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몸 1 - 몸의 기억과 마주하는 여성들 말하는 몸 1
박선영.유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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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을 왜 하느냐고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씹으면서 괴로워진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씹는 동안에 괴로워진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한 가지 생각만 하지는 않아요. 한 가지 생각과 ‘동시에‘ 다른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우리 엄마가 골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데 엄마가 아프다거나 해서 귤을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면요, 귤을 먹을 때는 귤 맛있다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귤 좋아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괴로워지죠. ‘귤 맛있다‘와 동시에 ‘나는 귤을 먹는데, 귤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귤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사실 때문에 슬퍼져요. 그런 현상이 제게 발생한 거예요.
저는 원래 구박덩어리였어요. 늘 가려 먹고 깨작거리면서 먹었어요. 삐쩍 마르고 병약한, 그런 이미지들이 초등학교 때 저를 따라다녔어요. 한번은 제가 김치찌개를 먹는데 김치 밑에 돼지고기가 있었어요. 검사를 마쳤다는 보라색 도장이 찍힌 돼지가 김치 밑에 있었어요. 그때 살덩어리가 확대되면서 마치 살아 있는 돼지의 등판처럼 보인 거죠. 그뒤로 고기를 씹으면 괴로워졌죠. 또 한번은 누군가 제게 닭 잡는 걸 보여줬어요. 푸드덕거리던 닭의 목을 딱 부러뜨렸는데 바로 죽더라고요. 그뒤로는 닭을 먹지 못한 것 같아요. 닭고기를 보면 그 생각이 나서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고기가 살아 있던 생명으로 보이는 거죠. 점점 더 씹다가 불편해졌다. 씹다가 괴로워졌다, 씹다가 슬 - P25

퍼졌다……
살다보면 떳떳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좀 불편해져도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게 되는 일들이 있어요. 괴롭죠. 저는 어딘가에서 그 무게를 줄이고 싶었어요. 에잇! 나 안 할래. 그런 게 필요했어요. 저는 먹는 것에서 그랬어요.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어떤 장소를 찾은 것이죠. 그게 형태로는 편식이었죠. 요즘처럼 ‘비건‘이라는 말로 확장될 줄 모르고 언제부터인가 그저 내 마음이 편한 식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거예요. - P26

채식하는 사람들은 "너 그러면 채소도 먹지 말지. 채소는 안 아픈가"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요. 그것도 중요한 질문이에요. 식물은 뭘 느낄까. 알면 너무 좋겠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바꾸지 않기 위한 근거로 어떤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떤 말을 할 때 그것이 변화를 막는 도구로 이용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너 고기 안 먹어? 나도 안 먹어볼까" "사실 우리 고기 좀 많이 먹지?" 이렇게 말한다는 건 대단히 훌륭한 일이에요." - P27

엄청 홀가분한 경험이었어요. 누드모델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알몸을 보게 됐어요. 몸이라는 게 각각 다른 느낌과 에너지와 힘을 갖고 있더라고요. 모두가 조금씩 초라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쁘다.
고 이야기되는 몸이나 뚱뚱한 몸이나 깡마른 몸이나 문신이 있는 몸이나, 체형이 어떻든 몸이라는 건 다 각각 다르게 예쁘고 각각 다르게 초라하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몸에 대해 생각을 너무너무 많이 하면서 자라다가 누드모델이 되면서 생각이 없어졌어요. 무던해진 느낌이 들었고 그 경험이 제겐 소중했습니다. - P52

다른 것에 대한 허기도 많죠. 넉넉한 생활비와 전세자금 모으기에 대한 욕망이 많아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면에서 욕망덩어리라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도 많이 하고, 운동도 많이 하고, 연애도 왕성하게 해요. 여러 가지 욕망을 따라가다가 어쩔 수 없이 부지런히 살게 된 케이스인 것 같아요. 그 욕망이 계속될 것 같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건강하고 싶은 사람이고요. 크게 상처받지 않는 몸과 부서지지 않는 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 P56

제모 시술은 아직 안 해봤어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겨드랑이털 제모 시술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해본 적이 없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데요. 감당하기 힘들지만 이 수치심을 내가 그대로 안고 가는 게 미완성인 나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처럼 느껴져서요. 이상한 반항심인 것 같아요.
(...)
극복은 못 했는데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털이 부끄럽다‘는 마음 - P63

과 ‘이걸 왜 부끄러워해야 하지‘라는 마음 중에 그래도 두번째 마음이 몸안에서 힘을 받고 있어요. 부끄럽지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극복할 필요도 없다, 이게 지금 제 안에서 응원받고 있는 문장입니다. 적어도 저의 페미니즘은 털에서 시작됐거든요. - P64

폴댄스는 대상화되기 쉬운 운동이에요. 그런데 폴댄스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상화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많이 해요. 전에는 보들보들하고 가느다란 몸이 예쁘다고 생각했다가 이제는 피부도 하는 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피부 표면으로 폴에서 버티고 내 몸의 모든 부위가 폴 위에서 기능하기 때문에 대상화에서 굉장히 자유로워져요. - P69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해, 이런 말들 많이 하죠. 어떻게 보면 공허하잖아요. 저는 항상 저를 하체비만이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나는 하비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저는 허벅 - P70

지가 굵은 편이기 때문에 허벅지로 버티는 자세를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빨리 배웠어요. 실제로 온몸이 하는 일이 있고 기능이 있으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서 믿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허벅지도 하는 일이 있는데 누가 제게 "네 허벅지 못생겼어"라고 하면 ‘넌 이게 어떤 일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라는 생각이 들 것 같거든요. 편해지더라고요.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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