 온전한 존중의 감각은 무지개집이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 P170

‘혼자 살기‘와 ‘함께 살기‘를 한꺼번에 제시하는 공동주택으로서 다양한 세대가 살아가는 무지개집은 사회적 벽에 갇혀 고립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퀴어에게 삶의 장소를 공동체로 확장하고, 특정하게 구획된 시간대에 분절되어 나타나거나 보이지 않았던 삶을 연속적인 시간성의 맥락으로 펼쳐내는 주거방안이다. 무지개집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성소수자들이 노후 준비에 필요하다고 꼽는 주거안정의 문제가 단지 집을 소유하는 방식의 안정을 이루는 데 한정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 엿보인다.
또한 퀴어의 ‘세대 간 차이‘라는 문제는 단순하게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 간의 의식과 가치관, 경험 등의 차이를 좁히는 문제만은 아니다. 세대가 어우러져 산다는 건 ‘성장과 성숙, 나이 듦‘이라는 미래의 삶을 상상할 때 해상도를 높이는일이기도 하다. 함께 살아가는 나이 든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과 ‘한 식구‘가 된 구성원 각각의 삶의 궤적들이 보여주는 입체적인 교차점을 목격하고 이해함으로써 무지개집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나이 듦을 상상한다. 이 집으로부터 시작된 나이 듦에 대한 상상은 또 다른 형식과 토대를 가진 삶으로 향하는 연결점을 중요한 디딤돌처럼 놓는다. 나이 든 성소수자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느 - P177

끼고 자신의 나이 듦을 체감하기도 하는 공간인 무지개집에서는 세대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관계 또한 만들어지고 있다. - P179

‘가족을 이루지 못해서 외롭고 불행하게 늙어갈 것이며 결국은 혼자 죽을 것이다.‘ 성소수자의 삶을 ‘반대’한다는 세상의 말은 늘상 그런 ‘걱정’을 늘어놓는다. 한국사회에서 가족과 직장에 소속되지 못한 자들은 죽어서도 빈소가 차려지지 않고 화환이 오지 않는다. 제사상이 차려지지 않고 애도와 기억이 불가능하다. 앞서와 같은 말은 사실 걱정이 아니라 차별을 정당화하는 말이다. 사실의 진술도 아닐뿐더러 ‘정상성’에서 이탈하여 자유로움을 느끼는 이들에게서 사회적 소속감을 박탈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자유를 쟁취하면서도 서로가 파편화되지 않는 새로운 소속을 만들어냈다. 정체성과 관계와 정주의 측면에서 성소수자가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방법을 상상하고 실현했다. 또한 제도가 보장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관계성을 형성하고 서로를 보호하는 가족실천을 계속해나갔다. 이를 통해 추측해본다면, 성소수자의 주거안정은 소속감과 자유를 확대할 때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존재와 관계가 인정되고 오롯이 기억되는 장소로서의 집, 무지개집은 그러한 집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 P184

무지개집이 대안적 공동체 모델이 될 수 있을지를 다시 질문해본다. 무지개집이 공동체살이의 모범 답안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여전히 진행 중인 프로젝트이지만, ‘싸니까 복지다‘가 아닌, 관계망과 친밀성, 돌봄이라는 ‘복지‘가 존재하는 곳이자 그것이 강점인 공동체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사적인 복지‘는 종종 대안적 돌봄과 교류를 촉진하고자 하는 공동체주택정책을 통해 국내외에서 시도되고 있다. 고령자 가구와 영유아를 양육하는 가구가 어울려 살면서 상호 돌봄을 주고받는 공동체주택 모델인 세대 공존형 주택, 노인과 청년이 어울려 살면서 세대 간 소통과 돌봄을 촉진하고자 하는 공동체주택 모델인 세대 교류형 주택 등의 구상은 실제 사회 실험을 거쳐 그 장점과 가능성을 타진해보아야 할 것이지만, 사회시스템 정비가 선행되어야 할 노인 돌봄과 양육의 문제를 사적인 관계망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성급함을 조심스레 엿보게 된다. ‘교류’와 ‘공존’을 전제로 낯선 사람들을 한데 엮어놓기만 하면 관계망과 친밀성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레 돌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상상은 다소 낭만적이다. 애초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현존하는 수많은 아파트 단지는 왜 공존과 교류의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을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살고 싶은지’를 묻지 않는 주거정책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공공임대, 전세 - P188

(매입) 임대, 사회주택 등 각종 주거지원정책은 직계가족, 형제자매만을 동거인으로 인정한다. 친족관계가 아닌 사람들은 ‘1인 가구‘로서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밖에 없으며, 딱 1인 가구가 살 만하다고 여겨지는 크기의 주택을 할당받는다. 함께ㅊ살고 있었던, 또는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혈연관계나 법적 부부가 아니라면 함께 거주하는 것은 금지된 셈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다른 한편에서는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하겠다며 공유형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제도화된 공유주택은 시민들에게 먼저 1인 가구가 될 것을 요구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과 친밀성과 돌봄을 주고받을 것을 기대한다.
‘무지개집은 무엇보다도 ‘누구와 함께 살고 싶습니까?‘를 먼저 묻는 집이다. ‘함께 살아가봄 직한 사람들‘을 향한 관계적 소망을 주거를 통해 현실화한 곳이기 때문이다. 무지개집에서 사적인 복지가 가능하다면, 무지개집이 대안적 공동체 모델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는 주거·주택 모델의 차원뿐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가족·공동체 실천을 사회적으로 얼마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의 차원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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