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비사이드 콜렉티브 외 지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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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트랜스 정치는 애당초 페미니즘의 의제가 아니고, 또한 퀴어 연구의 의제도 아니라고 인식하는 이들에게 페미니즘과 퀴어, 그리고 트랜스 정치학은 어떤 관련도 없다. 그저 자격도 없는 트랜스가 ‘우리도 끼워달라‘며 징징거리는 것일 뿐이며, 페미니즘-퀴어-트랜스 사이의 불화는 트랜스의 불필요한 징징거림과 끼어들기로 야기된 것일 뿐이다. 트랜스만 없다면 불화도, 갈등도, 긴장도 생기지 않으며 여성 범주는 문제가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퀴어-트랜스의 중첩 지대에서 사유하고 활동하는 이들에게 이 불화는 역사적으로 구성된 정동이며 불화 자체가 역사적 기록이다. 그렇기에 불화는 트랜스페미니즘을 첨예하게 고민하도록 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불화, 갈등, 경합으로 기술하는 논의는 무엇을 페미니즘으로, 퀴어 연구로, 트랜스 연구로 규정하는가를 질문하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며 이론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에서 경합의 역사를 쓰고 있지만, 이것은 트랜스페미니즘의 역사, 혹은 페미니즘의 많은 논의 지형 중 하나의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단 한 번도 단일한 의제로 논의를 전개한 적 없듯 페미니즘이 퀴어 이론, 트랜스 연구와 교차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어떤 퀴어 연구나 트랜스 연구는 페미니즘과 무관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페미니스트가 지적했듯, 가부장제는 이성애 이원젠더 체제를 토대로 여성을 동질하고 단일하고 획일한 형태의 범주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작동한다. 페미니즘 연구의 중요한 관심 주제 중 하나가 가부장제를 재/해석하는 작업일 때 이 작업은 여성 범주를 단일하지 않은 범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시작된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퀴어 연구 - P109

및 트랜스 연구와 동시적으로 사유될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트랜스를 통해 여성 범주에 위기가 발생하거나 불화가 등장한다고 인식된다면 이것은 단순히 페미니즘의 주체, 페미니스트의 주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반동‘ 행위가 아니다. 페미니즘과 여성 범주를 매우 복잡하고 불화하는 것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가부장제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퀴어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퀴어 연구에 혹은 LGBT/퀴어 범주에 트랜스가 포함되고 트랜스가 퀴어 연구나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의제라고 인식된다면 이것은 지금까지 안정적 정체성 범주라고 인식한 여러 범주를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을 동반한다. 이것은 동성애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라기보다 동성애(그리고 반대의 성으로 구성된 이성애)와 같은 정체성 범주가 우발적이고 우연히 형성된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때로 정말로 불가능한 범주라는 이해를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트랜스와 페미니즘의 관계가 지금까지 지속되는 역사적 불화를 계속해서 사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라면, 트랜스와 퀴어의 관계는 은폐되거나 누락된 불화를 적극 사유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 범주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는 작업이다. 다른 말로 경합, 중첩, 불화를 사유하는 일은 서로의 긴밀한 관계를 적극 사유하며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 P110

이 ‘낫거나 아니면 죽거나‘ 어느 쪽에도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을 - P118

명명하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Arthur Frank가 제시한 ‘잠정적 (미)회복인 모remission sociey‘이라는 개념이다. 프랭크는 이 집단에 포함되는 사람들로 "암을 앓았던 사람들, 심장회복치료 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당뇨병 환자, 알레르기와 환경적 민감함 때문에 식이요법이나 다른 자기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 인공기관과 기계적 신체조율기와 함께 사는 사람들, 만성질환자, 장애인, 폭력과 중독으로부터 ‘회복 중인‘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걱정과 또 하루를 잘 지냈다는 기쁨을 공유하는 가족"을 예로 든다. - P119

퀴어 장애 활동가이자 작가인 일라이 클레어는 『망명과자긍심』의 2부 1장에서 장애인을 가리키는 여러 단어의 의미와 역사를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 양쪽에서 검토하면서 이 용어들이 ‘퀴어‘처럼 당사자를 위한 이름으로 변환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 바 있다. 클레어는 핸디캡, 장애인, 병신, 절름발이, 지진아, 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 프릭 등의 용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어왔는지, 다양한 시대와 맥락에서 어떤 용어들이 당사자 용어로 받 - P120

아들여지고 어떤 용어들이 차별과 혐오의 용어로 차용되거나 거부되었는지, 그러한 취사선택에 사회적 차원뿐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어떤 역사가 얽혀 있는지를 탐구한다. 또한 각 용어마다 어떤 정동이 결부되는지를 세심히 살피면서 당사자 용어가 반드시 자긍심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용어를 자긍심으로만 새로이 덮어버리고자 할 때 그 용어에 담긴 차별과 억압과 수치심과 슬픔의 역사를 당사자들에게서 지워버릴 위험을 경고한다. 이러한 탐구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병리화와 낙인의 역사를 완전히 망각하지 않으면서도 당사자 이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용어, 단지 자긍심의 이름으로서만이 아니라 자긍심과 수치심의 복잡한 얽힘을 품을 이름을 찾으려는 시도로서, 그리고 나의 경험을 서사화하는 이름으로서 ‘아픈 사람‘이라는 이름에 주목한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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