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루의 달걀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 속에서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죽여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리 속에서 튀지도 못나지도 않게 유지해 가는 삶이 가장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여기며 누군가로부터 눈 밖에 나길 꺼리고 항상 상냥하고 좋은 모습으로만 비추어 지도록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낸다. 너무 착해빠져서 이용당하지 않도록, 너무 나쁜사람이라 욕먹지 않도록 중도를 지켜나가는 일이 사람관계를 맺는데 사회 생활을 해나가는데 중요한일이 되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손가락질 받더라도 떳떳하게 당당하게 살아 갈 수는 없을까? 그것이 잘못된 일일까?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무서워서 감추고 쫒기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삶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과 의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마음씨가 참 고운 그 사람.

무상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요즘 사람들과 다르게 어떠한 사심과 욕심도 없이 타인의 행복과 안위를 빌어주고 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돈 앞에서 장사 없다는 말이 요즘 세상에 딱 들어 맞는 말인데 돈 앞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며 자신의 의지를 꿈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주위에서 모두가 안 된다라고 말할 때 할 수 있다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고 이루어 내는 모습은 마치 열악한 조건에서도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과를 이루어 낸 금메달리스트 같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 무턱대고 덤벼든것도 아니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에서 나오는 자신감, 사람을 믿고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모든 일에 임했던 그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이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께 자주 듣던 말인데, 내가 한 일은 이 달걀처럼 언젠가 내게 돌아온대. 그게 자연의 섭리야.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면 나도 누군가의 친절을 받게 되고, 폭력을 휘두르면 언젠가는 힘든 일을 당하게 돼" (p52)


무상 곁에는 무상 만큼이나 좋은 사람들이 있다. 경상도 남자처럼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착하고 무덤덤하게 감동을 주는 다이키치, 겉으로는 센척하지만 속은 벚꽃 잎 마냥 여린 돌싱녀 나오코, 도사님 코스프레로 웃음을 선사해주고 가난하지만 작은일에도 고마워 할 줄 알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는 뚝심있는 와카베, 겉으로 생색내기 보다는 마음을 먼저 전할 줄 아는 호토하라 마을 어르신들.

 

농부의 자식이라 그런지 작은 시골 마을의 전경이 더욱 가슴에 와 닿고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내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잠시 추억에 젖어 보기도 한다. 시골 사람들의 특징이 자신이 직접 기르고 키우고 것들은 내가 먹을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해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농작물이 없다. 자신들은 아끼고 못먹고 좋은것은 다 자식을 위해 내어 주시는 마음이 그대로 깃들여 있다. 그러니 대량 생산되어 나오는 식품들과 맛과 영양, 정성이 비교가 될 수 있겠는가. 야규 할배의 채소에서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단맛과 풍미가 느껴지는 것은 바로 정성과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 하지만 주위사람들을 돌볼 줄 알고 남몰래 신경써주고 챙겨주는 마음씨는 오랜 세월 터득한 사람만의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



도미코 아줌마의 투박하지만 맛은 최고인 요리들과 야규 할배의 채소의 맛, 겐상의 맛간장을 곁들인 무상의 공주님들이 낳은 일품 달걀로 만든 달걀밥, 이치에 할머니의 곤약 요리, 꿈기분 쌀밥, 보석 빛 맑은 물 맛이 궁금해진다. 그 이름도 이쁘고 맛도 일품일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인간이 만들어 낸 요리에는 아름다움과 따뜻함이 함께 곁들여져 있어 분명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맛이 날 것 같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목적이였다면 무상의 계획은 아마도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보다는 마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프로젝트였기에 어려움속에서도 서로 돕고 도와 힘든 순간을 잘 이겨내고 일이 잘 풀리면서 더불어 잘 사는 동네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각박한 세상으로 변했는지 모르겠다. 어릴적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럴수도 있지만 그때는 정말 행복했고 사람들이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싫어지고 서로 어울리기 보다 모른척 무심한 관계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문제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삶의 질을 떨어뜨려 놓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잠시 편해지자고 나 혼자만의 영역 안에서 갖혀 조용히 지내는게 오히려 편해져버렸는지 모른다.


"일단 닭장 밖에 꺼내 놓고 한동안 자유롭게 놔둬. 그러면 뒤틀렸던 기분이 조금 풀리는지 원래 있던 닭장으로 돌려보내도 다른 닭을 쪼지 않더라고, 닭도 인간들처럼 자기 스트레스를 남한테 터뜨리면서 사는 모양이야." (p97)


욕심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더 갖지 못해서 안달이고 불안해 한다.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을 잊어버린체 없는 것을 체워 넣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쉬지 않고 달려 간다. 누구를 위한 삶인지 돈의 노예로 태어난 것인지 나 자신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의 원형인듯 하다.

 

 

 


《히카루의 달걀》안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현실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 힘들고 꿈꿔왔던 일이 순탄하지 않아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현실의 고통 속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의 소중함과 작은 일에도 노력보다는 포기가 빨랐던 내 모습을 뒤돌아 보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리사와 아키오님의 글에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모습이 그려져서 좋다. 훈훈한 정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여유로움이 있어 좋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잊고 살았던 것들을 뒤돌아 보게 만들어 주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깨우쳐 주는 큰스님 같은 존재라고 할까? 읽으면 읽을 수록 빠져들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들을 갖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인생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것인가? 고민과 걱정거리는 끝이 없고 고난의 연속인것만 같은 시간들이 그의 소설속에서는 아름답고 그래도 살기 좋은 곳이라는 희망적인 모습과 함께 늘 긍정적이고 밝은 느낌이 있어서 소설을 읽고 난 후에는 세상이 조금 더 밝고 아름다워 보이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그래도 살아볼만한 세상이 아닌가라는 생각 말이다.


"아까 인생은 가지각색이라고 했지? 그 가지각색의 경험을 전부 까끌까끌한 사포라고 생각해 봐. 사포가 마음을 아프게 해도 꾹 참고 그 고통을 극복하면 이전보다 더 반짝반짝 구슬처럼 빛나는 마음을 갖게 돼." (p108)

 

《푸른 하늘 맥주》, 《나쓰미의 반딧불이》를 연상 시키는 부분들이 등장할 때 혼자 피식거리며 웃어 보기도 하고 아키오님의 글쓰는 센스에 또 한번 감동을 받았다.

작가마다 좋아하는 단어가 있고 소재가 있겠지만 아키오님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모두 소설속에 담겨 있어 더 크고 은은하게 오래 가슴속에 남는지도 모른다.

히카루의 달걀이 만들어 낸 기적은 믿음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의심하고 불신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기 보다는 상대를 믿고 인정해 주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밝고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무상의 바보같이 착해보이는 얼굴을 떠올리며 누군가에게 내 모습이 착해빠진것이 아니라 편안한 인상을 줄 수 있게 더 밝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가 불안해서 현재를 어두운 기분으로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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