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유성원 지음 / 난다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그 게이들의 게이스러움을 보면서 저들이 완전히 다른 종족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구나. 옷차림, 손동작, 목소리 등에서 이질감을 느꼈다는 게 아니고 그들이 여럿이라는 점, 그들은 누군가와 어울려 있는 상태라는 게 나는 해결할 수 없는, 풀지 못할 숙제처럼 느껴졌다. - P17

나는 중년 남자들 좆을 빨거나 남자와 항문으로 섹스해서 죽고싶은 게 아니다. 그런 일들은 누구라도 하려면 할 수 있는 선택에 불과하다. 죽고 싶어지는 것은 이런 일을 모르고 살 수 있거나 사람들과 함께여서 ‘외로워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이들을 볼 때다. - P18

나는 ‘행복하다‘ ‘건강하다‘라는 단어가 도무지 실감 안 난다. 그것보다 라면의 조리예나 광고 속 다듬어진 이미지들이 더 진짜 같다. 실제로 그것들은 거의 달성 가능하다. 노력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노력에는 뭔가 빠져 있다. 노력이 아니고 애초에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인데, 해낸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노력하니까 행복해지고 건강해졌는데 다른 무슨 비결이 있냐고 물으면 뭐라 하지? 의문을 품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될 수 없고 건강해질 수 없고 행복해질 수 없다. 그는 ‘건강해진‘ ‘행복해진‘ 사람을 흉내내보려 그의 방법을 따라 하지만 그에게 맞는 방법이 아니다. 그는 실패하고 실패를 반복한다. 그 실패 중에도 성공 사례는 있다. 그게 그를 고통스럽게 하고 자신을 의심하게 한다. - P27

사람과 만나면 화가 난다. 상대방에 의해 내 말이 교정되어서다. - P40

누군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의 내용을 바꾸고 화법을 바꾸게 되듯이 어떤 위치에 누군가가 일시적으로 놓여 있었다는 것, 눈 감거나 잊었으면 되는데 거기에 영향받는 순간이 생긴다. 영향받는다.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 P41

자살 안 하고 싶다. 안 자살이 나를 찾아서 나를 자살 안 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안 자살은 구리지도 않고 백화점에서 파는 물건처럼 고급일 것이다. 자살은 뭔가? 경기 지방 휴게텔의 목 부분이 해진 가운, 거기에 코를 대었을 때 나는 구린내다. 뽀뽀하고 싶어, 하고 다정하게 네게 코를 갖다댈 때 풍기는. - P50

나도 잘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겠지?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출발선이 나는 전주쯤이고 다른 사람은 대전이거나 수원인데 서울까지 같은 시간에 도착하자! 도착지가 같으니 공평하지? 하는 것 같다. 그럴 때면 서울에 도착한 사람들 말고 서울에 안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 P55

자살하고 싶다라는 말은, 아저씨들의 좆을 빨아주고 그들의 정액을 먹고 항문에 사정되고 나서도 제정신이거나 나를 견딜 수있느냐? 가끔씩 그 사실이 힘이 들며 자살하고 싶다는 말이다.
감정은 내가 찜방이나 사우나에서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그 행위를 나무라는 게 아니고 네가 바라는 일 중에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술을 마시고 이렇게 아무나와 하는 것 말고도 혼자이지 않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는 신호다. 내가 혼자이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박살났고 파괴당했으며 물에 적셔졌고 종이였다면 찢어졌다는 느낌이 ‘죽고 싶다‘ 이다. - P56

견딘다는 건 아주 뜨거운 걸 맨손으로 잠깐 잡는 거다. 충분히 쥐고 있을 수 없다. 화상을 입는 일이니까. 하지만 저걸 놓칠 수 없다는 느낌, 이걸 손에서 놓아버릴 수 없다는 느낌이 견딘다이다. - P59

안 견디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것도 안 견디고 싶다. 하면 하는 사람, 안 하면 안 함을 이해하는 사람, 이해할 필요도 없이 바로 수행해버리는 사람이고 싶다. 생각 안 함을 이중으로 생각할 필요 없이, 아무것도 안 보는 사람, 본 것도 안 본 사람이 되고 싶다. 기억을 선택해서 보관하고, 보관한 기억은 영영 떠오르지 않기로 했으면 좋겠다.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인데, 그 기억 속 상황이 재현되는 것이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건 상상뿐인데 상상은 일어날 수 없는 일들만을보여주니까. - P68

자살 충동에 저항하게 하는 건 억울함이다. 주변의 누구와 연결되기라도 했어야 죽음이 뭔가를 파열시킨다든지 일시적으로든 충격을 주든지 할 텐데 도무지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없고 가족이라고 해봐야 내가 무얼 겪고 뭘 느끼고 무엇에 고통받는지 모르는 이들뿐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죽을 수가 없다. - P78

나는 내가 부끄럽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까지 느낀다. 지금은 밖에서 남자들이 큰 소리로 와하하 웃으면서 술 마시고 있다. 나는 저런 자리에 있고 싶어하면서도 그럴 수 없음만을 느낀다. 다들 맨몸으로 달리기를 하는데 나만 모래주머니를 덕지덕지 달고 달리는 기분이다. 그러나 누구도 내게 모래주머니를 차라고 한 적 없고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기에 나는 이 기분을 해결해야 하며 이 문제에 고립되어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달리기‘라면 나는 달리기를 하고 싶지만 몸에 달고 있는 이 모래주머니를 떼어내기 전까지는 달리지 못하겠어, 안 되겠어, 왜냐면 이건 부당하며 이 부당함은 공감받을 수 없는 것이니까.
흑흑이다. 나는 정말 흑흑 운다고 자판을 두들겨서 친다. 안 울면서! 하지만 내겐 이게 흑흑 우는 것이야. 감정을 참았고 안 표현 - P81

하였지만 그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란다. 정말 흑흑 운다, 흑흑 안 울었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운다, 안 운다와 상관없이 나는 흑흑 하였다. 흑흑중이었기 때문이다. - P82

나는 혼자이고 혼자라면 아무것이나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사람들에게 나를 판단할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다. 혼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저는 혼자입니다. 혼자라고 생각하면 덜 부끄럽다. 나는 ‘나‘라고 생각되지 않는 내가 ‘나‘로 전시되어 있는 상황이 힘이 든다. 나는 ‘아닌데요‘라고 말하고 싶고 늘 ‘아닌데요‘라고 말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다. - P102

하고 싶은 것은 목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만질 수 있는 실물 호모를 만나 그의 손을 잡거나 몸을 껴안는 것이다. 후자는 찜방 가 - P102

면 할 수 있지만 목으로 소리 내어 말하기는 그보다 좀더 어렵다. - P103

나는 말하고 싶다. 성대를 사용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 내 목소리를 눈앞에 있는 상대의 귀에 전달시키고 싶다. 항문섹스나 오랄섹스, 정액 먹기 같은 건 얼마든지 한다. 그런 건 얼마든지 해. 그런데 말해진 적이 없다. 말해진 지 오래되었다. 말없이 자판을 두드리며 생각할 뿐이다. 말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서로 말할 수 있고 들을 상대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마주보고 있는, 엇갈렸더라도 한 테이블에 있는,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러면 나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 P105

회복해도 이전과 같을 순 없다, 그건 건강한 삶도 뛰어난 삶도 아니다, 라는 말을 책에서 읽을 땐 기뻤다. 회복하면 너는 뛰어나지고 건강해져, 라는 말을 했더라면 더 깊은 실망과 벽을 느꼈을것이다. - P128

안녕하세요. 천 줄의 문장을 왜 쓰나요? 그 사이사이에 있는 한 줄, 세 줄의 문장을 가리기 위해서다. 보여주려고 쓰는 게 아니고 감춰주려고 쓴다. 어떤 한 문장만 읽으면 되는데 그걸 허락할 수는 없고 읽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믿음으로. - P143

안 건강이의 문제는 마치 그가 노력할 수 있다면 건강이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고 싶어서 생긴다. 안녕하세요? 세상엔 건강이가 있고 건강이가 안 건강이가 될 순 있지만 안 건강이가 건강이가 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당신이 안 건강이라면 너는 안 건강이입니다. 죽을 때까지. 왜냐면 너는 건강이였던 적이 없었거나 건강이여본 적이 없고 안 건강이로 존재하는 법밖에 몰라서 안 건강이로 있을 수밖에 없어요. 여보세요?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돈이 많아지겠죠. 그 정도라고요.
살아 있음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이걸 스스로 과소평가했거나 측정해본 적 없으니까 상상 속에서, 나는 에너지가 백있으니까 그중 삼십이나 사십 정도를 나를 수정하는 데 사용할수 있을 거야, 믿고 싶어지죠. 하지만 대부분의 안 건강이들은 존 - P157

재하는 것에 백을 다 써버려서 남은 힘이 없어요. 여보세요? 내가 어떤 재질의 옷을 구입하거나 착용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죽을 때까지라고요. 제가 살아 있음에 에너지를 덜 써도 되게 살아왔다면(컴플렉스 관리, 기억 관리, 생활 관리, 감정 관리 등) 당연히 그 여분의 에너지를 곳곳에 투자하면서 지내왔겠죠. 그런 경험 자체가 전무하다고요. 해왔던 대로밖에 살 수가 없어요. 뭘 바꿀 수가 없다고요. 왜냐면 자신이 바뀌는 게 아니고 상황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어서. 생활을 저 혼자 감당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도움이 생긴다, 같은 거라고요, 그걸 바라는 순간 감정은 악화되니까 관리 비용이 늘어나겠죠.
물에 사는 참치랑 땅에 사는 염소는 친구할 수 없어요(해도 되겠죠. 상상 속에서는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연결감을 가지며) 혼자 뭘 해내는 것과 (고립감을 느끼며 고립된 채로) 혼자 뭘 해내는 건 정말 다르다고요. 살아간다는 건 타인과 감정적 신호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일인데 그것이 가능한 사람과 그게 거듭 벽에 부딪힌다고 느끼는 사람의 현실은 다르겠죠. 계속해서 고립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까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는 행위도 안 고립된 사람은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비용만 발생하지만 고립된 사람은 자신이 고립되었다는 감정 비용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이죠. - P158

나도 모른다. 몰라도 행동할 순 있으니까. 내 행동에 왜, 하고 물으면 할말이 없다. 상대방이 어떤 답을 듣길 원하는지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다퉈서. 누군가를 좋아할수록 이 다툼이 세지고 나는 후회한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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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점 오천 개 찍을 수 있지만 안 찍는 것처럼 살고 있다.
.......................................... 키보드로 점 오천 개 찍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아마 할 기회 없을 것이다. 내가 안 할 테니까. 인생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거 같다. 점오천 개 찍기. - P181

안녕하세요? 용기는 작은 구슬이고요. 그것들은 쌓아올려지지않는답니다. 수시로 퍼지고 흩어지는 감정에 불과하다. 한데 모아놓아도 높이 쌓을 순 없다. 늘 굴러다니기만 한다. 나는 그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쌓으려 했다. 그걸 노력이라고도 생각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인데…… - P203

외로움이 뭘까?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말 알고 싶고 그 ‘어떻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인생 뭔지 알 수 없는 중에서 혼자 노력했지만 그건 정말 어리둥절 속에서의 노력이었다. - P219

외로움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요? 일단 외로움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럼 외로움이 해결됩니다. 외로움을 해결하려면 외로움을 해결해야 한다라고 써보면 알 수 있다. 외로움을 해결하려변 고추 빨아야 한다가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외로움을 해결하려면 외로움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이 문장을 어떻게 실천할수 있는지는 고민 말아야 한다. 나는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제발 해야 하는 일은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동어반복을 외움으로써 가능해진다. 그것이나에게 책상이 책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가 책상을 다른 것이라 믿고 싶을 때에도 말이다. - P230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속상한 것, 그리고 배우게 되는 것은, 우리가 기분이 좋고 고통이 없을 때 남에게 친절하기가 얼마나 쉬운가다. - P240

타인을 대하는 건 쉽다. 내가 아니니 무시해도 되고 상관없는데 나를 대하는 것이 어렵다. 내가 나에게 하는 요구들(나를 위험하게 하지 마라, 슬프게 하지 마라, 외롭게 두지 마라, 나를 십 년 뒤에도 살아 있게 해라)의 방향이 사실 괄호 안에 열거한 내용과 대립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내가 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달달 외워서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이러한 이유로 사랑받을 만합니다 하며 다가오더라도, 심지어 그것이 내가 그렇게 보여지고 싶었던 모습이더라도 사랑은, 존재는, 자격의 문제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 날 정말 더 못하겠네 싶으면 거기까지 하면 된다. - P242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걸 오늘 하면서 산다. 이를테면 고추 오십 개 빨기. 정액 받아먹기. 노콘으로 항문섹스하기. 하고 싶지 않은데 할 수 있어서 해야 한다고 느낀다. 아무도 나처럼 이렇게는 하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내 감정은 없는 것처럼 나는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나는 안 건강한데 달리 방법이 없으니 안 건강하다는 사실을 최선을 다해 잊어버리거나 아파가지고 팔짝 뛰고 하는 수밖에다. 할 수 있을 때 안 하기가 정말 어렵다. 쓰레기를 버려도 되고 욕해도 되고 죽여도 되고 때려도 될 때 안 그러기가 안 쉽다. - P256

언젠가는 폭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지겠죠. 지금은 방법이 없다고 느끼지만요. 다른 행동을 안 하려면 이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느끼는 상황을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까? 도와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통제하려는 노력은 그 시도만으로도 나를 곤경에 빠뜨린다. 그간의 경험으로 나는 뭘 해야 한다(하고 싶다가 아니라)고 느낀다면 그걸 하지 않을 방법이 혼자서는 없고 (나에게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혼자가 아닐 방법이 없어서 결국 해야한다고 느끼는 일들을 하게 된다. 이것을 혼자 막아보려고 하거나 스스로 속이려 하면(한 시간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야) 반드시 보복당했다. 뭘 해야 한다고 느끼면 빨리 해야 한다. 그후에도 감정이 진정 안 되면 빨리 뭘 먹어서 몸을 마비시킬 필요가 있다. 외로움보다는 폭식 후 겪는 불쾌감과 깨달음(나는 폭식했구나!)이 좀더 견딜 만해서? - P258

더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 좋겠죠. 그게 훨씬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만 쓴다. 누구에게 이걸 봐! 하는 게 아니고 내게 보여주는 것이 첫째 목적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글은 이미 많다. 그들은 그걸 보면 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써야 한다.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추 빨고 - P268

정액 먹고 싶은 마음과 여러 남자와 노콘으로 항문섹스하고 싶은마음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야겠죠. 그것이 저에겐 ‘행복‘이니까요. - P269

왜 어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이나 충동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데 누군가는 그러한 감정이나 충동에 ‘시달려야‘ 할까. - P276

사람들이 많이 있는 모습을 보면 왜 힘이 들까? 그들이 여럿이고 나는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멍청해 보인다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어서? 그 사람들이 왜 멍청하냐? 모를 뿐이다. 어떤 걸 알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산다. 나도 모르는 게 있으니까 알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다. 오랜만에 홍대에 - P284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보니까 그 사실이 무섭고 겁이 났고 내가 확실하게 잘못 살고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파주에 산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자극으로부터 나를 떨어뜨려두었는지 새삼 느꼈다. 종로는 괜찮은데 영등포는 괜찮은데 홍대는 안 괜찮은 이유가 뭘까요? 이들이 나와 다르다고 느껴서. 이들의 삶과 나의 삶이 그 어느 곳에서도 교차할 일 없이 죽는 날까지 보내지리라고 예감해서. 나는 어떤 것이 싫어서 그게 싫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 않아야 하는 게 규칙일 때, 그래야 돈을 (더 많이) 벌 수있을 때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얼 직업으로 삼아야 할까? 어떤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끔찍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자신감이 생기고 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분에서 잠시라도 떨어져나오면 이건 다 거짓말이고 내 판단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느낌에 충실하려면 우울해져야 하고 그걸 감당하는 것이 불편하니까 포기한다. 최대한 피해야 해요. 자극하는 것들을 상대하거나 맞서면 안 되고 피해야 합니다. - P285

나는 ‘변태‘고 문제가 있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사랑이 아닌 사람. 욕정뿐이고 지저분하고 더럽고 욕할 수 있고 침 뱉고 자기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속고 있는 거야.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주변에서 혼내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막 사는 거야. 망하고 있는 거야. 완전히 잘못 생각하는 거야. 그러다가도 그것은 생각의 영역이고 나는 생각만으로 살 수 없다. 생각 가지고 밥 먹을 수 없고 생각만 가지고 행복할 수 없다. 나한테는 몸이 있고 고추가 있고 입이랑 항문이 있고 남자를 껴안고 싶다. 남자의 정액을 먹고 싶고 그것이 나인데 내가 아닐 방법이 없다고요. - P293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까봐 무섭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떠하다 느끼는지 그 실감을 외부를 통해 설계하거나 상상하고 싶지 않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나인데 어째서 그 얼굴을 비출 거울이 필요한가. 누군가가 너 아프구나 라고 말해야만 고통이 승인되는 것도 아니고 외부의 평가나 반영 없이도 그것은 있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신체 일부를 어딘가에 부딪혔을 때 듣는 사람이 없어서 신음할 수도 없이 입 다물고을 때의 통과가 있다. 반드시. - P294

편견 없이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그건 그 상황에 놓이지 않았거나 아직 그런 대상을 못 마주쳤을 뿐이지 그러한 상황에 놓이고 그런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가 누구라도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될걸! 그런 일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 일을 당해도 호소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고 그런 일을 당했다는 이유로 그 행위자에게 같은 수준의 고통을 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있다. - P323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폭식하지 말고 밤에 일찍 자고 야채 많이 먹고 이런 건 알고 있지만 우리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폭식을 하고 뭔가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게 어디서 오는 걸까. 만약에 이 위험을, 열 가지 위험 중에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면 방법은 뭘까. 저는 그중 하나로 게이들이 사회에서 받고 있는 차별이나 이런 걸 일시에 없앨 순 없지만 그런 것이 개인에게 위험 행동으로 나타날 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지금 트루바다나 프렙이 등장했다고 생각하거든요." - P328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내가 그 일에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보여준 합리성으로 사람들이 설득되리라고 낙관적인 착각을 하게 된다. 어떤 일은 막상 겪고나면 회복이 안 되고 뭐가 부러졌으면 부러진 채로 살아야 한다.
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때는. - P341

멀리 무대의 그애를 휴대폰 줌으로 잡아당기면서 액정 속 흐릿한 얼굴을 손끝으로 문질러보았다. 얘를 얼마나 보고 싶어했나 하는 마음과 그것이 얼마나 나만의 것인지 생각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남에게 책임져달라고 할 수 있어? 없으니까… 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P344

남자랑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왜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만 사는 걸 선택하는지 알 것 같다. 무엇이든 지속되는 건 없고 끝난다는 사실이 가르쳐주는 것.
희망하고 소망하는 게 있다면 좋겠지. 살아 있는 데에는 도움이 될 테니까.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가 지긋지긋하지만 이걸 견뎌야 한다. 나는 아무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보이는 상태를 참기 힘들다. 뭐가 잘된다면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운이 좋았을 뿐이다. 듣기 좋은 말 하기는 쉽다. 옳은 말 하기도 쉽다. 그렇게 살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겪은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점에서 탈출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지나가야 할 것들이 지나갈 때까지는. 작은 것은 작고 큰 것이 크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는 알고 있어야 한다.
다 흘러가는 중이고 흘러가는 중이다. 바라는 건 뭘까? 스스로
‘너는 이런 걸 원하지?‘ 물을 때마다 나한테는 입이 없다고 느낀다. - P348

노콘 항문섹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으나 어떤 젊은이들, 아름다운 청년들을 인스타 등에서 목격하면 저들이 정말 게이구나 나와는 다르구나, 하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동성애자, 양성애자, 이성애자 이렇게 있는 게 아니라 신체나 외모 조건, 삶의 양식에 따른 분류를 더 강하게 느낀다. 나는 동성애자로서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이라 생각하고 있으나 그러한 나의 성행동, 내가 섹스하는 것과, 저 미청년이나 젊은이들이 동성과 관계맺는 것은 다른 질감이라 느낀다. 나의 질문은 어디로 발전해야 할까? 회의에서는 이제 정해주자고, 우리가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 안에 싸도 돼요?라는 말에는 안에 싸도 된다,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논쟁은 과학적인 합의에 도달했다면 그 논의의 출발선을 그어주자고 한다. 그렇다면 그다음에 오는 게 뭘까. 누가 늙은, 늙어간 혹은 외모 자원이 부족한 내 입에 싸줄 것인가 혹은 자기 입에 싸게 해줄 것인가, 이것은 정말 다음 질문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 내가 다르게 경험하는 특정 형태의 만남들, 관계들, 사람들을 어떻게 언어로 정의해야 할지 오늘 어렴풋하게나마 어쩌면 이것이 ‘안개‘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게 되었던 거 같다. 뒤늦게 글로 쓰면서. - P364

내가 폭식을 할 때 양배추나 샐러리를 먹진 않았던 것처럼 항문섹스 역시 기호가 반영된 행동이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지니고 있는 외로움과 관계맺기의 어려움의 결과로 위험행동을 했다는 인과관계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더라도 그것만이 행동을 결정하진 않는다. 모든 게이 남성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여 다른 남성의 정액을 먹거나 다른 남성의 성기를 자신의 항문에 삽입하진 않으니까. 이성애자라고 하여 똑같은 생애각본을 따르진 않듯 게이 남성으로 정체화했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욕구에 대한 차이가 나를 만든다. 동시에 이러한 욕구는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게 가려지며 나아가 과잉대표되고 왜곡당한다. 어떤 행동이나 말들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숨겨져 있다. 나는 공적 공간에서 항문섹스, 노콘 섹스 등의 단어가 노출돼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혐오세력이 아닌 당사자의 경험과 언어로. 어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취급당할 때, 그의 얼굴을, 표정을 상상할 수 없을 때 그 삶의 토대와 조건은 취약해지기 쉽다.
일부 게이 남성에게 만남의 통로가 되는 어플 혹은 사우나 등의 공간에서의 문법은 그에게 관계의 형태와 질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성애자와 달리 아직은 제한적인 선택지 안에서 친밀함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시대와 사회, 공간의 한계를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 바라보게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이렇듯 차별과 - P369

불평등은 개인의 특성이나 문제행동의 결과처럼 보이도록 강제된다. 구조적 취약성을 소수자 개인이 떠안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세계에서 그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다수에게 늘 ‘비용‘이라는 부담으로 인식되어 변화를 저지시킨다. 소수자 개인이 처한 환경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들지 못하면 그는 동일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 P370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나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하고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나에게 친구가 있다면 누구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했다. 내가 편안함을 느낀 곳은 남자와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모이는 공원 화장실 같은 곳이었다. 거기는 상대를 인격적으로 기대하지도 않고 이 사람의 이름이 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오로지 싸고 싶어서 오거나 싸려고 가는 곳.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오는 곳이었다. 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 다니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비난하는 방식은 질병 혐오였다. 저렇게 하면 병 걸려, 우릴 욕먹게 하는 걸레 같은 애들.
공원 화장실에서 섹스하면 성병에 걸리고 집이나 호텔에서 섹 - P370

스하면 성병에 걸리지 않는가? 성병을 비롯한 여러 위험을 감소시키는 일과 내가 섹스하는 상대가 누구인가라는 관계성, 해당 공간에 대한 낙인은 다른 결의 문제임에도 이것들을 한데 섞어 사고하는 적극적인 무지는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렇게 ‘더러운‘ 사람을 낙인찍음으로써 ‘건강한‘ 사람을 분리해내려는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영역이 HIV/AIDS였다. 나는(예)비감염인으로 언제든 HIV감염인(이하 감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성관계를 하는 이상 성정체성이나 성행동의 형태에 관계없이 HIV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371

남자와 섹스하는 남자를 뜻하는 MSM은 HIV 감염취약군으로 분류된다. 이 말은 기존 주류질서에 맞게 설계된 사회에서 배제되고 드러나지 않아서 이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HIV감염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해당 집단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유가 아니라 이에 걸맞은 접근법과 정책을 세워야 할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해당 집단을 낙인찍고 주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의 특성에 맞는 의료 조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이 용어는 동성애자라고 자신을 정체화했거나 표현하는 사람만이 동성과 섹스하는 게 아니라 이성애자, 혹은 나의 남편도 남자와 섹스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맥락에서 나온 용어이기도 하다. 성행동의 결과인 HIV감염을 이성애/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의 문제로 환원하는 혐오세력의 선동은 정작 사람들을 HIV감염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HIV는 동성애, 혹은 항문섹스를 한다고 자연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애자라 하여 모두 동일한 형태로 성관계를 맺고 살아가진 - P376

않는다. 관계의 형태와 질감은 개개인에게 다르게 경험된다. 이성애, 동성애 등은 누군가의 삶을 이야기하는 한 조건일 뿐이다. 두군가는 성적 끌림을 적게 느끼고, 누군가는 활발한 성적 실천을 한다. 불특정 다수와 무수히 ‘위험한 섹스를 하였어도 HIV에 감염되지 않을 수 있고, 단 한 번의 성관계로도 HIV에 감염될 수 있다. 이때 이 ‘위험‘을 무엇이라 정의하느냐에 따라 접근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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