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이방인 - 194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최헵시바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1944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으로 만나 본 <이방인>. 강렬하면서 감각적인 디자인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동굴의 종유석을 연상시키는 배경은 상하좌우 구분이 모호하여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고 태양을 상징하는 그로테스크한 터치감은 현대 미술이라고 해도 믿을 것처럼 세련됐다. 고전문학 중에서도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전 세계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페스트>와 함께 죽기 전에 꼭 읽어 봐야 할 추천 도서로 손꼽힌다. 유명한 작품이고 재미있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고전이란 벽을 쉽사리 넘지 못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하고 있던 책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알베르 카뮈를 너무 늦게 만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페스트균의 감염에 의하여 일어나는 급성 감염병을 다룬 <페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그의 작품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알베르 카뮈는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신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부정하였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의 말과 다르게 실존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20세기 전반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실존이지 이성이라든가 인간성과 같은 보편적 본질이 아니고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직까지도 실존주의에 대한 개념이 확실치 않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대략적인 의미로 실존이란 말의 어원을 따져보면 ex-sistere (밖으로 나온다.)라는 의미로 관념론적 본질 규정 혹은 합리주의 체계의 밖으로 나와 구체적, 개별적인 존재로 머무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바깥에 초월하는 존재를 뜻하기도 한다. ‘異邦人이란 제목에 이 모든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지칭하는 이방인은 지역과 거리를 초월한 인간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존재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 인물이 바로 작품 속 주인공인 뫼르소. 알베르 카뮈의 정신과 삶, 세상에 대한 이해는 이 인물을 통해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150페이지 정도의 아주 짧은 소설이지만 마지막장을 넘기는 데는 아주 오래 걸렸다. 읽고 나서 다시 앞장을 넘겨보게 되고 再讀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카뮈가 쳐놓은 덫에 어리석은 인간이 순순히 걸려들어 버린 것이다. 그건 마치 광활한 우주를 본 듯 심오하고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를 본 듯 신선한 충격 이였다. 처음 읽을 땐 모르다가 나중에서야 하나씩 알게 되는 상징들과 의미들은 마치 경찰이 범죄의 흔적들을 추적하며 사건의 진상을 하나씩 파악해 내고 결국은 범인을 검거하는 것처럼 짜릿한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짧지만 쉽게 읽히지도 읽어서도 안 되는 책이며 오래도록 남아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의적인 이해가 가능하기에 독서토론 도서로도 안성맞춤일 것 같다. 사람마다 삶의 과정이 다르기에 인식 세계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하다. 나이가 많든 적든 살아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끊임없이 삶을 공부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물음을 던질 것이다. 복잡하고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生死의 카오스에서 알베르 카뮈는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세상은 원래 부조리 한 것이라고. 부조리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그가 말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세계는 심오하기만 하다. 세계 내에 던져진 실존에 부재하는 존재이유와 부재의 존재이유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불굴의 이성, <이방인>은 인간의 실존에 관한 그의 철학적인 생각과 인생이 엑기스처럼 진하게 담긴 책이고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와 본질에 관한 문학적 우수성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 이렇게 훌륭한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런 책들이 있지 않은가. 20대 취업 준비 시절에 읽었더라면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은데 너무 늦게 만난 것을 아쉬워하게 되는. 그러나 <이방인>은 언제 어느 때고 읽어도 좋을 책일 것 같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유명한 문장이다. 소설 첫 문장으로 주인공 뫼르소가 양로원으로부터 모친 사망소식을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무덤덤하고 남 일처럼 말하는 뫼르소의 이 첫 마디는 아주 인상적이다. 왜 죽음인가? 시작부터 부조리의 감수성이 태동한다. 글의 구성은 1,2부로 나뉘어져 있고 1부에서는 모친의 장례를 치르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 우연찮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법정에서 재판 과정을 보여주며 선고를 받기 까기 주인공 뫼르소의 독백수기로 심리묘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설이 아주 짧은데도 불구하고 글을 2부로 나뉘어 놓은 것은 주인공의 인생의 전환점이자 다른 세계 혹은 실존과 본질의 대립을 작가가 더욱 극명히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방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태양이다.

아침 태양,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의 태양,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태양.

태양이 주는 상징성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글의 흐름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또 하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어머니의 죽음, 페레 노인의 얼굴 주름이 주는 나이 듦이 연상케 하는 죽음. 아랍인의 죽음, 그리고 주인공 뫼르소의 죽음. 알베르 카뮈는 죽음을 통해 실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에 의해 끊임없이 관리당하고 있다. 젊은 사람은 앞으로 살날이 많아 그들의 시간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노인들은 죽을 날이 가까워져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근원적인 시간성이나 존재 구조가 죽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무경계성을 인정하고 인간의 삶의 부조리를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였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생명이 사그라져 가는 그때에 약혼자를 둔 것인지 왜 다시 시작하는 놀이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생명이 꺼져가는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처음부터 다시 살 준비가 되었던 게 틀림없다.“- p156-

     

죽음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토마 페레 노인과 약혼자라고까지 불리며 만남을 가져온 것은 죽음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해하고 인정하여 남아있는 삶에 대한 도리를 다했기 때문에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어머니는 스페인계 여자로 문맹인, 청각 장애인 이였다고 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작품 속에서 뫼르소 어머니 또한 아들의 삶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만 이면에는 그의 삶 전체라고 할 수도 있다. 문득 어머니 생각을 하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깨닫기도 하고 뫼르소 인생에서의 라는 인식의 부재는 어린 아이였던 그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주게 된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그의 인생도 무가치했을 것이다.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慧眼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위에 있는 벌판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닿을 듯 줄지어 선 삼나무들과 불고 푸른 대지,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을 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 고장에서 보내는 저녁은 쓸쓸한 휴식 시간과 같았을 것이다."- P25-


1. 평범한 회사원 뫼르소는 양로원으로부터 어머니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내려가게 된다. 가는 내내 버스에서 꾸벅거리고 졸고 장례 중에도 깜박 졸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는 기색 전혀 없이 관리인이 주는 밀크커피도 맛있게 마시고 어머니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도 정확히 대답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장례를 치르며 뜨겁게 내리 쬐는 햇볕, 더위는 기승을 부리고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엄마와 절친 이였던 토마 페레노인은 장지까지 따라가면서 아들과는 대조되게 애도의 슬픔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뫼르소는 장례 행렬 내내 햇빛으로부터 고통 받고 피로함만 느끼며 그저 장례를 빨리 끝내고 자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뫼르소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가움이 서려있다. 슬픔에 대한 그들만의 방식과는 다르게 뫼르소는 그 어떤 슬픔도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순간의 본질에만 충실할 뿐이다. 한 결 같이 무심하고 덤덤한 태도를 일관하는 그의 태도에서 타인의 슬픔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해가 갓 떠올라 있었다. 바다와 마랭고 사이를 막고 서 있는 언덕들 위로 하늘빛이 불그스름했다. 언덕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소금기가 실려 있었다. 아름다운 하루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전원에 나가 본 일이 없었다. 엄마 일만 아니었으면 산책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21-


2.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푹 자고 일어난 다음날 마리 카르도나와 해수욕을 즐기고 일반적으로 데이트라 불리는 시간들을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를 불편하게 하는 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잔상이 아닌 단지 월요일에 출근해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다.


일요일은 다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해야 하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P35-

     

3. 일상처럼 회사에서 일하고 평소처럼 셀레스트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같은 층 살라마노 영감과 개의 애증관계에 대한 이야기, 동네사람들이 싫어하는 레몽 생테스와 만나 레몽의 정부 이야기를 들어주고 재미와 흥미를 느낀다.


4. 에마뉘엘과 영화도 보고 마리와 수영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수영 도중 욕정에 사로잡혀 마리와 몸을 섞기도 하는데 자기를 사랑하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그런 건 별 의미 없지만 사랑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없는 욕정 풀이의 대상이라는 말인가. 아무리 사랑하지 않더라도 듣기 좋은 말로라도 사랑한다 말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 같은데 뫼르소는 거짓말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속마음을 말할 뿐이다.

레몽이 여자를 구타한 일로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는데 이를 지켜본 뫼르소는 레몽이 자신의 증인이 되어주라는 부탁에 자신은 아무래도 괜찮다며 거부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답한다. 산책 다녀온 살라마노 영감의 옆에 개가 없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개가 도망가 버렸다며 화를 내다 이내 슬퍼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뫼르소는 인생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인생의 티끌처럼 존재감이 없고 주위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기만 한다. 순순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부탁을 하면 거절할 줄도 모르고 받아주며 착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것이 진정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닌 그저 줏대가 없어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아닌 개가 없어져도 걱정되고 불안하고 슬픔에 젖는 것이 일반적인데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감정 변화를 느끼지 않아 더욱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의 성장 배경에 우리가 모르는 성격 발달 장애를 유발할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는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지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싸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의도대로 뫼르소가 이 사회의 이방인이라고 전적으로 믿게 만들어 버린다.


영감은 자기 방문을 닫았고, 이윽고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영감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벽 너머로 조그맣고 괴상한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고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아 저녁도 굶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P55-


5. 사장의 파리 파견 제의에도 생활의 변화를 원치 않아 거절하고 마리의 사랑에 대한 재확인 질문에도 어이없는 답변을 내 놓는다.


나는 사람이란 대개 생활을 바꾸기가 쉽지 않고, 어떤 생활이든 비슷비슷하며, 또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에 그렇게 불만이 있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p57-


시지프스처럼 끊임없이 자기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삶의 의욕도 행복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뫼르소.


저녁에 마리가 와서 자기와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궁금해 했다. 나는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p58-


6. 일요일에 레몽의 지인 별장에 초대되어 마리와 함께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정부의 오빠라는 아랍인의 출연으로 해변에서 난투극을 벌이다 칼부림에 레몽이 다치게 된다. 갑작스러운 일에 휘말려 급 피곤함이 몰려와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해변을 걷던 뫼르소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현기증을 느끼고 있을 때 아랍인과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그저 바위 그늘아래서 쉬고 싶은 욕망에 이끌렸던 뫼르소와는 다르게 아랍인은 적의를 느끼고 칼을 뽑아 들자 칼날에 반사된 태양이 뫼르소의 눈을 찌른다. 뫼르소는 그렇게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뺨이 타오르는 듯했고, 땀방울은 눈썹 위에 고여 가고 있었다. 엄마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같은 태양이었다. 그때와 똑같이 이마가 아팠다. 머리의 모든 혈관이 한꺼번에 피부 아래서 쿵쿵댔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그게 어리석은 짓이고, 한 걸음 몸을 옮긴다고 해도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p78-


낯선 곳에서 겪게 되는 일들은 뫼르소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들이다. 뫼르소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사랑, 질투의 감정들이 레몽이라는 인물에 의해 연루되었던 것이다. 뫼르소가 행복하게 생각했던 바닷가라는 공간이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 공간으로 재구성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 싶었던 뫼르소는 의도치 않게 자신이 살아 온 삶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2부에서는 뫼르소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그를 도와주려는 많은 이들의 손길도 뿌리치며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다.

죄는 인정하지만 자기변호에는 무의미함을 느끼며 최소한의 변명도 하지 않는다.

솔직함, 진실됨, 간결함을 추구하던 뫼르소는 사람들의 분노를 사기만 한다.

뫼르소는 타인에게 무심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사회에서 요구하는 집단의 공감을 사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움 받고 살인죄보다 더 큰 죄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다. 그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다.

재판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 한 것인가를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이 부조리함에 대해 허무주의가 아닌 부조리와의 화합을 도모하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 삶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억울하고 분하고 공평하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지만 어떻게 부조리에 맞서 살아갈지 독자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나 세계가 그 자체로서 부조리한 것이 아니라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 즉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하다. 부조리는 인간의 숙명인 것이다.


소설의 배경으로는 프랑스가 독일군의 점령하고 있던 시기에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황폐해 졌을 때 글이 쓰여 졌다. 현실 모순이 만들어낸 실존주의의 대중화는 부조리 문학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냈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 기존의 전통문화와 문학의 본질적 신념과 가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극과 소설로 실존주의에 근거를 둔 문학 유형이 탄생한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부조리와 실존주의 대표 작가라는 사실은 시대를 거듭 할수록 확실해 질 것 같다. 마치 시를 쓰듯 그의 글은 함축적인 의미와 복선들이 가득하여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느끼게 만든다. 내가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 맞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인생에 대해 다시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육체적 욕망이 감정보다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p86-


나는 개입하지도 않았건만 모든 일은 진행되었다. 내 운명은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가끔씩 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싶었다.”-p127-


사람이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늘 부풀려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시인해야 했다.” -p143-


"엄마는 늘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리라는 법은 없노라고 말했다.“-p144-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는 것이나 예순 살에 죽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경우든 당연히 그 후에는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들이 살아갈 것이고 그런 일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아무튼 가장 분명한 것은 지금이 됐건 이십 년 후가 됐건 언제든 죽게 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p145-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나는 그 이유를 잘 안다. 당신 역시 그 까닭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부조리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항상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내 미래 저 밑바닥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직 닥치지도 않은 세월을 거슬러서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날 것도 없는 이 세월 속에서, 내게 주어진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쓸고 지나가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 같은 것들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신의 하나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과 운명,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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