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 P12
‘물음: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 시간의 길이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것. 방법: 치과 병원 대기실에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여러 나절을 보낼 것. 일요일 오후를 자기 방 앞의 발코니에서 보낼 것.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어로 하는 강연을 경청할 것. 가장 길고 가장 불편한 철도의 코스를 골라 가지고 물론 입석으로 여행할 것. 공연장의 매표구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오면 표를 사지 - P40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그의 망설임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또한 그가 불안과 믿음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고 있었던 것도 그렇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가지는 않겠지. 너무 - P54
나 어리석은 짓이야." 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휴머니스트들이었다. 즉 그들은 재앙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시민들이 딴 사람들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업을 계속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해 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 P55
리샤르는 주저하다가 리유를 건너다보았다. "솔직하게 당신 생각을 말해 주시오. 당신은 이것이 페스트라고 확신합니까?" "질문을 잘못하셨습니다. 이건 어휘 문제가 아니고 시간 문제입니다." "선생의 생각은 결국" 하고 지사가 말했다. "이것이 설령 페스트가 아니라 해도,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취하는 예방 조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겠군요." "기어코 제 의견을 필요로 하신다면 사실 제 의견은 그겁니다." 의사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마침내 리샤르가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그 병이 페스트인 것처럼 대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표현은 열렬한 동의를 얻었다. "당신도 같은 의견이시죠, 동업자 양반?" 하고 리샤르가 물 - P73
었다. "표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고 리유가 말했다. "다만 시민의 반수가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머지않아 실제로 그렇게 될 테니까요." - P74
평상시에 우리들은 누구나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사랑이란 예상 밖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또한 우리들의 사랑이 보잘것없다는 것도 다소 담담한 태도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추억이란 더 까다로운 것이다. - P102
피로해진 탓도 있고 해서 그는 무심한 사람이 되었고, 점점 더 말이 적어졌으며, 젊은 아내가 자기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계속 이끌어 나가지 못했다. 일하는 남자, 가난, 서서히 막혀 가는 장래, 식탁에 앉아도 할 말이 없는 저녁때의 침묵, 그러한 세계에 정열적 사랑이 파고들 여지란 없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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