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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장자를 만났다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4년 11월
평점 :
저마다 사는 법이 다를 뿐, 틀린 인생은 없으니까!
기원전 4세기경에 활동한 장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도가의 주요 경전, 내편7, 외편15, 잡편11을 합쳐 모두 33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내편은 장자가, 외편과 잡편은 후학이 집필한 것으로 추측된다.
《莊子 》는 도가의 시조로 꼽히는 노자의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훨씬 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사상의 요체를 현실적인 우언우화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노자의 《道德經》에 비해 의미가 분명하고 이해하기 쉰다.
생각의 규모가 웅장하고 상상력이 기발한 장자의 매력은 철학을 문학으로 풀어가는 데 있고, 형이상학적 진실을 형이하학적 사실로 풀이하는 데 있다.
장자는 진시황의 焚書에도 불구하고 위, 진 대에 널리 읽히고 육조시대까지 그 사상이 유행하였다.
중국 불교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산수화와 시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장자의 이름은 周이고, 고향은 蒙이다.
몽은 은나라의 후예들이 살던 곳이다. 장주는 기원전 365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70년경에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평생 가난한 삶을 살았던 그는 젊어서 철원의 말단 관직을 맡은적이 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배계급의 일원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고대의 현자들 중에 장자만은 어떠한 얾매임에 속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인물이였을 것이다. 어떠한 체제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유로운 삶을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남긴 흥적들로 하여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위인인지 알아 볼 수 있다.
장자를 알기에 앞서 공자에 대해 어느정도 알아둬야 이해가 편하다.
또한 공자의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한게 아니라 공자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자는 제자들이나 주변 인물들과 나누었던 주요 대화를 정리한 책인 《논어 》로 유명하다.
공자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기록했기에 흔히 '孔子 曰'로 시작한다.
어진 마음의 중요성과 이를 얻기 위한 윤리적 성찰을 담고 있는데 인과 예, 부모를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가족 질서, 의에 기초한 국가 질서,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군자와 덕치, 도덕 정치론 등이 논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장자는 나의 본성을 되찾고 상대의 본성을 존중하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세상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 속에서 살 것을 전제하고,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사람도 나만큼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자는게 장자의 시작이요 끝이다.
곧 나의 변화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의 변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이다.
크게 장자는 액체와 같이 변화 무쌍한 성질을 가진 자아에 대한 고찰과 성찰,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반면 공자는
고체와 같이 형태를 갖춘 질서를 이루는 삶에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으로 다들 아는 사실에 속한 내용이기에 크게 의미를 부여할 만한 내용은 없지만 대략 집고 넘어가야 우화속에 나온 뜻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은 크게 3부로 나뉘어 1장부터 11장까지 있다.
나의 생각이 곧 이 글이니 덧붙일 설명이 필요없다.
나의 생각 또한 순간 순간 변하고 만갈래의 물길과 같으니 어느 것에 얽매이지 못하고 흘러가 버렸다.
책의 일부를 내 마음속에 가슴에 담아 본다.
1부 개인의 변화
1장 내 안의 나 찾기
〈헛똑똑이 인생 〉
'책 속에 진리가 있다'며 오만 가지 책을 샅샅이 뒤적여 보지만, 사실 그 사람은 책 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책을 벗어나면 방향을 잃고 갈 곳을 모르고 할 일을 못 찾는다.
그러면서도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오지랖은 헛똑똑이 거북못지 않다.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닐까? 방황하는 난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찾지 못하고 책 속에 갇혀 사는지도...
사랑, 용기, 관용, 신뢰 ……. 세상에 중요한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다.
정작 봐야 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보고 들어도, 결국 헛똑똑이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거늘 왜 그렇게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달라고 아우성인지 나 또한 궁금하다.
〈발자국은 발이 될 수 없다 〉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매달릴 시간에 자신의 본성을 좀 더 들여다보라고 충고했다.
"아는 것은 그대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불확실한 추측으로 그대를 짐작한다.
그들은 그대의 기교를 보는 만큼 그대의 본성을 보지 못한다. 그들의 판결에 매이지 마라. 그대 자신의 판결에 매여라"-몽테뉴-
나 스스로 자신감이 넘치고 떳떳하다면 어떤이들의 앞에 나서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굴것이다.
문제는 용기와 노력이 아닐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면 내딛는 발걸음 발걸음이 헛발질이다.
"너는 아직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들의 영혼에서 행복을 찾는구나."-아우렐리우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느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는가? 가장 필요한 것이 나를 먼저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감을 갖는 일이다. 길에서 벗어나 이리저리 헤매는 자들과 바로 그 길에서 헤매고 있는 자들의 수많은 발자국에 오도되지 않고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신념이 필요할 때이다. 언제나!
〈신발이 맞으면 발을 잊는다 〉
선가의 역사에 양보라는 자가 불교에 심취해 무제보살이라는 사람을 만나 불법을 배우러 길을 떠났다가 노인 한사람을 만나 하는 이야기가 인상깊다. 어디를 가면 부처를 만날 수 있냐는 물음에 노인이 말하길 집으로 돌아가면, 신발도 안 신고 담요 뒤집어쓰고 나오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그 사람이 부처라 한다.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가 보니 꼭 그렇게 자신을 맞이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였다. 부처가 멀리 있지 않고 도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이다.
늘 보니까 자세히 안 보고, 자세히 안 보니깐 못 볼뿐이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조금만 낯설게 보면 세상은 신기한 일 투성이다.
화려하게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이 언뜻 떠오른다.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만물이 새롭고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시력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길은 다녀야 만들어진다 〉
應無所住而生其 :
"머뭇거리지말고, 그 마음을 내어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그게 바로 '사는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일 필요 없다.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
현재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법정의 마대로 " 삶은 미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다. 매 순간의 쌓임이 세월을 이루고 한 생애를 이룬다."
"카르페디엠"이란 말이 생각난다.
현재의 삶을 즐기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아직 오지 않은 내일 또한 오늘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즐겁게 사는게 중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성실하게 삶을 수련한 결과다. 그렇게 사는 게 無爲의 삶이다.
무위에 대한 시선은 약간 차이가 있다. 노자는 지배의 도구로서, 장자는 삶의 방식의 하나로 不得已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여기서 부득이란 '어떨 수 없음'을 말 하는데 주어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채움의 언어로 이순신이 《난중일기 》에 가장 자주 쓴 말들이라 한다
2부 관계의 변화
5장 차이 존중하기
〈틀리지 않고 다를 뿐이다 〉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는데 보통 좁은 식견을 가진 이를 두고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뜻이 아닌 삶의 방식이 다른 것 뿐이지 누가 옳고 그른것이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사는 법이 다를 뿐이지 정답은 없는 것이다.
〈신발장이는 신발을 넘지 마라 〉
남의 일에 훈수 두기는 쉽다. 남의 일을 대신 해주기도 쉽다. 책임지지 않으니까. 말로만 하면 되니까.
정작 제 일 똑바로 하기가 어렵다.
6장 말 아닌 것으로 말하기
〈자기 인생으로 말하는 사람 〉
잘 짖는다고 좋은 개 아니고, 말 잘한다고 현명한 사람 아니다.
흔히들 말을 잘 하면 똑똑해 보이고 멋있어 보여 그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말만 잘한다고 해서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순간은 즐겁고 행복할 수 있으나 진심이 없는 말은 말이 아니다.
소음일 뿐이지.
〈말은 들어야 완성된다 〉
말은 절반만 내 것이다.
"네가 하는 말이 진실이냐 아니냐만 염두에 두지 말고, 그 말을 듣는 상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도 함께 생각하라"-세네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친구나 동료사이에서도 각별히 친하게 지내게 되고, 어려운 일도 곧잘 털어 놓게 된다.
그러나 자기 말만 할 줄 알고 남의 들어주지 않는 사람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안되 있으면 벽과 이야기 하는거나 마찬가지이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와 힘이 되는데 말이다.
생각 없이 말한다는 거, 듣는 사람은 안중에 없다는 뜻이다.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뜻이다.
말은 늘 신중하게 해야 됨을 느낄 수 있다.
心齋 :
내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없다.
내 마음이 이미 차 있으니 상대의 말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내 마음을 비워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비로소 내 말을 전할 수 있다. 대화의 시작은 재주가 아니다. 마음가짐의 문제다.
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
"문자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문자를 버려서도 안됩니다. 문자는 그저 도를 얻는 수단입니다."
出於泥而不染 : 진흙탕에서 나왔지만 더럽지 않고
中通外直 : 속은 비었지만 줄기는 곧다.
香遠益淸 : 향기는 멀수록 깊고
亭亭淨植 : 의자하는 것도 없이 서 있으니
可遠觀而不可褻翫 :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지고 놀 수는 없다.
정우당 앞 연못에 있는 '애련설'이라는 시다.
연꽃이 되고 싶었던 퇴계의 바람이 어쩜 이리도 아름답고 서글프게 그려져 있는지 모른다.
8장 마음주기
〈사랑하는 방법 〉
자신을 더 사랑했던 것이다.자기만족의 수단으로 사랑을 펼친 것이다. 상대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사랑을 했던 것이다.
지난 내 사랑이 그랬던 건 아닐까?
나를 위해 상대를 바꾸는 건 억지다.
상대를 바로잡으려 하지 말고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배려하며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남이 아닌 내가 바껴야 되는데 남탓만 하고 있다.
〈위로하는 방법 〉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너무 흔해 빠진 힐링, 그 위로라는 것에 애정은 얼마나 담겨 있나
진심이 없으면 안하니만 못 하다.
힐링에 앞서 필링도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3부 사회의 변화
10장 버림으로써 되찾기
〈용두레를 쓰지 않는 까닭 〉
꾀부리기 시작하면, 편한 거 찾기 시작하면 땀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 역할을 남에게 떠 넘기고 싶어 하게 된다.
고생의 가치를 잊게 된다.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잃게 된다.
열심히 일하면 힘은 들지만 내 자신이 스스로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꾀를 부리고 제대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지 못했다면 삶을 좀먹게 하는 것이다.
작가는 외환위기를 맞았을때 입사 1년 만에 무급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직장에서 쫓겨나 많은 시간을 고전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처음 《장자 》를 접했고, 우여곡절 끝에 복직하여 정치부에서 일하게 된다. 뜻하지 않게 직장에서 1년 동안의 해외연수 기회를 얻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처음과는 다르게 술술 읽히며 그저 뜬구름 잡는 신선들의 이야기에서 삶을 잘 살아가는 解眼을 갖게 해준다.
작은 것으로부터 배우고 익히며 소중히 할 줄 아는 감사한 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그것일 것이고, 자신만 알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오만함을 버리는 일이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게 했을 것이고, 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된것이 책을 읽는 것이다. 작가가 느꼈을 법한 마음에 동요나 큰 깨달음은 없지만 자칫 방자함이 몸에 베어 남을 괄시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배려하지 못할 부정한 생각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듯 하다.
동서양의 고전과, 철학이 서로 다른듯 같은 양상을 띄고 있다.
언뜻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인가 이솝우화인가 사자성어 풀이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시선으로 장자의 사상을 풀어 냈다.
그러나 내용이 특별히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용파악에만 집중 되어 있는것도 아니고 이렇다할 흥미를 끌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어떤 관점으로 보며 어떻게 해석해 나갈지는 우리들의 몫이다.
지금까지는 작가 강상구가 바라보는 시각으로 삶을 들여다 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작가가 아닌 내가 내 삶을 들여다 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