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회고록이면서 회고록이 아니기도 합니다. 나는 이 책에 나 개인의 경험을 담았지만, 그것을 모든 여성이 겪는 집단적 경험의 맥락 속에서 서술했습니다. 이 책에는 내가 작가가 되고자 걸어온 길, 즉 나만의 목소리를 만들고 그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줄 방법을 찾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여성이 침묵하기를 바라고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이뤄진 것이었으므로, 이 책은 그런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자 하는 분투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하는 책이고, 우리가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팬데믹과도 같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문제와 뗄 수 없는 일임을 말하는 책입니다. - P6

만약 여성이 동등한 목소리, 권리, 신뢰성, 기타 등등의 힘을 가진 사회라면, 그런 폭력은 훨씬 드물 것입니다. 그 폭력은 원인인 동시에 결과입니다. 불평등 때문에 생긴 결과이면서도 그 불평등을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내게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 목소리를 갖기 위해서, 나는 내가 젊은이로 살았던 그 추하고 낡은 세상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이제 나는 다른 목소리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아직 충분히 들리지 않은 그목소리들을 증폭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 이 목소리를 씁니다.
물론, 여성혐오는 여러 불평등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 책에서 나는 젊을 때 흑인 이웃들과 게이 친구들과 살았던 이야기, 좀더 나중에 자신들의 토지권과 문화 보전을 위해서 싸우는 아메리카원주민들과 함께했던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나는 그들이 겪는 억압뿐 아니라 그들의 뛰어남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내게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 물려받은 이야기들을 의심하고 더 나은 이야기들을 찾는 법을 아주 많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내가 여성이 겪는 폭력에 관해서 쓰기 시작한 것은 나 자신도 젊은 여성이었던 1980년대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폭력이 여성에게 막대하고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아만줘도 좋겠다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여성은 폭력의 직접적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폭력이 여성의 자유와 평등과 자신감과 온전한 참여를 저해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받습니다. 내 - P7

가 살아온 세월의 대부분의 기간에, 그 폭력은 무시되거나 사소히게 치부되거나 피해자의 탓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폭력의 사례 하나하나가 수수께끼 같고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건으로 여겨졌을 뿐, 그 모두가 이 사회와 오래된 불평등들의 구조에 깊이 엮여든 한가지 패턴의 일부라는 이해는 공유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는 이 만연한 폭력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대화와 언어에서, 언론 보도와 문화적 재현에서, 사법 체계와 우리가 사는 공간의 규제에서, 그 밖의 여러 측면에서 그랬습니다. 내가 젊을 때 바랐던 대화가 마침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나 또한 가끔 열렬히 반가운 마음으로 대화에 참여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폭력은 예외적인 것, 규범을 벗어난 것, 일상의 여느 원칙과 관습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출간되어 많은 여성 독자에게 읽힌 페미니스트 회고록 중 일부는 끔찍하고 예외적인 폭력을 직접 겪은 여성이 쓴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책들이 자칫 폭력은 우리 중 일부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사실로만들까봐 걱정되었습니다. 폭력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영향을 받은 여자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남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나는 30년 넘게 그 폭력에 대해서 써왔으면서도 그 폭력의 한가지 측면만큼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바로 - P8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한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살해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살해당하는 일을 끊임없이 상상해보아야 합니다. 설령 자신이 공식적인 피해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성적이고 성애화된 방식으로 묘사되는 것을 늘 영화에서 보고 책에서 읽으면,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소식을 늘 신문에서 보면, 그런 일이 언제고 자기 주변의 여자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습니다.
페미니스트 활동가 앤 스니토Ann Snitow는 2016년에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1969년에 만들어져서 널리 인용된 페미니즘 슬로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의 원래 의미는 "이 구조는 개개인의 개별적 삶보다 훨씬 더 큰 것이며, 여기에 대해 개인적 해법은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이라고요. 영어권의 회고록은 개인적으로 어떤 역경을, 가령 끔찍했던 유년기나 중독이나 질병을 극복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규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 회고록은 세상을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인 문제를 중심에 놓고 말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길에 돌이 있다고? 나는 그것을 일일이 주워 간직한다. 그랬다가 언젠가 성을 지을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걸려 넘어진 돌들로 지은 성입니다. - P9

나도 변했다. 21세기에 그 집을 나온 사람은 오래전 그 집에 들어갔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물론 연속성은 있다. 아이는 어른의 어머니인 법이니까. 그러나 워낙 많은 일이 있었고 워낙 많은 것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때 그 깡마르고 불안정했던 젊은 여성은 나라기보다는 내가 한때 친했던 사람, 좀더 챙겨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은 사람, 요즘 만나는 그 또래 여성들에게 그런 것처럼 자꾸 마음이 쓰이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오래전 그는 정확히 나라고는 할 수 없었다. 여러 결정적인 측면에서 그는 나와 달랐다. - P24

그래도 그는 나였다. 세상에 서툰 부적응자, 몽상가, 쉴 새 없이 떠도는 방랑자였다. - P25

는 나이 지긋한 그 주민들은 뭐든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시골 사람이었다.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면서 아는 사람에게 인사했고, 지나치게 까분다 싶은 아이가 있으면 야단쳤다. 나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선물이자 일종의 스포츠라는 사실, 온기와 농담과 덕담과 유머를 나눌 기회라는 사실, 말이 우리를 따스하게 덥히는 작은 불꽃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배웠다. - P36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사람들은 이른바 도심 쇠퇴blight 현상을 핑계로 우리 동네 동쪽의 많은 건물을 허물었다. 도시의 살갗에는 상처와 같은 공터들이 남았다. 어떤 공터에는 칙칙한 임대주택 단지가 세워졌지만, 너무나 소외되고 갑갑한 설계였던 탓에 더러는 지어진 지 10~20년 만에 도로 허물어졌다. 틸 씨가 한때 활기찬 문화 지구였다고 회상했던 필모어 지구의 건물 터들은 1980년대에도 대부분 철책 너머 빈터로 남아 있었다. 장소들이 살해되었고, 한번 살해된 장소는 다시는 온전히 살아나지 못했다. - P43

사람들은 예측 불가능성에 따르는 놀라움과 좌절을 겪었고 그것을 더 잘 견뎠다. 왜냐하면, 이 역시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바로, 그 시절은 시간이 폭포를 만나서 우리 모두를 싣고 급류로 떨어지기 전이었던지라 꼭 초원을 흐르는 강물처럼 느릿느릿 흘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낯선 사람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었지만, 그 시절에 우리는 낯선 사람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보다 좀더 예측 불가능한 접촉과 좀더 깊은 고독이 있던 시절이었다. - P44

그 시절의 도시는 낡고 쭈글쭈글하고 그 틈에 먼지와 보물이 끼어 있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그랬던 도시가 차츰 반반하고 깨끗하게 변했고, 살던 사람 중 일부도 그 과정에서 먼지처럼 쓸려 나갔다. - P45

나는 한창 가난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경제적 여유는 나중에야 서서히 생길 터였다. 가난에서도 나는 새 이방인이었지만, 그 속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정신적 가난으로서의 가난은 내가 태어난 때부터 죽 겪은 것이었다. 내 부모는 대공황 시절과 유년기에 겪었던 부족 때문에 깊은 결핍감을 몸에 새긴 사람들이었고, 훗날 자신들이 확보한 중산층의 안락을 남과 나누려는 마음이 없었다. 내게는 만약에 내가 끔찍한 일에 발목이 잡히더라도 부모가 나를 구해주리라는 믿음이 없었다. 정말로 그런지 확인해보고자 시험 삼아 망해볼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내 가난은 쉽게 가난을 선택한 것처럼 원한다면 쉽게 벗어날 수도 있는 다른 많은 백인 청년의 가난과는 좀 달랐다. 결국에는 나도 가난을 벗어났다. 하지만 천천히 내 힘으로 벗어났다. 또 비록 나중에서야 제대로 깨우친 사실이지만, 내 피부색과 출신이 내게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그런 속성 덕 - P49

분에 나 자신도 남들도 나를 공부와 화이트칼라 노동에 적합한 사람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 P50

그리고 내가 무엇보다도 원한 것은 나 자신의 변화가 아니라 내 처지의 변화였다.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아직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떠나온 곳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싶다는 사실만큼은 똑똑히 알았다. 어쩌면 그것은 갈망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반대, 즉 무언가를 싫어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문제였다. 내게 걷기가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걸으면 아무튼 어디로든 가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 P51

그곳이 아직 내 집이었을 때, 그 집 속에서 다른 방이나 다른 문을 발견하는 꿈도 여러번 꿨다. 어떤 면에서는 그 집이 나였고 내가 그 집이었으니, 그때 발견한 것은 당연히 내 안의 다른 나였다. 꿈에서 어린 시절 집을 볼 때는 늘 내가 그곳에 갇힌 상황이었던 데 비해, 이 집은 나를 가두기는커녕 내게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주었다. 꿈에서 집은 더 컸고, 방이 더 많았고, 현실에는 없는 벽난로며 숨은 공간이며 아름다움이 있었다. 한번은 뒷문을 열었더니 현실에 있던 칙칙한 잡동사니가 아니라 환히 빛나는 들판이 펼쳐졌다. - P54

광대한 하늘, 바다, 먼 수평선, 창공을 맴도는 야생 새들에 견주면 내 근심과 고뇌가 하찮아진다는 점에서, 출렁이는 바다와 긴 백사장은 또다른 집이자 피난처였다. 그 작은 집도 마찬가지였다. 그 집은 내 피난처였고, 인큐베이터였고, 껍데기였고, 닻이었고, 출발대였으며, 낯선 이가 준 선물이었다. - P55

책상은 나와 함께 세번 이사했다. 그동안 내가 이 위에서 쓴 단어가 수백만개는 될 것이다. 스무권이 넘는 책, 리뷰, 에세이, 연애편지, 친구 티나와 거의 매일 편지를 주고받던 때 쓴 수천통의 이메일, 다른 수십만통의 이메일, 내 부모의 것을 포함하여 몇편의 추도사와 부고, 이 책상에서 나는 처음에는 학생으로서 다음에는 선생으로서 숙제를 했다. 책상은 세상으로 난 문이자 내가 바깥으로 도약하거나 내면으로 잠수할 때 딛는 단상이었다. - P59

나 또한 내 할머니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잘린 나무들로 만들어졌을 내 책상에서 시작하여 그로부터 만나게 될 숲을 상상할 수 있고, 기왕이면 내 책상으로부터 내 젠더가 겪는 폭력보다는 그 숲을 떠올리고 싶다.
하지만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은 남자에게 살해당할 뻔했던 여성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나와 같은 이들이 죽거나 침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자라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가, 내가 어떻게 목소리를 갖게 되었고 어떻게 그 목소리를—홀로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묵묵히 말할 때 가장 유창해지는 목소리를—써서 이전에 말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말하려고 애쓰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할 시점인 듯하다.
통상적인 회고록은 대개 극복하는 이야기, 끝내 성공하는 이 - P63

야기, 개인의 변화와 결심으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다. 나는 많은 남자가 여자를 특히 젊은 여자를 해치고 싶어했고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 그 피해를 즐기는 사람이 많거니와 그저 무시하는 사람은 더 많다는 사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치료법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다. 내가 내 생각이나 생활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이 문제를 용납할 만한 수준으로 바꾸거나 아예 근절할 수 있는 도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그냥 놓아두고서는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이 문제는 내가 몸담은 사회에, 아마도 더 나아가서 세상에 뿌리박은 문제였다. 이 문제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우선 문제를 이해해야 했고, 궁극적으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상황을 바꿔야 했다. 그런데 고통의 일부이기도 한 침묵을 깨뜨릴 방법이라면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 나와 남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저항이었고, 생기를 되찾는 일이었고, 힘을 얻는 일이었다. 그것은 나무들의 숲이 아니라 이야기들의 숲이었고, 글쓰기는 그 숲을 통과할 길을 그리는 일이었다. - P64

다른 여자들이 여자라서 겪은 최악의 일이 역시 여자인 내게도 다 벌어질 수 있었다. 비록 죽임을 당하지는 않더라도, 내 안의 무언가가 죽었다. 자유와 평등과 자신감의 감각이 죽었다.
최근에 친구 헤더 스미스Heather Smith가 내게 말했듯이, 세상은 젊은 여자들에게 "자신이 살해될 가능성을 늘 그려보게끔" 만든다. 여자는 어릴 때부터 줄곧 이런저런 일을 하지 말라는 훈계를 듣는다. 여기에 가지 마라, 거기서 일하지 마라, 이런 시각에 밖에 나가거나 그런 사람들과 말하거나 이 원피스를 입거나 이 술을 마시거나 모험과 독립과 고독에 참가하지 마라. 죽임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 조치는 여자가 스스로 삼가는 것뿐이라고 했다. - P65

젠더폭력의 트라우마를 논할 때, 사람들은 그것이 단 한번의 끔찍하고 예외적인 사건이나 관계였던 것처럼 묘사한다. 마치 별안간 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평생 물속을 헤엄쳐왔다면 어떨까? 뭍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었다면 어떨까?
많디많은 여성이 영화에서, 노래에서, 소설에서, 세상에서 살해되었다. 그 죽음 하나하나가 내게는 작은 상처, 작은 짐, 피해자가 나일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작은 메시지였다. 언젠가 만났던 어느 불교 성자는 신자들이 준 동전을 모두 옷에 매달고 다녔다. 동전들은 그의 짐이 되었다. 작은 동전이 하나둘 더해져서, 결국 그는 수백 킬로그램의 쨍그랑거리는 번뇌를 끌고 다니게 되었다. 우리도 그랬다. 우리도 그런 무서운 이야기들을 보이지 않는 추나 족쇄처럼 걸치고 어디든 끌고 다녔다. 그것들이 쨍그랑거리는 소리는 우리에게 "그게 너일 수도 있었어" 하고 늘 말해주었다. - P67

여자는 나이가 많든 적든 늘 공격당했는데, 그들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마침 그들 가까이 있던 웬 남자가 그들을… 벌하고punish 싶어했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맨 먼저 떠오르지만, 그렇다면 대체 무엇에 대한 벌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이라서가 아니라 여자라서였다. 우리가 여자라서. 하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은 그가 그라서였다. 그가 자신에게 여자를 해칠 권리가 있다고 믿고 그러기를 욕망한 남자라서. 그가 자신의 힘이 여자의 무력함만큼이나 무한하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 P68

앞선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힘의 문제이지 성적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분명 세상에는 자신의 힘과 여자의 무력함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에로틱한 일로 여기는 남자들이 있다. 여자들 중에서도 소수는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무력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을 에로틱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에 따르는 자아 감각과 서사를 받아들여야 할지 물리쳐야 할지 고민한다. - P71

그것은 일종의 집단적 가스라이팅이었다. 주변 사람 누구도 전쟁으로 인식하지 않는 전쟁을 치르며 사는 것은… ‘미칠 노릇이었다‘하고 말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여자의 증언 능력과 여자가 증언하는 현실을 깎아내릴 의도로 그를 미친 여자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하도 많으니까. 게다가 이 경우에 미치겠다는 말은 견디기 힘든 괴로움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일 때가 많다. 그런 뜻이라면 나는 미칠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참기 힘들 만큼 불안했고, 골몰했고, 분개했고, 지쳤다.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자유를 미리 포기하거나, 아니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그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사람을 진짜 미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그가 겪은 일이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를 옥죈 상황 - P72

이 현실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은 그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면 지는 것이고 입 다물거나 아는 사실을 알지 않기로 선택해야만 이기는 것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 난감한 궁지에서 어떤 사람은 실패와 위험을 선택함으로써 반항자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순응을 선택함으로써 죄수가 된다.
(...)
내가 당한 부당한 일을 남들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의 분한 기분을 나는 안다. 피해자가 그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에게는 결코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강박적으로 늘어놓는 이야기꾼이 되기 쉽다는 것도 안다. 누군가 그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써 저주를 - P73

풀어줄 때까지, 그는 그 이야기를 계속 말한다. 나도 가끔은 그렇듯 직접 체험한 일을 말하는 이야기꾼이었지만, 다른 여성들이 겪는 폭력에 대해서 내가 느낀 감정도 나의 체험이었다.
성희롱이 내게도 직접적인 골칫거리였던 시절에,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더 부유한 동네로 이사하라고(하지만 내가 겪은 가장 악질적인 성희롱 중 몇가지는 그런 동네에서 겪었다), 차를 사라고, 쓰려야 쓸 돈이 없었건만 아무튼 돈을 써서 택시를 타라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라고, 옷을 남자처럼 입거나 남자와 늘 붙어 다니라고, 혼자서는 아무 데도 가지 말라고, 총을 구하라고, 무술을 배우라고, 현실에 적응하라고,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자연스러운 것 혹은 날씨처럼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날씨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불가피하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였다. 특정 사람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못 본 척하고, 성애화하여 해석하고, 봐주고, 무시하고, 묵살하고, 경시하는 사회 구조였다. 내가 볼 때 적절한 대응책은 문화와 상황을 바꾸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기 운명이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 삶이 자기 것이 아닌 순간에 처한 여성은 어쩌면 나일 수도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쫓기듯이 살았다. 그 탓에 정신 구조가 달라졌는데, 이 변화는 영영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폭력의 핵심은 피해자에게 그가 완벽하게 자유로운 날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하게끔 하는 것 - P74

인지도 모른다. 그런 폭력은 주로 어린 여자들에게 마치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인 양 가해지는데, 일단 그것을 경험한 여자는 폭력의 주된 표적이라는 처지에서 벗어난 뒤에도 여전히 자신이 취약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 여자의 죽음은 다른 모든 여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그 시절에 나는 여자들이 전쟁으로 선언되지 않은 전쟁을 겪으며 산다는 사실을 발견한 충격과 두려움을 안은 채 일단 살아남는 데 전념했지만, 언젠가는 이 전쟁이 전쟁으로 선언되기를 바랐고 가끔은 능력이 닿는 대로 스스로 그렇게 선언했다. - P75

언젠가 글에서도 썼는데, 나는 집 말고 모든 곳이 안전한, 안팎이 뒤집힌 세상에서 자랐다. 시골에 맞닿은 주택 단지에서 자란 내게는 집 말고 모든 곳이 안전해 보였다. 문밖을 나서면 바로 도시도 산도 있었다. 나는 늘 집을 빠져나가서 그런 곳을 쏘다녔다. 나이가 한 자릿수였을 때부터 집을 떠나기를 열망했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달아나기 위해서 필요한 준비물을 생각해보았다. 일단 그 집을 떠난 뒤로는 내 집 안에서 위험하다고 느낀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러자 이제는 거꾸로 세상에서 안전한 곳이 집뿐인 듯했다. - P77

남자들은 내게 대화를 트자고 제안하고 요구하고 노력했고, 노력은 금세 분노로 변했다. 나는 상대의 화를 돋우지 않는 방식으로 아뇨 나는 관심 없어요 하고 말하는 방법을 몰랐으므로, 달리 할말이 없었다. 말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 내게는 말이 없었다.
나는 보통 눈을 깔고, 아무 말도 않고, 눈맞춤을 피하고, 최대한 그 자리에 없는 듯이, 나서지 않고, 미미한—눈에 띄지 않을뿐더러 소리도 내지 않는—존재가 되려고 애썼다. 상대의 격앙이 무서워서였다. 내 눈조차 경계를 공손히 지키는 법을 배웠다. 나는 최대한 나를 지우려고 애썼다. 나로 존재하는 것은 표적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얄궂게도 그런 남자들은 자신의 욕망이 결국 충족되지 않을 - P80

테고 내가 퇴짜 놓을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고, 그래서 미리 적개심과 분노를 느끼는 듯했다. 그들이 건네는 음란하면서도 상대를 깔보는 말에서는 그래서 욕망과 분노가 동시에 드러났다. 그들의 언어는 그들에게는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고 내게는 모욕을 피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분노는 내가 낯선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셈이었고, 모든 여자는 모든 남자에게 속한다고 말하는 셈이었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무나 나를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었다. 말, 그것은 그들에게는 지나치게 많고 내게는 없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내가 평생 말을 위해서 말로써 살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 P81

사람들은 내게 그런 일은 내 상상이라고, 혹은 과장이라고, 내 말은 믿을 만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렇듯 나를 표현하는 능력과 세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불신받는 것은 내가 존재할 공간을, 자신감을, 세상에 나를 위한 장소가 있을 테고 내게도 남들이 들어볼만한 말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갉아먹는 요소였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때는 나도 나를 믿기가 어렵다. 그래도 끝내 자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다른 모두와 대립하겠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든 나는 미칠 것 같을 테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그럴 근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몸이 내 것이 - P82

아니고 진실도 내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내 것일까? - P83

그러나 내 친구 중에서는 많은 수가 강간을 겪었고, 직접 겪었든 아니든 모두가 그 위협을 피하는 일에 젊음을 허비했으며, 지금도 세상 대부분의 장소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고 있다. 설령 당신이 붙잡히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신을 붙잡는다. 오랫동안 나는 지켜보았다. 신체를 절단당한 성 노동자나 살해된 아이나 고문당한 젊은 여자나 장기간 억류된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혹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죽인 아내나 자식이나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 한 귀퉁이에 단신으로 보도되거나 방송에 지나가는 말로만 언급되는 것을. 각각의 사건이 마치 독립적인 사건인 양, 이름 붙여 호명할 가치가 있는 더 큰 현상의 일부가 아닌 양 취급되는 것을. 나는 그 흩어진 점들을 이었다. 그랬더니 하나의 전염병이 보였다. 내가 본 그 현상을 나는 말하고 썼다. 그러면서 그것이 공개적인 대화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30년을 기다렸다. - P86

소하일라 압둘알리sohaila Abdulali가 강간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쓴 책 『강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쌤앤파커스 2020에는 목소리에 관하여 이런 말이 나온다. "이야기를 매끄러운 하나의 서사로 말하는 방식. 사무적으로, 높낮이는 있되 진정한 감정은 없는 채로 말하는 방식… 우리가 남들에게 아무리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그런 방식에는 늘 우리가 견딜 수 없고 남들이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세부가 빠져 있다." - P89

요즘도 가끔은 그렇지만, 그 시절에 나는 정말로 딱딱하고 빛을 반사하고 안을 보호하는 갑옷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자칫 그 갑옷의 표면에만 몰두하기 쉽다. 즉 기지와 경계심을 발휘하여 공격에 대비하는 데에만 몰두하기 쉽다. 혹은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은 나머지 근육이 딱딱해지고 마음이 속박되는 지경에 이르기 쉽다. 자신에게 부드러운 깊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인생의 중요한 일들은 대개 표면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스스로 갑옷이 되기란 오늘날에도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죽임당하지 않기 위해서 줄곧 스스로 죽는다. - P91

전쟁을 치르는 병사처럼 진격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퇴각하지도 않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자신이 어딘가에 있을 권리가 있다고 느끼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런데 그 어딘가가 고작해야 자신이 사는 공간뿐이라면? 약간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 가장 무의식적인 반응과 감정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도 그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느낀다는 건 어떤 것일까? 전쟁을 치르지 않고 산다는 것, 전쟁에 대비할 필요가 없이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 P98

내가 젊을 때 치렀던 싸움 중 하나는 내 몸이라는 영토가 내 관할인가 아니면 타인―어떤 사람 혹은 누군가 혹은 모든 이들―의 관할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싸움이었다. 그 영토의 국경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가, 그 영토가 적대적 침입을 당할 것인가, 내가 나의 책임자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싸움이었다. 강간이란 어떤 남자의 공간적 권리가, 한발 더 나아가 암묵적으로 모든 남자의 공간적

권리가 어느 여자의 몸 내부까지 미친다고 주장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여자의 관할권은 여자 자신의 몸이라는 영토조차 온전히 다스리지 못한다는 주장이 아니겠는가? 길거리에서 나를 괴롭혔던 남자들은 나를 다스릴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고 나는 그들의 종속국이라고 주장한 셈이었다. 그로부터 살아남으려고 내가 택한 방법은 눈에 띄지 않는 나라, 점점 더 작아지는 나라, 비밀스러운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
대화도 그런 영토다. 누가 공간을 차지할 것인가, 누가 발언을 저지당하거나 괴롭힘에 시달린 나머지 말의 공간을 전혀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 침묵으로 빠져들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일어나는 영토다. 최선의 경우에 대화는 즐거운 합작품이다. 생각과 통찰 - P100

을 만들고 경험을 나누는 일이다. 최악의 경우에 대화는 영역 다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영토에서 밀려난 경험, 혹은 입장 자체가 허락되지 않은 경험, 혹은 참여하기에는 자격이 부족하다고 간주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문제도 나는 나중에 글로 쓸 터였다. - P101

우리 문화는 몸에 집착했다. 그 시절에는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을 정밀한 측정과 사이즈로 계량했다. 우리에게 그 기준을 만족시키면 한없는 보상이 따를 테지만 만족시키지 못하면 끝없는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 결국에는 모두를 처벌했다. 왜냐하면 그 기준은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또한 수많은 젊은 여자가 처한 곤경에 처했다.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멸시나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와 매력적 - P103

이라는 이유로 위협이나 미움을 받는 처지의 중간 지점에 있어야 한다는 곤경. 두가지 처벌의 영역 사이에 과연 줄타기할 공간이 있는지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중간에 있어야 한다는 곤경.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는 호감을 얻되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부터는 안전하고 싶다는 불가능한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는 곤경.
우리는 남자를 만족시키도록 교육받았고, 그 탓에 스스로를 만족시키기가 어려웠다. 세상은 우리에게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러려면 우리 자신의 존재와 욕망은 거부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내 몸은 외로운 집이었다. - P104

10 가장 혹독하게 관습적인 형태의 여성성, 그것은 끊임없이 사라지는 행위다. 남자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내주기 위해서 여자가 삭제되고 침묵하는 행위다. 그 공간에서 여자의 존재는 공격으로 간주되고, 여자의 비존재는 우아한 순응으로 간주된다.
(...)
우리는 종종 누군가가 침묵당했 - P110

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 표현에는 그 누군가가 말하려 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는 또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 표현에는 그 무언가가―사람이든, 장소든, 물건이든―나타났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애당초 말해지지 못한 것, 드러나지 못한 것, 입장을 거절당했기에 강제로 퇴장당할 기회조차 누리지 못한 것이 많다.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꺼냈으나 사람들이 보아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가 침묵하지 않았어도 그의 증언은 무시되었고, 그가 나타나기를 꺼리지않았어도 그의 존재는 경시되었다. - P111

내가 정보 수집에 다람쥐처럼 열중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지옥 같은 심문에 대한 불안이었다. 만약에 내가 갑옷을 구성하는 부속물의 이름을 안다면, 단어들의 어원을 안다면, 장미전쟁의 등장인물을 안다면, 순례자들이 밟았던 길을 안다면, 혹고니와 흑고니를 구별할 줄 안다면, 새벽말이라는 뜻의 에오히푸스가 현대의 말의 선조에 해당하는 자그마한 종이었다는사실을 안다면―어려서부터 부적처럼 간직해왔지만 통 쓸모라곤 없었던 또 하나의 정보다―그 지식 덕분에 가혹하고 비합리적인 세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 그 자체가 적을 물 - P116

리쳐주는 것은 아니다. 지식 덕분에 우리가 더 큰 경향성과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에, 우리의 독특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에 그렇다. 혹은 자신의 호기심과, 그리고 호기심이 알아낸 사실들과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 알리바바가 동굴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옳은 단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생각들, 문장들, 사실들 자체가 친구가 되어준다.
나는 열성적으로 읽었고, 몽상했고, 도시를 쏘다녔다. 그것은 생각 속을 쏘다니는 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내 생각 자체가 늘 쏘다녔다. 대화, 식사, 수업, 일, 놀이, 춤, 파티 도중에도 생각은 자꾸만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한곳에 머물면서 사고하고, 숙고하고, 분석하고, 상상하고, 희망하고, 관련성을 쫓고,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생각은 자꾸만 내 덜미를 붙잡아서 처한 상황으로부터 멀리 함께 달아났다. - P117

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나도 궁금했다. 어떤 때는 꿈이 조바심을 부려서 그런 것 같았다. 여기서 저기로 넘어갈 때 그 사이의 공간을 지우고 순식간에 장면을 전환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탈출인 것 같았다. 또 어떤 때는 그것이 재능이었다. 그리고 재능이란 것이 간혹 그렇듯이, 그 재능 때문에 나는 남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되었다. 보통은 문자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날 줄 아는 사람인데다가 보통 혼자 날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남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거나 남을 데리고 날기도 했다.
그것은 일상적인 세상에 속하지 않고 일상의 한계에 구속되 - P119

지 않는 경험이었다. 그것이 글쓰기와 관계있지 않을까, 작가가 된다는 것과 관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니, 왜 그것을 읽기의 은유로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다. 내가 읽는 법을 배운 뒤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바쳐서 쉼 없이 만성적으로 수행한 활동이 바로 읽기였는데 말이다. 읽기란 곧 내가 책 속에 있는 것, 이야기 속에 있는 것, 내 삶과 내 세계가 아니라 아니라 타인의 삶과 상상의 세계에 있는 것, 내 몸과 인생과 시공간에 구속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어쩌면 문제는 땅으로 내려오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 P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