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주 오늘은 시리즈
이종숙.박성호 지음 / 얘기꾼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내 뜨거웠던 태양의 열기가 점차 가시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제법 쌀쌀해 지는 가을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바로 가을이기도 하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따사로운 햇살과 옷깃을 붙잡는 바람과 대지의 풍요로움이 사람 또한 살찌게 만든다. 수학여행지로 가장 많이 가는 곳이 바로 경주인데 그 이유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문화재와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보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수학 여행길에 오른 학생의 입장에서는 멀고 긴 도보의 시간들이 힘겹게만 느껴질 것이고 역사적 이해가 밑바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작가 또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통해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야 의욕적으로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여행을 했을 것이라 생각 된다. 나 또한 몇 년 전에만 해도 관심이 없었는데 역사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새롭게 생기면서 자발적으로 책과 미디어를 통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경주 여행에 대한 관심은 역사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더욱 커져갔고 경주 관광청에 문의하여 무료 안내 책자도 몇 년 전에 받아놓고 여행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여행 책자만으론 성에 차지 않아 더 많은 역사적 지식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경주≫란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흔한 여행안내서가 아닌 작가가 직접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경주에 관한 아주 사소한 보고서이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작가 스스로 알고 싶어 공부하고 하나씩 알아가며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여행이건 공부건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일에서는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열정은 그 어떤 것 보다 강하고 멋진 것이다.

경주를 여러 번 다녀왔지만 올 때마다 더 공부를 하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많은 지식들을 습득한 후 경주를 다시 찾은 작가는 물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많아졌겠지만 본존불 앞에 서서는 온갖 자료들의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버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 꼭 식견을 넓히는 데에만 치중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정성이란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불가에서는 공양이라 한다. 공양이란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보다는 그것을 올리는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는 말이다. 자신의 신념과 행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공양이다. 공양 뿐 아니라 누군가의 강요나 권유가 아닌 자발적 행동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당당하고 행복하게 한다.(p.176)

자발적 학습 여행자인 작가는 분명 행복할 것이라 짐작되어 진다.

스스로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해 나가고 확고한 신념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언젠가 경주를 꼭 한번 여행을 갈 것이고 그 전에 경주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지식들을 공부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필수적인 것이고 그 정도는 준비를 해야 여행을 가서도 많은 것들을 공감하고 느끼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많은 자료들의 정보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풍부한 상상력,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세상의 일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름다움에 내 영혼을 뺏겨버릴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이 내게 있을까?


글의 구성은 크게 10구간으로 나뉘고 각 챕터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짧고 간결하게 모아두었다. 사진과 글의 구성이 지겹지 않고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극락전 현판 뒤에서 발견된 “황금돼지상”처럼 화려한 건물의 웅장함에 현혹되어 작은 부분에 신경 쓰지 못하고 미쳐 발견하지 못할법한 부분을 소개해 주고 있어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대부분 전각이나 한옥 사진을 찍을 때도 겹겹이 보이는 기와지붕을 하늘을 배경으로 잡고 셔터를 누르지만 현판 뒤 같은 곳은 잘 보지 않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오래된 것에 애정이 가는 때가 있다. 누군가 골목에 버린 줄 끊어진 기타나 나무로 된 앉은뱅이책상은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사용 할 수 없어 버린 것임을 알면 다소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생각하지 저것을 왜 버렸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내 집에 들여놓고 싶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p.102)


오래된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폐사지와 탑을 찾아다니며 힘든 여행을 하게 된 것이라 생각이 든다.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의 의식과는 다르게 우리의 것을 바로 알고 또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깨끗한 마음이 있었기에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더 없이 순수하고 억지로 수식하지 않아 편안함이 느껴진다.

 

여행이란 것이 단순히 쾌락만을 느끼고 여흥을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 딱 잘라 말하고 진정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계획된 여행은 시간이나 돈을 쓰는데 절제가 가능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도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계획에는 항상 차선책이 있으므로 문제에 알맞은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삶을 성숙하게 하고 성찰할 수 있는 것으로 여행만한 것이 있을까.”(p.110)

 

자전거를 타고 탱자나무 울타리 따라를 지날때 작가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와즈다’의 이야기가 인상에 남는다.

여성에게는 금지된 자전거를 탈 수 있기까지 10살 소녀가 겪는 이야기인데 나중에 영화도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출지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신라 전통의 민간신앙과 새로운 종교인 불교 간의 갈등이 있었고, 보름이면 찹쌀에 온갖 견과류를 넣어 만든 ‘약밥’이 까마귀 덕분에 화를 면한 소지왕이 보름날을 까마귀 제삿날로 삼아 찰밥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 은혜에 보답했던 음식 이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안압지의 화려한 야경과 포석정, 첨성대와 왕릉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까지 여행지로 소개해 주고 있어서 좋다. 특히 탑과 불상이 주를 이루는데 이와 더불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신 옛날 옛적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소나무들이 충성스러운 호위병처럼 둘러싸고 있던 선덕여왕릉, 다양한 디자인과 정교하고 세밀하게 조각된 문양들이 아름다운 다보탑, 신령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아름다운 삼릉 소나무 숲, 박목월 시인도 사랑했던 계림,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정구지전 할머니가 가장 인상 깊어 경주를 여행한다면 꼭 들르고 싶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다.

 

 

문화재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진 않지만 알아가려는 의지는 누구보다 남다름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경주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거부감 없이 읽힐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본 지식 소양이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 부연 설명이 많지 않고 그림과 글의 구성이 읽기 편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행하면서 참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여행을 가고 싶지만 여건상 가지 못하고 글로나마 대리만족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충분히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작가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보물들을 관리해주시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잊지 않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바라며 벚꽃이 만개한 봄에 꼭 한 번 경주를 가보길 권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