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치유력 셰익스피어 인문학 - 셰익스피어, 삶의 무대에서 치유의 깃발을 올리다
최용훈 지음 / 페르소나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왜 셰익스피어를 읽는가?

학교에서 권장 도서이기 때문에? 유명하니까?
대부분 처음 이와같은 고전을 접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스스로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책을 꼭 목적성을 두고 읽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방향을 정하고 읽어 나가야 되는지 책을 읽을 수록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분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독자들은 이러한 작품의 우수성을 몸소 느끼길 원하게 된다.
예전에 분명 읽었던 책인데 내가 알지 못했던 부분들의 감상평이라던지 새롭게 해석되어지는 부분들을 접할때 마다 신선하게 다가오고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리뷰를 통해, 책을 통해 작품을 해석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운것이 나와 다른 생각과 이해를 접해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이해과 아직 읽어 보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작품속 다양한 인물들의 성격을 통해 실존하는 인간들의 성격 또한 파악해 볼 수 있었다. 소설이 주는 재미가 바로 가상과 현실의 보이지 않는 선을 넘나들며 오감을 자극하는 신선함이 있기 때문인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허구 속에서 진실을, 환상 속에서 현실을, 그리고 죽음 가운데에서 삶을 보게 하는 것 같다. 인문학이라는 관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현대적 관점으로 분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쉽고 이해가 빠르게 기술되어 있다.
원작의 줄거리와 대사들을 주제와 연관하여 다양하게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온갖 일들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인문학이라는 접근이 고전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울 것이라는 부담감을 덜어주고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현대인들의 삶의 유사한 부분들을 보면서 위안과 용기를 받는다. 인문학적인 사색과 함께 철학적 고찰과 역사적 교훈들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 또한 흥미롭게 다가 왔다.
인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 난해한 접근법을 고전을 통해 새롭게 배워나갈 수 있고, 삶에 적용하여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셰익스피어는 총 37편의 희곡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비극 6편, 희극 14편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 세상에 대한 만화경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현란한 문체와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인문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많은 도서들이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중에 나와 있지만 그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인문학 》은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접근법으로 지루하지 않으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줄거리와 리뷰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에 설사 셰익스피어 작품을 처음 접하였다고 하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내용이 어렵고 지루하다면 그것은 본연의 목적을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이 책은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읽어 나간 부분이며,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더 남다르게 느껴졌다.
연인만의 사랑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사랑에 대한 감정은 늘 설레이게 만들고 흥미롭다.
그러나 내가 지금 현실에서 추구하고 있는 사랑의 모습이 순간적이고 감각적이며 타산적인 사랑만 쫒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사랑이 과연 존재 하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끊임없이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나의 삶에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다.
의심과 질투에 눈이 멀어 진정한 사랑을 잃고 마는 '오델로', 사랑도 우리의 삶도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신중함과 상대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야 말로 사랑을 지켜 나갈 수 있는 기본이며, 삶 전체에 대해서도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소한 오해로 멀어지고 영원할것만 같았던 사랑이 쉽게 깨져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사랑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만들고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불안과 초조함을 감출 수 없다.
사랑하는 아내의 정숙함을 시험한 어리석은 '심벌린'처럼 사랑을 시험에 들게 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상대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부족하기에 생기는 문제로 이별의 아픔을 맛보기도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면 상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믿음에 대한 책임감이 사랑의 근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일 것이다. '헛소동'에서 헤로와 클라우디오의 사랑이 보여준 사랑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고 그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우정도 사랑도 받기만 하고 내것을 내어 줄 용기가 없다면 (자기 희생이 따르지 않는 다면)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사랑이 꼭 결혼까지 이어진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우리는 결혼을 완성된 사랑의 상징으로 생각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에게도 결혼은 진정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의 목적지라고 여겨진것 같다. 하지만 꼭 결혼이 행복한 결말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결혼은 진정한 사랑과 희생의 마음이 있어야 완전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엄격한 법의 집행만이 능사가 아니라 관용과 자비를 통한 죄의 회개와 깨달음이 언제나 처벌보다 앞어야 함을 '자에는 자로'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20대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에 이끌렸다면 30대에는 '끝이 좋으면 다 좋아'에서의 헬레나의 사랑에 더 끌리게 된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내 고집만 피우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내가 인위적으로 꾸며낸 사람으로 만들어 이상적인 존재로 탈바꿈 시키려는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행복의 열쇠이고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지름길인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말괄량이 캐더리느 처럼 오만불손한 나의 사랑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줄 남자가 있지 않을까 라는 헛된 상상을 한번쯤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존해서 변화되어지는 것 보다는 나 스스로 진정한 사랑이 왔을때 그 사랑을 믿고 지켜나갈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할것 같다. 지금까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줄 수 있었겠는가. 겁쟁이라 뒤로 숨기 바빴던 지난 나의 사랑이 앞으로는 헬레나처럼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참 묘한 짓을 하는 법이에요.
세상만사가 덧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하면 모든 사람이 덧없이 어리석어지나봐요.
(Act Ⅱ, Scene 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