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이철원 그림 / esteem(에스티임)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때론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지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는 가족.

누구나 크든 작든 가족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세상에 문제 없는 가족 또한 없을 것이다.

가족과 가정 모두 집이라는 공간속에서 삶이라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집이라는 것이 사람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위해 살며 또 왜 사는가에 대한 거의 모든것들을 보여준다.

사람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집이기에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알아가는 인생이야기들은 인문학의 총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은 건축학적인 의미에서 보다 정서적인 개념의 다양한 상징성과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집이 '정상적'인 가족 공간의 의미를 잃어 버린지 오래다.

공간화된 장소의 개념으로 계급적 차이와 욕망과 불안의 상징이 되어버린 집에서는 더이상 가족이란 테두리의 안락함을 느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 소설 안에서 보이는 집이라는 공간은 공간이 지니는 본래의 의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삶의 필수적인 공간이자 인간의 존재에 대한 필수적인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 황선미의 사실적이면서 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화려한 수식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는 감동이 전해져 온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당신을 기다리는 집이 있나요?" 라는 문구다.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해야 맞을것 같은데  집이 나를 기다린다?

참으로 모순적인 물음이 아닌가.

내가 가고 싶은 집이 아니라 나를 기다리는 집이 있냐고 물어본다.

집이 마치 생명이 있는 것인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면들이 동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황선미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다리는 집 》의 주인공은 표면적으로는 명길이지만 사실 등장인물 모두이다.

버드내길 50-7번지 감나무 집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인물은 떡집 영감으로 동네 터줏대감의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의 이야기들을 달라진 현재의 모습들을 통해 알려주기도 하고 미래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거의 쓰레기로 뒤덥혀 동네의 흉물이 되어버린 감나무 집에 수상한 한 남자가 찾아온다.

어느날 갑자기 감나무 집에 인부들이 와서 잡동사니들을 모두 치우고 동네사람들의 기억속에서만 자리잡고 있던 예전의 감나무 집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조용한 동네에 전에 없던 망치소리가 들려오고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동네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감나무 집에 쏠리게 된다.

그곳에는 벙어리인듯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집을 수리하는데에만 열중하는 한 남자가 있다.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태오라는 남자 아니는 어느 순간부터 낯선 남자의 주위에 맴돌게 된다.

집을 짓는 그의 곁에서 머물면서  아버지라는 존재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나간다.

집이 완성될 무렵 감나무 집에 불이나고 낯선 남자는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이 사건으로 태오, 태오를 괴롭혔던 소년들, 떡집 영감, 목욕탕집 여사장, 동네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의 일인냥 발 벗고 나서서 감나무 집의 공사를 돕는다.

툭툭 탁탁. 망치질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진다. 퇴원해서 돌아온 낯선 남자에게 사감 할매가 줬던 보석함을 떡집 영감이 돌려주면서 그동안의 말하지 않았던 사연들의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재성이라는 아들과 재회하면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꿈꾸게 된다.


 


주요 등장 인물들이 남자라는 사실과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부분 소설속에서 아버지의 존재보다 어머니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는 것이 모성애를 자극하며 더 극적인 효과를 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히나 여성 작가의 글에서는 더욱 그러한 면이 강하게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 황선미는 기본적인 글의 흐름이 남성 중심이다.

어린 태오, 소년이라기에는 성숙하고 청년이라고 하기엔 앳된 소년 재성, 아버지인 명길, 온갖 인생 경험은 다 해봤을법한 동네 터줏대감 떡집 영감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통해 남자의 인생을 마치 한 사람의 인생처럼 그려냈다.

살구나무와 감나무가 실한 뜰에서 망치질 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 갔을것 같은 이야기는 작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


나는 아직도 실수를 하고, 마음을 잘 다치고, 여전히 외롭고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밤에 뒤척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간절하게 누가 좀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이제는 나도 제법 괜찮은 집을 하나 키웠으나 가장 그리운 이는 올 수 없으니 이렇듯 자주 가슴이 시릴수밖에요. (p.5)


작가의 말에 가슴 한켠이 찡하게 아려온다. 어린 아이와 같은 여린 마음으로 이 험한 세상 살아가려고 하니 너무 무섭고 겁이 날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그립고 보고싶고 기대고 싶은 존재(부모님)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듯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예감에 더욱 슬퍼진다.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빨라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


 


"이까짓 집이면 다예요? 식구도 없는 집이 무슨 집이야?

"가지 마요."

"여기 있어요, 나랑. 집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되잖아." (p.102)


재성은 명길을 향해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말들을 꺼내 놓는다.

자신은 집(건물)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 어떤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미워하고 원망해도 잊혀지지 않는 하나뿐인 존재, 바로 아버지.


떡집 영감은 명길의 등을 토닥거려 주며 " 이 사람아. 집 놔두고 어딜 가려고." 라고 말하며 고개를 든다.


언제 물들었는지 감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누구를 하염없이 기다리듯 과거의 홍시는 찬 서리가 내릴 때까지 빨갛게 매달려 있다 땅에 떨어져 쓰레기에 불과했었지만 주인을 잃었던 집이 긴 기다림의 끝에 새 주인을 맞아 감나무에도 다시금 열매를 등처럼 매달고 붉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고 마치 떡집 영감의 붉은 눈시울을 연상케하기도 한다. 또한 명길과 재성의 밝은 미래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가장 상징적인 행위는 바로 망치질이다.

집짓기를 위해 재료와 재료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두드림을 통해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단단하게 이루어지므로써 새로운 관계 형성과 더불어 정이 느껴지는 세상으로 탈바꿈한다.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 주고 치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음을 적시는 따스한 봄비와 같다.

마음의 상처 하나쯤은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 울림이 전해져 지금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 시련들을 잘 극복할 수 있는 희망과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우리네 인생은 어찌 보면 서로 참 닮아 있는듯 하다.

힘겹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돌아가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삶의 터전이자 안식처인 집이라는 공간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의 모든 이야기가 깃들어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기다리는 집 》을 통해 집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 주었고 가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가족(가정)안에서 사소한것으로 싸우기도 하지만 가족이 있기에 세상과 맞설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가장 큰 고통과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 가족일 경우도 있지만 가족이 있어 상처를 치유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려하고 배우면서 알아가야한다.

이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노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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