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의 존재』를 통해 이석원이란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의 글에서 느꼈던 진실함과 일상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단 한 번뿐 이였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6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그의 글을 읽어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아 낼 줄 아는 작가의 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 보다 더 보통 사람 같은 작가의 일상에서 우리는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느낄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소설과 드라마가 주는 재미와는 다른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나와 세상과의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경외심이나 연예인과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이석원이라는 사람은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Musician이기 때문에 연예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그의 글은 화려하고 차별화된 연예인의 삶과는 다르게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 보통의 존재성 그 자체를 들어내고 있다. 흔히 자신의 불행과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느끼면 곧 자신의 행복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늘 무엇과 비교하는 습성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삶의 만족감을 결정하곤 한다. 나 또한 그의 글을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현재의 나를 만족해하는지도 모르겠다. 고민과 걱정, 불안, 고난 등이 꼭 너의 일만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은 이석원과 김정희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일기장을 들춰 보는듯한 기분이 든다.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여러모로 흠이 많은 남자 이석원과 정신과의사인 돌싱녀 김정희의 평범하지 않는 만남의 기록들로 하나의 긴 이야기 속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주제를 안고 있다. 우리 삶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 미묘하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인지 느낄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 것 같다. 우연처럼 찾아온 사람이 필연적으로 만나지게 되고 시간이 지나 인연이 되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남자인 이석원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심리 묘사가 아주 자세하고 치밀하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될까 싶은 사적인 이야기들도 많아 솔직한 작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고 왠지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다. 작가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작가가 느끼는 생각과 느낌을 마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와는 상관없는 나 자신의 문제이기에, 이렇게 엇갈릴 수밖에 없으며 사랑의 그런 영원히 완결될 수 없는 불완전성이야말로 사랑을 영원하게 해주는 요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p.223)

 

사랑이 언제나 향기로운 꽃처럼 아름답고 달콤할 수만은 없다.

나와 그대의 운명인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찾아오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믿고 있던 이석원은 자신의 노력 아닌 노력의 산물로 작은 설레임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키워나가게 된다. 처음부터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시작하는 사랑보다 어느 순간 문들어가는 사랑이 더 애틋하고 크게 느껴진다. 영원할것 같은 불타는 사랑보다 한 순간이지만 은은한 잔향을 남기는 그런 사랑이 더 그럴듯 하다. 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시작되고 또 끝나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수 없이 반복되는 과정속에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는 듯 하다. 또한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인생일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남과 이별을 하나로 단정지을수 없지만 그 어떠한 사랑도 하찮게 여길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나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고마움, 아련함도 느껴보고 앞으로의 다가올 사랑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도 새롭게 다져본다. “사람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야!” 라는 말이 글을 읽는 내내 들었던것 같다.

가위, 바위, 보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을 가려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였던 철수를 통해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듯 싶다.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처럼 느꼈던 철수는 불운 올림픽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깨달아 과정 속에서 비로서 행복을 느끼는 것 처럼. 이것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다 잊고 새롭게 인생을 써내려가려 할 때 이제 절대로 다시는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그녀로부터 지금 그의 휴대폰에 뜨는 김정희라는 이름처럼 모든 것을 내려 놓으려는 순간 찾아오는 또 다른 기회처럼 우리는 아직 포기하긴 이른것 같다.

글이 끝나는 순간이 더 짜릿하고 두근거림이 강하게 느껴졌다.

오늘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책장을 처음으로 넘겨 이 글을 읊어 본다.

 

“지나온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굳이 복습하지 않고 다가올 빛나는 순간들을 애써 점치지 않으며 그저 오늘을 삽니다.”

 

 

 

어렵게 산 옷 두 벌을

오늘 백화점에 가서 환불받았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는데

과연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도무지 확신이 들지 않아

며칠을 고민하다 그리하였다.

매장에 들러 환불을 요구하자

한 곳에서는 두말없이 처리를 해주었고

한 곳에서는 다소 불친절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품 안에 있던 물건을 돌려주고 나자

비로소 그 옷이 내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가

선명해지더라.

한 옷은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이 나지 않았고

한 옷은 내내 눈에 밟혔다.

어떤 게 정말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이지

떠나보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옷이야 또 가서 사오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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