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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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정의해 보려고 질문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불완전한 괴물‘이라는 대답이 따라 붙었다. 나라는 존재는 파괴적으로 무능력해서, 자신을 망치는 식으로만 완전해지는 듯했다. 앞으로도 책에 쓰인 대로 망해 가겠지, 충동과 우울을 뭉쳐 공기놀이나 하며 살겠지 싶었다.
스티브 잡스나 에디슨도 ADHD라지만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아이폰이나 전구에 버금가는 발명을 하지 않는 이상, 그들과 동등해진 느낌에 기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희망이 옅어질 때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싶었다. 작가가 한국의 미혼 여성 ADHD이고, 자기애로 가는 걸음마 중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없었다. 세상에는 ‘네가 무엇이든 소중하고 아름답다‘라는 식의 낙관이 유행했지만 내게 적합한 안심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혼자 울던 사람은 쉽게 웃는 방법을 경계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난 괜찮지 않았고, 몇 년째 도망다니며 그저 삶을 유예하는 중이었다.
다른 ADHD들도 나처럼 새하얀 밤과 깜깜한 낮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친근하고 정중하게 안부를 묻기 위하여, 일단 나의 이야기를 썼다. 모자란 글들을 초대장 삼아 전송할 - P10

수 있다면, 나의 해묵은 패배감도 즐거운 파티의 호스트가 될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은 해피 엔딩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내 질환들을 무작정 사랑하려고도 해 보았다. 하지만 긍정은 홍정영역이 아니었다. 책다운 기승전결보다는 내가 여기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살아 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네모난 책장에서 만난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마모시키며 둥글어진다면 그제야 의문 없이 기쁠 것 같았다.
기뻐 본 적이 별로 없어 기쁨을 설계하려는 시도가 낯설었다. 모든 글을 지우고 숨고 싶은 충동에 자주 시달렸다. 하지만 쓰다 보면 슬픔과 삶의 주종 관계가 전복될 것임을 믿었다. - P11

세상은 양쪽으로 봐야 좀 더 재미있는 곳이다. 자꾸 깜빡깜빡 잊고, 아주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는 내가 예전에는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망각이 신이 주신 선물이고, 나는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든 것 없이 가벼운 인생‘은 관점을 바꾸자 ‘잊음으로써 가뿐해지는 인생‘이 되었다. 나는 계속 사사로이 절망스럽겠지만, 그것들이 지속되지 않기에 결국은 행복해질 것이다. - P19

지금 내 좌우명은 ‘뭐 어때ㅑ용‘이다. ‘뭐가 어때요‘가 아니고 오타 그대로 ‘뭐어때ㅑ용,‘ 별 뜻 없지만 그 어떤 규칙성도 찾아볼 수 없는 배열이 내 인생과 닮은 것 같다. 지금도 심각한 열등감이나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저 말을 떠올린다.

ADHD라도 뭐 어때ㅑ용.
또 지각했어도 뭐 어때ㅑ용.
맨날 돈이 없어도 뭐 어때ㅑ용.
끝맺을 말이 마땅치 않아도 뭐 어때용! - P49

ADHD 진단 후, 너무 충격을 받아 내게 쏟아지는 타인의 피드백을 전부 수용하려 들었다. 평판 수집가처럼 굴면 - P100

서 시분초 단위로 뭔가를 개선하려 했다. 하지만 나의 큰 실수는, ADHD가 아닌 모든 인류를 정상인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단지 ADHD가 아닐 뿐 다들 제각기 미쳐 있는 세상이다. 누가 누구에게 충고하고,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럴 땐 우리의 주특기인 ‘잊기‘와 ‘관심 끄기‘를 사용해 안전해지자. 일단 안전해야 행복도 있으니 말이다. - P101

가끔 ADHD란 존재하지도 않고, 약도 치료도 정신과의 상술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쭈그려 앉아 껌 떼던 순간이 떠오르곤 했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는 단체생활을 못 하던 내가, 자기혐오를 방패 삼던 10대의 내가 껌 대신 처방전을 뗐더라면 인생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었다. 지금 여상히 삼켜 대는 알약이 그때도 주어졌더라면 나는 밖으로 나도는 대신 내 안으로 내달렸을지 모른다. 어 - P148

차피 내가 뗄 껌을 뱉는 친구한테 "야, 이 시발새끼야 다시 안 처먹어?"라고 하는 대신, 아주 차분하게 올바른 환경 미화에 대한 의견을 전할 수 있었을지도. 그럼 서른 살의 나는 동창회에 떳떳하게 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ADHD 약을 먹는다고 갑자기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이 되진 않았겠지만 누군가의 상냥한 친구나 딸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 P149

난 패 주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유형의 가족, 친구, 애인, 상사, 부하직원, 동료로서 사람들 곁에 머물렀다. 듣기로 나의 최악은 ‘변할 듯 변하지 않으며 끝끝내 사람을 지치게 하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말은 고의성에 대한 오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부족한 행동에 대고 "너 일부러 그러냐?"라고 물어 댔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미 화가 나 있었다. 그 질문을 들으면 머리 뚜껑을 열고 속을 보여 줘서라도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 P207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정신과에 얼마만큼의 편견을 갖고 있는가? 나를 좋아하니까 편견을 버릴 것인가? 어쩌면 불쌍히 여길까? 혹여 내 불행을 행복의 재료로 삼진 않을까? 그러나 최우선 과제는 남을 빼고 오롯이 나 스스로 ADHD의 수용 정도를 재 보는 것이었다. ADHD에 대한 내 생각이 불분명하면 타인의 반응에서도 모호함밖에 느낄 수 없었다. 위로도 위로 같지 않고, 침묵은 반드시 비난 같았다. 사실 그것은 왜곡이다. 나에게 어떤 위로도 무효하니까, 침묵엔 빈 공간이 많으니까, 내 생각이 타인의 입을 빌어 힘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ADHD를 수치로 여기던 시절엔 누구에게 내 비밀을 털어놔도 개운하지 않았다. - P212

굳이 따지자면 ADHD는 개인정보이니 밖을 나돌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다. 메일 주소나 SNS 계정, 휴대폰 번호를 생각하면 공유 대상을 가리기 쉽다. 가족이어도 싫으면 알리지 않고, 처음 본 사람에게도 필요에 따라 말할 수 있다. 정보의 개폐 유무를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내 질환명을 공지 사항처럼, 자유 게시판처럼, 리뷰 이벤트처럼 다룰 것 같은 사람에게는 말을 아껴야 한다. 적재적소에 말을 아끼면 품을 들이지 않고도 나를 아낄 수 있다.
그럼에도 헷갈릴 때는 마지막 관문처럼 나 자신을 돌아본다. ADHD가 탄로날 ‘뻔‘했을 때, ‘실상은 모르지만 왠지‘ 탄로 난 것 같을 때, 나는 내가 믿던 상대방을 끝까지 믿을 수 있는가? "아무한테도 안 말했어."라는 상대의 진술을 집에 와서 되새기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란 물음들이다. 이런 질문들에 명확히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면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 편이 낫다. 애초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말하고 말한 후에는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 P214

마음만 먹으면, 글 속의 나는 천사나 돌고래가 될 수 있었다. 스님이나 노숙자, 다음 대선의 서른 살 대통령도 가능했다. 반대로 대통령이 되길 거부한 서른 살도 쉬울 거였다. 좀 더 넓게 역사를 망가뜨리며 나를 섞자면, 닐 암스트롱 대신 최초로 달에 간 인간이나 여성 걸리버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하단 생각이 들자, 왠지 절실히도 나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건 이상하게 눈물 나는 감각이었다. 나는 허접하고 추하고 멍청하고 사랑스럽지 않은데 왜 하필 나 자신을 원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남이 되길 원했다면 소설을 시도했을 거다. 하지만 나 자신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에세이를 쓰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를 원했다기보다 나 자신을 구하길 원한 것 같았다. - P217

글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내 경우엔 ‘멋짐을 포기하는 태도‘였다. 글에는 별다른 장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곧 장비가 되었다. 나는 예쁜 글이나 화려한 글을 좋아했지만 그렇게 쓸 수는 없었다. 감수성이나 실력 면에서 가난한 내가 취할 수 있는 강점은 그저 무식한 솔직함 하나인 듯했다. - P218

그래서 나의 부끄러운 글들은 더 시시해지기 위해, 추해지기 위해, 더럽고 서러웠던 기억을 그대로 박제하기 위해 쓰인다. 나쁜 것들은 일단 꺼내어 촘촘히 뜯어봐야만 앞으로 사랑할지 영영 미워할지 결정 내릴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한 번 쓰고 나면, 싫은 것들과 조금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두 번 쓰면 악감정과 나는 데면데면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세 번 네 번이 되면 어느새 온갖 부정들도 놓치기 아까운 삶의 일면으로 체화되는 듯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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