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빨강머리 앤이 커스버트 남매(매슈와 마릴라)를 만나기 전의 삶을 그리고 있으며 앤의 부모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월터(앤의 아빠)와 버사(앤의 엄마)의 순조로운 결혼 생활과 그들의 성격과 성향이 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는 모습들을 포착할 수 있다. 앤의 빨강 머리, 우아한 코, 완벽한 작은 턱,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과 시적인 표현력은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것들이라는 것. 두 분 다 교사로 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릴 때부터 명석함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이란 걸 알 수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노력보다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머리가 좋은)의 힘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구나 다시금 느낀다.
전염병으로 양부모 모두 생을 마감하고 생후 3개월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앤은 버사의 집안일을 돕던 도우미 토머스 부인 집에 입양되지만 사람은 착하나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되는 버트와 많은 자식들과 고된 집안일, 남편의 불안한 직장과 경제력 등 삶의 피로도가 높아 어린 앤을 돌볼 겨를 없이 오히려 아이에게 못되게 구는 조애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빨라 제 나이에 비해 더 커 보이고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앤. 조애너의 딸 일라이저의 사랑으로 앤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하루 빨리 불안정하고 지긋지긋한 속박의 굴레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일라이저는 로저 에머슨과 결혼하여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만다.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일라이저만이 앤을 돌봐준 부모이자 친구였는데 그렇게 앤은 가슴 아픈 첫 이별을 맛보게 된다. 앤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고 학교에 가면서부터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기쁘고 행복함을 느낀다. 헨더슨 선생님과의 인연은 짧지만 강렬했고 너무 아름다웠다. 과거에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산속 생활을 하는 달걀 장수 존슨 씨, 항상 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따뜻한 차와 쿠키를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아치볼드 부인, 입양 가정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주변에 마음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이 있어 앤은 희망을 잃지 않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