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바로 그 ‘미물‘의 대표적인 존재이다. 사회적 계급이 없어진 시대에 아름답고 건강한 몸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렇지 못한 몸의 극단에 장애인이 있고, 그 가운데 무수히 많은 몸들이 있다. 유약한 몸, 병에 걸린 몸, 추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몸, 가난에 찌든 몸, 그러한 몸을 가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 또한 그 모든 낙인이 빨간 도장으로 새겨진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주 오랜 기간 노력했다. 그 결과 대학에 왔고, 대학원에 들어왔으며, 지금 이 순간도 ‘미물론‘의 객체가 되지 않기 위해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다. 나의 몸, 우리의 몸, - P6
가난과 질병과 추함에 빠져들까 불안해하는 몸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는가? 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장애인은 장애를 결코 극복할 수 없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이미 장애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 나에게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나는 모순된 존재가 될 것이다. 장애를 극복했다면서 왜 나는 여전히 장애인인가.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장애인인 상태로 존재하면서도 내가 세상의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서는 왜 안 되는가. 나는 헬렌 켈러나 스티븐 호킹 같은 사람이 전혀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그렇다. 우리는 대개 자기 삶에 주어진 여러 조건들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외모, 성장 환경, 부모의 가난, 질병, 장애, 성별 등은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종종 그런 조건들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세상은 그들을 가리키며 왜 너희는 그들처럼 극복하지 못하느냐고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극복하는 것만이 우리가 그런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우리의 조건들을 세상의 중심에 오게 하는 도전과 연대, 상상력에 우리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대부분은 아무런 도움 없이 장애와 가난을 극복하고 철저한 자기 관리와 다이어트로 미인의 대열에 끼어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며, 그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 P7
이 세상에서 ‘미물‘로 분류된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쿨하게‘ 세상과 대면해왔다. 장애인들은 장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나는 장애인이지만 얼마든지 행복하고 내 장애를 사랑하며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라고 말하며 살아왔다. 우리가 자기 마음을 단련하고, 타인에게 감사하며 사는 삶은 분명 아름답다. 그런 태도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 작성되고 있는 미물의 목록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나는 이제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끓고 있는 어떤 뜨거운 것들과 정면으로 마주했으면 좋겠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 나아가 이 사회에서 열등하고 가진 것 없는 자로 묘사되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순수함‘, 어떤 모욕과 시선에도 항상 당당하고 ‘쿨해야‘ 한다는 우리 내부와 외부의 요구. 그것들이 정말 우리를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것인가? 장애인 그리고 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는 수많은 ‘미물‘들은 모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존재다.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고, 성공을 욕망하고, 상대의 멸시와 모욕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인간의 욕망과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가 한쪽 뺨을 때리면, 그 힘에 굴복해 나머지 뺨을 내밀면서도 "그래, 나는 참 쿨하고 착한 사람이다" 라고 위안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세계는 병약하고 느린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는 이제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 되고자 한다. 내 피는 지금 이순간도 찬란한 태양 아래서 세상과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세상과 모든 것 - P8
을 걸고 사랑하라고 부추긴다. 절대로 ‘싸가지 없이‘ 굴지 못했던 미약한 존재들, 세상에서 영원히 찾아주지 않을까 봐 자신을 숨겨야 했던 존재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던 존재가 이제 감히 ‘섹시함‘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는 쿨하기(cool)보다는 오히려 뜨거운(hot) 존재가 되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획득한 자만이 ‘야한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야한 장애인이 되려는 자만이 그 권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분명 과거에 비해 진보한 시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 즉 장애인을 비롯해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며 추한 외모와 유약한 체력 때문에 사회의 무대 중앙으로 영원히 오르지 못하는 존재들이 우리 사회의 지하와 구석구석에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의, 아니 우리의 본격적인 ‘무대 등장‘을 위해서 나는 이제 야한 미물들의 시대를 열망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의 내면적 투쟁, 뜨거운 열정과 관용, 연대의 감정으로 타인을 지지해온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했다. 나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가난과 질병과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야한 이야기를. - P9
외부에서 누군가를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은 한없이 친절하고 헌신적이지만 자신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법이다. 그저 잠시 자기 세계의 문제들을 미루어두고 새로운 공간 - P45
의 정취를 즐긴다. 도시인들이 여름 한때 시골 마을에 찾아와 풍경을 즐기며 순박하고 한적한 삶에 향수를 느끼지만 그 마을에 정착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에게 그곳은 ‘풍경‘으로 남아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그 풍경을 현실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바람처럼 휘몰아쳐 왔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외지인들의 방문은 삶의 빈자리들을 뒤로하고 다시 ‘현실‘을 힘겹게 살아내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외지인들의 친절함이 자신을 다른 세계의 인간으로 전제했을 때만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더욱더 멀어지는 두 세계의 간극만을 체험할 뿐이다. - P46
무엇보다 나는 장애를 이해한다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와 지식을 몸에 익히거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한 헌신과 배려에 기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아도, 세상에 대해 특별히 이타적이거나 헌신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데 능숙하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일수록 강력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명륜이와 함께 보낸 고교 생활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사람을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대학에 진학해 온갖 봉사활동을 찾아다니고 진보적인 정치 담론을 떠들어도 내가 전혀 다가갈 수 없는 확고한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내가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 P106
기자들은 남들에게 들려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 계단 앞에서 위를 바라보며 탄식하는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기 원했다. 그래야만 문제가 제대로 부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 내가 어차피 올라가지도 못할 계단 앞에서 하염없이 위를 바라보며 탄식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연출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거짓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비극을 꾸며내 세상을 울리고, 거기서 일정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나는 답답했다. - P115
나는 장애인이 맞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과 "나는 장애인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장애인 중 50퍼센트가 초등학교만 졸업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나의 자부심과 나의 꿈 앞에서 또다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추락 - P116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장애와 아무런 관련 없이 살 수 없을까. 그냥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장애인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의 능력, 직업, 학식, 유머, 경쾌함 같은 것을 갖출 수는 없을까. 그러나 세상은 내게 끊임없이 "나는 장애인이에요. 학교에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요" 라는 말을 듣기 원했다. 그리고 몇몇 선배들이 찾아와 내게 그런 목소리를 함께 내자고 제안했다. 나는 연극 동아리에서 연극을 하고 싶었고, 밴드부에도 들고 싶었으며, 두꺼운 전공 책을 옆구리에 끼고 캠퍼스를 활보하면서 저녁엔 과외를 하고 여자 친구의 집 앞에서 몇 시간이고 그녀를 기다리고 싶은 스물두 살의 신입생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토록 어려운 ‘커밍아웃‘을 강요당해야 하는가. 그러나 내게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나는 연극이나 연애는커녕 기숙사에서 컵라면을 사먹을 수조차 없었다. - P117
장애인은 사회적 소수자들 중에서 최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장애인 인구는 공식적으로 2백만 명이 넘고, 비공식적으로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가 있다. 게다가 장애인의 범주는 확정적이지 않다. 장애와 건강한 몸의 구분은 그 자체가 모호하며 그 가운데에는 무수히 많은 몸의 상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장애인 인권 운동은 사실 특정한 사회 집단의 인권에 대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취약한 몸, 불균형한 몸, 병약한 몸, 노화한 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일반적인 몸에 대한 새로운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장애인 인권 운동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정당성에 동의한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게 해달라는 주장은 동성애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게 해달라고 하거나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병역 거부권을 달라는 주장보다 대중적으로 훨씬 더 온건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그 권리를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멈췄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위에 참여한 비장애인들을 연행한 후 "왜 순진한 장애인들을 꼬여서 이런 일을 하게 만드느냐"라고 따지던 경찰들도, 이제는 장애인들을 직접 끌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휠체어로 갈 수 있는 화장실도 없는 경찰서에서 장애인들이 밤을 새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2006년에는 중증 장애인들의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활동 보조인 제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한강대 - P123
교를 다섯 시간 동안 기어서 건너는 시위를 감행했다. 이처럼 위험하고 과격한 시위를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장애인 운동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리더이자 지체장애인인 박경석은 장애인 이동권 운동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물러서지 맙시다. 지금 여기서 물러서면 또 집구석에서 수십 년씩 처박혀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은 중증 장애인들이 왜 엄청난 사회적 비난과 법적인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거리로 나와 버스와 지하철을 세우고, 한강대교를 다섯 시간 동안 기어서 건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물러서면 "수십 년씩" 집구석에 처박혀야 하는 삶이 기다린다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이유다. 그 어떤 것보다 절박한 이유 앞에서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P124
위와 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장애의사회적 모델에 우리의 관점을 고정시 - P128
켜보면, 이제 더 이상 장애는 누군가의 배려로 간신히 극복할 수 있는 개인의 슬픈 비극이 아니다. 장애인은 병원이나 수용 시설에서 살아가야 할 ‘환자‘가 아니라, 그 상태 자체가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된다. 그러므로 장애인도 세계 속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주체적인 권리를 갖는다. 이렇게 장애를 사회적 모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장애인들을 사회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 치료사나 사회복지사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 장애가 단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문제라는 것 등이 전 세계의 장애인 운동과 사회과학적 연구들이 성취한 장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지금까지 소개한 장애를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들이 한국 사회에서도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거리로 뛰쳐나올 용기를 주었다. 장애가 개인의 운명적인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사실, 그래서 나는 누구의 동정이나 구휼에 의지해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실은 장애인들을 뜨겁게 만들었다. 나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 힘입어 장애인들이 "장애는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사회로 뛰쳐나오는 시기에 대학에 입학했고, 그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여전히 나 혼자서는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캠퍼스의 한가운데서 나는 그렇게 중증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덩그러니 놓여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다. 지체 1급 장애 - P129
인으로서 서울대를 졸업하고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것, 삶을 극복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과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동안 타야 할 대중교통이 필요하고, 기적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이 필요하며, 기적을 만들어내는 동안 먹어야 할 컵라면도 필요하다. 나는 결국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는 꿈과 희망보다 당장 앞에 놓인 계단과 턱을 제거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으로 뛰쳐나온 그 시점의 중증 장애인들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P130
학교의 시설 몇 가지를 바꾼 건 우리가 얻은 것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서울대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장애를 극복했다"라며 보내는 찬사에 취해 있던 장애 학생들이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연 장애를 ‘극복‘ 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극복할 수 있기나 한 것인가. 장애는 삶에서 명백히 불편하고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나와 나의 부모가 져야 할 전생의 ‘업’과 같은 것인가. 이러한 질문과 독서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의 원칙들을 나누었고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들의 현실을 온몸으로 알리고 있는 중증 장애인들과 만났다. 우리는 점차 각자의 몸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 시작 - P131
했다. 이것은 단지 장애 학생들에게만 나타난 변화는 아니었다. 비장애 학생들, 발목이 다쳐서 혹은 체력이 약해서, 여성이어서 경험했던 각종 억압이 작은 동아리방의 테이블 위로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그것을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했다.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의 활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장애 학생들도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그 권리는 대학이 베푸는 시혜가 아니므로 장애 학생들도 일반 학생들처럼 학교에 자신의 교육적 요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전제가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 핵심 원칙은 바로 전 세계의 수많은 장애인들이 제시했던 것과 일치했다. ‘장애 학생은 다른 학생들과 통합된 교육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학교는 이러한 것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나는 ‘슈퍼 장애인‘이 되고자 했던 욕망을 점차 버렸다. - P132
골형성부전증 또는 장애 그 자체는 이미 내 몸이며 나 자신이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이것 자체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의 투쟁 끝에 위험하고 심각한 상태를 벗어났고,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내 몸의 독특한 운용 방식을 구성했으며, 그 자체로 나 자신이 되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위험 상태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신과 신체를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데카르트의 사유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는 몸 그 자체이고, 몸의 경험과 기억에 의해 기질, 재능, 성격, 감정의 일부가 결정된다. 나는 팔꿈치에 새겨진 검은색 굳은살로 내 과거를 기억한다. 휘어진 내 다리가 곧 내 삶이다. 골형성부전증이 아닌 몸은, 더 이상 김원영이 아니다. - P139
우리는 장애와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와 질병의 경험을 건강의 담론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모든 인류는 질병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며, 노인이 되면 결국 ‘장애‘라고 공인될 정도의 몸 상태로 변화한다. 이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일탈‘이라고 규정되고, 제거되어야 할 상태가 된다면 인간은 자기 몸을 긍정할 순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모두 예비 장애인입니다"라는 표어를 통해 장애 문제를 보편화하려는 것은 개인적으로 촌스러운 접근이라고 생각하지만(우리가 장애인이 될 ‘가능성‘ 때문에 장애인의 권리를 생각해야 한다는, 다소 비굴한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이 사실상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장애와 질병을 소거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비현실적인 가정 하에 이상적인 몸을 상상하고, 그것에서 다소라도 어긋나는 순간 사회의 외부로 떨어져나가는 이 불안정한 세 - P140
계에 대한 반성이 절실하다. 많은 사람의 협력, 몸의 특별한 운용방식에 대한 관용과 유연한 인식이야말로 질병과 장애를 건강이라는 단어의 대척점에 서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 P141
친절하게 웃음을 흘리며 봉사활동을 오던 기업과 길에서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진한 펜을 들고 내 앞에 선 하나를 분명하게 긋는다. 학교는 받아주지 않는다. 직장은 면접의 기회조차 주지않는다. 장애인 관련 기관이 설치된다고 하면 엄청난 반대가 지역 전체에 휘몰아친다. 길을 가다 만나는 장애인에게 천 원짜리를 쥐어주며 어깨를 두드리고, TV에 등장하는 딱한 사정을 가진 이들에게 ARS로 성금을 보내는 - P154
이 세계는 자신의 영역으로 직접 침투해 들어오는 이질적인 존재들에게는 그 앞에 선을 그어 ‘분리‘의 뜻을 확실히 한다. 그곳에서 바로 비정상의 세계가 구축된다. 정상과 비정상은 이처럼 분명하게 다른 두 세계로 분류된다. 이렇게 분류된 세계는 자체적으로 그 체계를 반복 재생산하면서 완전히 다른 인간들의 삶을 만들어낸다. 그 한쪽에 건강하고 열정적이며 좋은 직업과 매력적인 연인을 가진 내 친구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어 집을 지키는 나의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 - P1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