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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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가 형사의 날카로운 탐문 수사와 허를 찌르는 반전의 결말.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그 명성답게 그의 50여 편의 작품 중 19편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 졌다.

가가 형사 시리지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기린의 날개1986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에서 출간된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또한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감동을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졸업, 잠자는 숲, 악의,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붉은 손가락, 신참자 등이 있다. 지금까지 나온 가가 형사 시리즈물 중에서 아직 읽어 본 책이 없지만 갈릴레오 시리즈를 봤던 경험에서 보자면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치밀한 구성과 빠른 전개, 읽을수록 빨려드는 흡입력과 가독성, 소름끼치는 반전의 매력이 넘치는 이야기는 그대로 공존하고 있다.

 

살인 사건 발생 후 범인을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가가 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가지만 사건 중심에 관련된 인물들의 사연들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수사의 범위를 넓혀 간다. 수사가 진행 될수록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이야기는 쉽게 범인을 잡을 것 같은 착각을 만들지만 절대 호락호락하게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주변 인물 수사 덕분에 더욱 많은 단서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사건의 전말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은 결코 주지 않고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에서야 모든 것을 밝혀낸다. 그렇기 때문에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결말을 추측하기 보다 책을 천천히 읽어가면서 마지막에 놀라운 사실을 몸소 느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결말을 예상할 만한 단서나 줄거리를 늘어놓지 않을 것이다.

 

독자의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리고 독자의 생각을 너무도 이기적일 만큼 손에 쥐고 쥐락 펴락 해대는데 은근 신경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 반전의 묘미를 위해서는 인내와 참을성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독자들에게는 단서를 노출하기를 꺼리고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자들은 전적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드러나는 부분만 사실로 받아 들일 뿐이지 어떠한 추측을 하더라도 그것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예상하거나 범인을 알아내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저 지켜 볼 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건……,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았고,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도 들어서요.”(p411)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소설로 탈바꿈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재조명하는게 특징이다. 이 작품에서는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상처받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어버린 아이들의 모습과 회사와 직원의 갑을 관계에 얽힌 부조리한 현실, 가족 문제 등을 반영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극심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죽어도 우선 걱정인 것이 경제적인 문제이다. 남자 친구의 죽음에도 당장 자신의 앞가림을 위해 짜 맞추기 방송 인터뷰에 순순히 응하는 나카하라 가오리의 모습에서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나와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도시 한복판에서 칼에 맞고 사망한 아오야기 나케아키의 가족들이 가장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보였던 반응도 인상 깊다.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보다 더 큰 걱정이 현실적인 돈 문제인 것이 안타까웠고 가족들 간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화 단절이 오고 이름만 가족 인 채로 지내다 누군가의 죽음 후에야 후회하게 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가슴 아팠다. 그러나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은 이보다 더 잔인한 소설인 것 같다. 소설에서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명백하게 밝혀내고 아름다운 결말을 예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상상 그 이상의 것들로부터 괴롭힘을 받고 수사 종결이 되도 미결로 남는 사건이 태반이다. 시원한 해결책과 수사라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 중요한 건 그 실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야. 도망치거나 외면한다면 똑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게 되는 법이란다.”(p397)

 

가가 형사가 다른 형사들과 다르게 많은 사건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관심과 끈기, 관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고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따져보지 않으면 가려지고 묻힌 단서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냉철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 살인 사건 또한 잘 해결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형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왜곡되어지고 알지 못하는 검은손의 힘에 휘둘려 진실과 사실들을 은닉과 은폐되어지는 일이 없어진다면 소설이 현실이 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을 어른들이 만들어 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가 형사와 같이 바르고 강직한 신념과 소신을 가진 정의로운 사람이 이 사회에 널리 보편적으로 존재해야한다.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을 소설로 만나 보는 일은 식상한 듯 하지만 한편으로 참 새롭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것이 현실이고 소설인지 모르겠다는 반응 또한 재미있고 무엇보다 작은 존재로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세상에 큰 소리치지 못하고 반항하지 못하는 일도 그저 이야기를 읽는 것 만으로도 관심을 갖는 행위를 통해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매번 다른 소재로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큰 기대에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멋진 작품을 선사해준 작가의 노력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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