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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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 키우고 나와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매기만 했을 뿐 서로가 서로의 기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85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부터는 우리집이 꼭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편안했던 공간이 이제는 우리 모두의 실패를 상징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가구도 장식품도 다 우리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엄마가 살아 계신 동안 넘치게 듣던 이야기들을, 별의별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암환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의 이웃이 명상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사형선고를 물리친 이야기. 림프샘 구석구석까지 암이 퍼졌지만 깨끗한 신장을 떠올리는 방법으로 기적을 일궈내서 지금은 꽤 차도가 보인다는 이야기. 낙관적인 태도만 가진다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았 - P286

다. 어쩌면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믿음이 충분치 않았고, 엄마에게 남조류를 억지로라도 충분히 먹게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이 우리를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암과 싸워 승리를 쟁취한 다른 가족들도 있지만 우리는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갖가지 감정이 밀려와 우리 가슴을 찢어놓았지만 그런 패배감 또한 이상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 P287

우리는 거의 매일 이른 저녁을 먹고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기어들어가서 열네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을 잤다. 우울처럼 슬픔도 가장 간단한 일조차 해내기 힘들게 했다. 이 나라의 온갖 좋은 것이 우리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우리는 멋진 경관에 무감각했고 무감동했으며 조용히 비참했고 서로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 P290

"네 엄마가 나한테 경고하더구나. 네가 날 제멋대로 휘두르게 놔두지 말라고."
아빠는 이제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입 밖에 내고 말았다. 자기가 나한테 하고 싶던 말을 하려고 죽은 사람의 입까지 빌리다니. - P296

"그래요? 엄마가 아빠 얘기는 얼마나 많이 했게요, 참." 내가맞받아쳤다. "밤을 새워도 다 못 할 정도지만 저는 안 할래요."
엄마는 아빠를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빠를 깨진 접시에 비유했다고도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가 언제 이런 말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건지는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머릿속에 그런 말들이 계속 떠다녔다. 나도 안다. 내가 자라면서 받아온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고, 나를 가장 사랑한 사람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어쩌면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는 것을, 그때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6개월 동안 완벽한 딸이 되려고, 10대 때 일으킨 말썽을 벌충하려고 죽을힘을 다했다. 그런 내게 아빠는 마치 그 말이 엄마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한 것이다. 그 아이를 조심해, 당신을 제멋대로 휘두르려 할 거야, 라고. 아빠가 편안한 아파트 침대에서 잠자는 3주 동안 병원 소파에서 잠을 잔 사람이 바로 나란 걸 엄마는 알았을까? 요강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해대는 아빠 대신 쭉 그걸 비운 사람이 나라는 것은? 엉엉 우는 아빠 때문에 나는 번번이 감정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 P297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분류하는 일은 고된 노역처럼 느껴졌지만 다 끝내고 나니 기나긴 고생 끝에 마침내 어떤 출구에 도달한 듯한, 긴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물건이 부모 잃은 아이처럼, 물체, 짐짝처럼 보였다. 한때는 존재이유가 있었던 것들이 거추장스러운 무언가로 변 - P314

해 있었다. 특별한 식사를 위해 고이 모셔둔 볼들은 이제 그냥 정리해야 할 그릇이, 내 갈 길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었다. 어렸을 때 마법의 단지인 척하면서 갖고 놀던, 내가 상상한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초항아리는 이제 또하나의 버릴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 P315

아주머니가 요리법을 꽁꽁 숨겨 내겐 오묘해 보이기만 하던 음식을 정복하자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데,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원한 전부였다. 몇 날 며칠을 화려하고 값비싼 - P319

고기 요리와 갑각류 요리 그리고 버터와 치즈와 크림 배합을 달리한 갖가지 감자 요리를 만든 끝에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진짜로 원한 요리는 바로 이것이란 걸. 이 담백한 죽은 난생처음으로 내게 깊은 만족감을 준 요리였다. 망치 여사는 온갖 비법을 한 단계 한 단계 전수해주었다. 마치 어느 때고 의지할 수 있는 디지털 후견인처럼 내가 몰랐던 지식, 의당 내 것이어야 할 지식을 알려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는, 보드라운 죽이 엄마의 갈라진 혀를 살포시 감싸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리고 따뜻한 액체가 천천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뒷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 P320

나는 이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망설여졌다. 이모가 유진에 다녀간 뒤로 이모와 좀더 가깝게 지내고 싶었지만 언어 - P325

의 장벽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내가 나누고 싶은 감정의 뉘앙스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더는 이모의 생활을 침범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이모와 이모부의 아파트는 죽어가는 손님들을 위한 회전문이 되다시피 했다. 이제 엄마는 돌아가셨고, 이모에게 그 어두운 시간을, 이모가 짊어져야 할 것처럼 느꼈을 그 무거운 짐을 상기시키는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 P326

이제 모두 유령이 되었다. 가운데에 있는 사람만 빼고, 나는 나미 이모의 시선으로 사진을 보려고 했다. 사진에서 가족들의 형체가 서서히 녹아 사라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과거로 돌아가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을 바꿔놓았을 때처럼.
엄마는 나미 이모가 점쟁이를 찾아간 이야기를 내게 해준 적이 있다. 점쟁이 말이, 이모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라 했다. 다른 이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쉴 곳이 되어주고, 가만히 서서 누구든 자기 아래에 눕는 사람에게 그늘이 되어 - P327

줄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매양 발밑에서 작은 도끼가 밑동을 찍으면서 천천히 이모의 기운을 빼간다고.
그런 말을 들었던 나로서는 내가 그 작은 도끼인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모는 자기 가정만의 조용하고 고요한 사적인 공간을 가질 자격이 있었다. 나는 그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모는 유일하게 남은, 내 심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 P328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 벽에다 머리를 들이받고 싶은심정이었다.
"울지 마, 미셸."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자 이모가 말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았다.
"엄마가 항상 제 엄마가 죽었을 때나 우는 거라 했거든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도 노상 그렇게 말했어." 이모가 말했다. "너랑 네 엄마 똑같네."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항상 말도 못하게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토가, 엄마만의 독특한 양육법에서 나온 거라고 믿었다. 내가 울고불고 떼를 쓸 때마다, 무릎이 까지거나 발목을 접지를 때마다, 남자친구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헤어지고 내게 온 기회를 놓치고 나의 평범함과 단점과 실패를 마주할 때마다 엄마는 그 좌우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었다. 라이언 월시가 플라스틱 망치로 내 눈을 가격했을 때도. 전 남자친구가 먼저 내게 이별을 고했을 때도. 우리 밴드가 청중이 한 명도 없는 공연장에서 형편없는 연주를 했을 때도.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소리를 꽥 지르고 싶었다. 제발 지금 내 기분을 그렇게 뭉개버리지 말아줘, 라고. - P337

제발 나를 안아달라고, 그 기분 속에 빠져 있게 내버려둬달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절대 그 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그 비정한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든 나만큼이나 그 말을 싫어하게 될 거라고. 그런데 바로 우리 엄마가 밤낮으로 그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었다니.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말해줬어요. 아기를 없앤 적이 있다고요." 낙태라는 단어를 몰라 나는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비밀이 참 많았어요."
"아이 노우." 이모가 영어로 말했다. "아이 싱크…… 유어 맘싱크…… 컴 투 코리아 투 하드 위드 투 베이비."
이모는 두 아기를 양팔에 하나씩 안고 있는 몸짓을 해 보였다. 오래전에 엄마가 내게 들이퍼붓듯이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내가 낙태의 원흉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지만 그에 상반되는 이유도 찾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나는 그저 어딜 간다는 게 마냥 신나기만 했지 그 여행이 엄마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이 나라가 엄마의 얼마나 중요한 일부였는지는 까맣게 몰랐다.
나는 궁금해졌다. 만일 엄마를 가장 잘 아는 우리 세 사람, 그러니까 아빠와 나미 이모와 나에게 엄마가 남겨둔 10퍼센의 부분이 제각각 다르다면, 우리가 같이 그 숨겨진 부분을 짜맞추어 엄마의 전모를 알아낼 수 있을지. 과연 내가 엄마의 - P338

모든 걸 알게 될 수 있을지, 엄마가 또 무슨 단서를 남겼을지도. - P339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모와 같이 음식 먹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뜻깊은지를 이모에게 설명하려 애썼다. 음식을 통해 엄마에 대한 기억들을 되살리려고 애써왔다는 것도, 계씨 - P340

아주머니 때문에 내가 진짜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느끼던 순간도. 내가 된장찌개와 잣죽을 직접 만들었던 것은, 엄마를 돌보는 데 실패한 기분을 심리적으로 만회해보려는 노력이자 한때 내 안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고 느낀 문화가 이제 위협받는 기분이 들어 그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이었다는 것도. 하지만 적절한 단어들을 찾아낼 수 없었다. 번역 앱에 기대기에는 문장이 너무 길고 복잡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그냥 이모의 손만 그러잡았다. 우리 두 사람은 얼음처럼 찬 새콤한 소고기 육수에 담긴 국수만 계속 후루룩거리며 먹었다. - P341

피터와 내가 여행 다닌 장소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고 싶어한 곳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 P344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 P345

대체로 나는 꽤 잘 적응했다. 대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이며 어른의 제대로 된 직업이며 모든 게 너무 낯설었지만, 바꿀 수 없는 일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몰입하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지난날이 떠올라 괴로웠다. 뜬금없이 고통스러운 생각의 고리에 불이 붙으면 그동안 억누르려 애쓰던 모든 기억이 내 마음 맨 앞자락으로 훌렁 삐져나오기 일쑤였다. 엄마의 희뿌연 혀, 보라색 욕창 자국,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엄마의 무거운 머리, 저절로 번쩍 떠진 눈, 하지만 내면의 비명이 텅 빈 가슴을 뚫고 나와 온몸을 소용돌이치며 뒤흔들 뿐, 그 감정이 제대로 해소되지는 않았다. - P353

내가 한 음식은 모두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각각의 향과 맛이 잠깐이나마 나를 멀쩡했던 우리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닭 - P354

육수를 내서 만든 칼국수는 어느 날 오후 쇼핑을 마치고 명동교자에서 점심을 먹었던 때로 데려다주었다. 줄이 얼마나 길던지 계단을 하나 다 채우고도 문밖으로 나와 건물을 한 바퀴 휘감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 집 칼국수는 진한 소고기 육수와 전분기 많은 국수 때문에 국물이 어찌나 걸쭉하던지 젤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는 그 집 특유의, 마늘이 듬뿍 들어간 김치를 자꾸만 더 달라 했고, 이모는 공공장소에서 코를 푼다고 엄마를 야단쳤다.
바삭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은 은미 이모와의 싱글 파티를 떠올리게 했다. 밤마다 우리는 바삭한 치킨 껍질을 와작와작 씹어먹으며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핥고 생맥주와 무피클로 입가심했다. 그렇게 먹으면서 이모는 한국어 숙제를 도와주었다. 짜장면은 우리 한국 가족이 나지막한 거실 탁자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배달된 짜장면을 먹을 때, 할머니가 후루룩거리며 드시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주물 냄비에 기름 한 통을 다 부어서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수북이 묻힌 돼지고기를 튀겨 돈가스도 만들었다. 돈가스는 엄마가 점심 도시락으로 자주 싸주셨던 일본식 튀김 요리다. 나는 삶은 숙주나물과 두부를 꽉 짜서 부드러운 얇은 만두피에 한 숟가락씩 올리고 가장자리를 야무지게 꾹꾹 눌 - P355

렀다. 만두가 하나하나 완성될수록, 모양이 완벽하게 고른 망치 여사의 만두와 엇비슷해졌다. - P356

2주간 발효된 김치를 꺼내 먹으니 마침맞게 좋았다. 그것은 끼니때마다 내 식사를 완벽하게 해주는 이상적인 반찬이자 나의 역량과 수고를 매일매일 상기시켜주는 음식이었다. 그 모든 과정 덕분에 김치의 진가를 더 제대로 알게 됐다. 어렸을 땐 식사가 끝나고 접시에 김치 몇 조각이 남아 있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김치를 만들어봤기에 남은 김치를 꼬박꼬박 옹기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오래된 김치는 찌개나 전이나 볶음밥에 넣어 먹고, 새로 담근 김치는 반찬으로 먹었다. 내가 먹을 양보다 더 많이 김치를 만들었을 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부엌에 식료품 유리병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병에 종류별로 담긴 김치는 익은 정도가 제각각 달랐다. 조리대 위에선 담근 지 4일 된 총각김치가 새콤하게 익어갔고, 냉장고에선 갓 담근 깍두기가 수분을 내보내고 있었다. 도마 위에는 커다란 배추 한 포기가 반으로 쩍 갈라진 채 소금물에 절여질 채비 - P360

를 하고 있었다. 멸치액젓, 마늘, 생강, 고춧가루의 풍미 속에 익어가는 향긋한 채소 향이 그린포인트의 작은 부엌에 물씬 풍겼다. 나는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주야장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너한테서 항상 김치 냄새가 날 거야. 그 냄새가 네 땀구멍으로 배어나올 테니까.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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