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앤 -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6
버지 윌슨 지음, 애니메이션 <안녕, 앤> 원화 그림, 나선숙 옮김 / 더모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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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TV에서 하는 만화는 하교 후 녹화까지 해서 다시보기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애니메이션 사랑은 식을 줄 몰라 밤낮 가리지 않고 즐겨봤다. 그중에서도 가장 영혼을 울리는 감동 애니메이션을 꼽자면 빨강 머리 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땐 뭣 모르고 재미있게 봤었지만 언젠가 성인이 된 후 다시보기 하는데 나도 모르게 폭풍 오열을 하며 보기도 했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고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어느 때였던 것 같다. 삶이란 것이 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만 유독 힘든 때가 찾아오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존재가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원한 나의 비타민, 앤 셜리! 앤을 쓸 때는 꼭 ‘e'를 붙여야 하는 앤.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고 밝은 에너지가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것만 같다. 100여 년간의 세월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빨강 머리 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려봤을 과거와 미래의 앤의 모습.

엉뚱하면서 영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빨강 머리 앤의 사랑스럽고 당찬 모습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버지 윌슨 또한 그러한 궁금증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을지 모른다. 빨강 머리 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동명의 TV 애니메이션 원화를 ‘만화책’처럼 구성해 넣은 「더모던감성클래식 시리즈 」 여섯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의 빨강 머리 앤을 캐나다 작가 버지 윌슨의 상상력으로 11살 이전의 과거의 앤의 모습을 그려냈다.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거부감 없이 원래 앤의 어릴 때 모습인 듯 자연스럽게 그려냈기 때문에 루시 모드 몽고메리 협회측에서도 마음에 들어 한 것 같다. 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과 앤의 열성팬들의 도움을 받았고 수많은 독자들의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원작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이야기는 빨강머리 앤이 커스버트 남매(매슈와 마릴라)를 만나기 전의 삶을 그리고 있으며 앤의 부모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월터(앤의 아빠)와 버사(앤의 엄마)의 순조로운 결혼 생활과 그들의 성격과 성향이 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는 모습들을 포착할 수 있다. 앤의 빨강 머리, 우아한 코, 완벽한 작은 턱,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과 시적인 표현력은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것들이라는 것. 두 분 다 교사로 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릴 때부터 명석함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이란 걸 알 수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노력보다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머리가 좋은)의 힘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구나 다시금 느낀다.

전염병으로 양부모 모두 생을 마감하고 생후 3개월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앤은 버사의 집안일을 돕던 도우미 토머스 부인 집에 입양되지만 사람은 착하나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되는 버트와 많은 자식들과 고된 집안일, 남편의 불안한 직장과 경제력 등 삶의 피로도가 높아 어린 앤을 돌볼 겨를 없이 오히려 아이에게 못되게 구는 조애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빨라 제 나이에 비해 더 커 보이고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앤. 조애너의 딸 일라이저의 사랑으로 앤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하루 빨리 불안정하고 지긋지긋한 속박의 굴레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하는 일라이저는 로저 에머슨과 결혼하여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만다.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일라이저만이 앤을 돌봐준 부모이자 친구였는데 그렇게 앤은 가슴 아픈 첫 이별을 맛보게 된다. 앤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고 학교에 가면서부터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 이겨 낼 수 있을 만큼 기쁘고 행복함을 느낀다. 헨더슨 선생님과의 인연은 짧지만 강렬했고 너무 아름다웠다. 과거에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산속 생활을 하는 달걀 장수 존슨 씨, 항상 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따뜻한 차와 쿠키를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아치볼드 부인, 입양 가정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주변에 마음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이 있어 앤은 희망을 잃지 않았는지 모른다.

‘나는 희망하는 버릇이 있어요.

‘행복’이 있다면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거예요.“

이후 찬장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친구를 만들게 되는데 이름은 ‘케이티 모리스’다. 앤에게 있어 케이티 모리스와 비올레타(메아리)같은 無形의 친구가 없었더라면 그녀의 삶은 암흑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약한 모습 보이지 않은 어린 앤의 모습을 실로 감동적이다.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낙담하고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구는 어른들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버트의 죽음으로 앤은 다른 집으로 입양되어 간다. 앤이 자신의 아이처럼 많은 애정과 사랑을 줬던 조애너의 아들 노아와 토머스 아저씨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였던 곰인형 보리스, 오렌지색 고양이 라킨바와의 이별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두 번째 입양가정은 해먼드 부부의 집이다. 큰 집에 방이 많아 자신의 방도 생길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고아원에 가지 않는 것 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겼던 앤. 임신 상태였던 해먼드 부인의 집에는 6명의 아이들이 이미 있었고 나중에 출산 후에는 8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된다. 너무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라 손이 많이 가고 집안에 할 일도 많았다. 토머스 부인처럼 악담을 퍼붓는 정도는 아니지만 삶의 의지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영혼이 나간 듯 숨만 쉬고 살아가는 해먼드 부인. 늘 바쁜 일로 집에서는 밥 먹고 쉬는 일만 하는 해먼드 씨. 상황은 전보다 나아진 게 하나도 없어 보였고 오히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지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완벽하게 해내고 새로운 곳에 적응해 나간다. 맥도걸 선생님의 고향인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대한 열애 시작과 산파이지만 자신은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여기는 해거티 양과 앤의 만남은 또 하나의 따뜻함 이였다.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의 탄생을 맞이했던 그녀였지만 많은 가정생활과 육아를 지켜보며 아이의 탄생이 축복만은 아닐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앤이 입양가정에서 지냈던 그 시간들만 봐도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처럼 무겁게 느껴진게 사실이다. 부모가 모두 계셔도 삶이 힘든 게 많을 텐데 고아라면 얼마나 서럽고 힘들겠는가. 그러나 앤은 자신이 고아지만 자신을 거둬준 어른들에 대해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이겨낸다. 언제나 초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며 주변에 마법과 같은 행복한 기운을 전파한다. 자신은 그 누구보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시련을 맞이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괜찮아질 거야.

오늘은 아니야.

어쩌면 내일도, 다음 주나 다음 달도 아닐지 몰라.

하지만 결국은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될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갑작스러운 해먼드 씨의 죽음으로 또 한 번의 슬픔과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8명의 아이들은 친척들의 손에 하나 둘씩 맡겨졌지만 빨강머리 앤은 어느 누구도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결국 고아원으로 보내지게 된다. 덤벙거리고 둔하지만 착한 서른다섯 살의 맥도걸 선생님의 마지막 이별 선물과 뒤늦게 주머니에서 발견한 앤이 가져갔던 사진을 보고 엉엉 울어 버린 장면은 또 한 번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유일한 낙이였던 공상의 시간을 가질 시간도 없이 앤은 고아원 생활에 적응해 가는데 고아원의 모든 총괄 업무를 지휘하며 완벽주의와 결벽증이 있는 칼라일 양의 마음에 들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낸다. 그러다 스펜서 부인이 두 명의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찾아온다. 칼라일 양의 추천으로 일 잘하는 아이는 앤이 뽑혀 입양가게 된다.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가보고 싶던 프린스에드워드 섬으로 가게 되는데 배를 타고 그곳으로 가는 시간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때가 아닐까 싶다. 농장에서 일을 도와 줄 남자 아이만을 입양하려 했던 커스버트 남매의 계획을 전혀 모른 체 앤은 초록색 지붕이 있는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앤은 어디에 가서든 어떤 순간에도 잘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행복한 것들을 찾아 낼 것이라고 확신이 든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TV에서 보던 원화 그대로 만화를 글과 함께 볼 수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책 자체만으로도 너무 예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것 같다. 더 이상의 완벽한 앤의 어릴 적 모습은 없을 것 같다. 스토리와 구성 모두 만족스럽고 앤을 사랑하는 독자의 한 명으로서 힘든 순간이 많아 힘들어 하던 어린 앤의 모습을 보며 너무 안쓰럽고 가슴 아팠지만 앤의 천부적인 밝은 기운 덕분에 잘 헤쳐 나가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어린 앤을 만나서 반가웠고 다시 11살 이후의 앤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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