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꿈결 클래식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백정국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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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오셀로>,<맥베스>, <리어왕>과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총 37편의 희곡을 남겼다. 희곡 외에도 시와 소네트를 쓰기도 하며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작품에 담았다. 가족의 죽음과 같은 작가 개인의 어둡고 힘든 시기에 그는 예술적으로 가장 원숙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대략 1600~1607년까지 그의 황금기라고 불릴 만큼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들 대부분이 그 때 쓰여 진 것이다. 19세기 낭만주의에 의해 햄릿은 더욱 높이 평가 받게 되는데 고전주의의 엄격한 규칙에 짜인 귀족 문화에서 벗어나 理性의 발견, 즉 존재론 적인 자아 탐구의 본성이 폭발하던 시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셰익스피어가 왜 이렇게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당시 사회적 배경과 인물 탐구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료들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 드문드문 그의 흔적을 찾아 짜 맞추고 어림잡아 추측해 보는 게 전부이다. 그래서 전문가들 또한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변덕스런 운명이 쏘아 대는 돌덩이와 화살을 맞아야 하나,

아니면 고난의 파도에 맞서 무기를 들고 대항하다 끝장을 내야 하나.

어느 쪽이 더 고결한가.

죽는 건-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 한숨으로 육신이 상속받은 고뇌와 피할 길 없는 수천 가지의 불화를 마감한다 한다면,

그건 애써 간구해야 할 귀결이다.

죽는 건, 잠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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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에 대한 수많은 비평들 속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복수에 대한 햄릿의 망설임이다. 햄릿의 대사를 원문으로 옮기면 To be, or not to be" 이다. be동사는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동사로 존재하느냐 마느냐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면 뒤에 오는 내용과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리하여 어순의 문제만 바로잡아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로 옮겨 놓았다고 각주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해석의 중요성이 이렇게 전문적인 접근 방식의 차이와 비교되니 쉽게 이해가 된다.


 


 

꿈결 클래식 시리즈 2번째인 <햄릿>의 특징은 기존의 책들과 달리 에세이집을 연상시키는 컬러 일러스트와 210여 개의 각주와 상세한 해제가 있다는 것이다. 고전이라 하면 어렵게 느껴지고 글도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이란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어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꿈결 클래식의 <햄릿>은 연극 대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구성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유로움이 느껴지고 텍스트 크기 또한 큼직해서 가독성을 높여 준다. 중간 중간 글과 어울리는 일러스트가 있어 더욱 몰입도와 이해력을 높여준다. 힘들이지 않고 대충 그린 듯 거친 터치감과 투박함은 인물의 표정과 감정 묘사, 상황의 분위기를 집중적으로 나타내는데 탁월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이 된 숙부 클라우디우스는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형의 아내인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다. 햄릿은 어느 날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다. 그리고 아버지가 숙부에 의해 독살된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복수를 결심하고 숙부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일부러 미친것처럼 행동하고 다닌다. 햄릿은 사랑하는 애인 오필리아에게 까지 매몰차게 굴며 등을 돌린다. 오필리아의 아버지이며 왕의 측근인 폴로니어스는 커튼 뒤에 숨어서 햄릿과 왕비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햄릿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절망으로 미쳐버린 오필리아는 마침내 호수에 빠져 숨을 거둔다. 복수를 결심한 햄릿은 기회를 엿보지만 막상 결정적인 기회가 오면 망설인다. 신중한 성격인 햄릿은 연극을 통해 숙부의 반응을 떠보고 확신을 얻게 된다. 클라우디우스가 꾸민 계략에 빠져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스와 결투를 벌인다. 클라우디우스가 햄릿을 죽이기 위해 준비한 독이 든 술을 그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마시고 숨을 거두고 햄릿은 결투에서 독을 바른 레어티스의 칼에 찔리고 햄릿의 칼에 클라우디우스와 레어티스도 찔려 목숨을 잃고 만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죽는 비극적인 결말이다.


勸善懲惡의 정의가 배제된 잔인한 비극성만이 존재하기에 결말은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에게 죽음은 벌이 아닌 번뇌와 고통이 가득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였나 싶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죽음이 부른 또 다른 복수와 피바람을 끝내기 위한 종지부를 찍는 행위였을까.


햄릿은 복수를 꿈꾸며 기회를 노린다. 그 최후의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결정적일 때에도 쉽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지 못한다. 이런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일컬어 햄릿 증후군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햄릿의 선택장애는 대표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끝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처음 살아보고 겪는 일을 어찌 확신을 가지고 단정 지어서 선택할 수 있겠는가. 선택에는 언제나 결단과 번민이 따르고 책임이 따른다. 어떤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선택은 신중함과 현명함이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다. 햄릿은 일상적인 조건의 선택이 아닌 복수에 직면해 그 갈등과 고통이 극심했을 것이고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였기에 더욱 혼란스럽고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너무 섣부른 판단은 인생의 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심하고 신중함을 갖는 것이 조금은 덜 후회하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백정국 교수의 해제는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 가장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일대기와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앰릿은 원형 햄릿 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지만 그 이야기와 인물 등을 비교할 수 있게 상세히 알려주니 좋다. 개인적으로 앰릿의 스토리 구성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햄릿은 특유의 시적인 표현과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표현, 또 그 감정으로 겪는 고통과 환희들을 현란한 문체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게 만든 작가만의 힘이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욕망, 사랑, 희망, 결함, 동경, 삶을 그대로 글에 녹여놓은 것 같다. 햄릿을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 중 남성의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가리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을 사용해 분석한 사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페미니스트적 접근 방식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라 새로웠다. 한국의 대충매체와 사회적 삶의 중심이 남성 중심적 편향성이 강하다는 걸 많은 활동 단체들의 노력과 움직임 덕분에 사회적 둔감자인 나도 알고 있을 만큼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요즘 사회이다. 그래서 그런지 페미니즘적인 접근 방식에 예나 지금이나 타국이나 자국이나 사람 사는 풍경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의 으뜸 되는 가치와 소용이 고작 먹고 자는 거라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한낱 짐승일 뿐. 앞을 내다보고 뒤를 돌아보는 엄청난 이성을 불어넣어 우리를 창조하신 이가 그런 능력과 신적인 이성을 선사한 건 쓰지 말고 썩혀 두라는 게 절대 아니다. 짐승 같은 망각일까, 아니면 결과를 너무 까다롭게 의식하는 소심한 망설임 탓일까-생각을 넷으로 쪼개면 하나는 지혜이고 나머지 셋은 비겁함이겠지-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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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문법 파괴와 과감한 비유법 때문에 번역하는데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 역자의 후기에도 원문의 뜻을 그대로 살리면서 가독성을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권위 있는 참고 자료들을 공부하고 번역 자체로는 의미 전달이 완벽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은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도왔다. 셰익스피어의 이러한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법이 우리의 뇌를 자극시켜 뇌를 활발히 움직이게 만든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신선한 충격과 새로움을 겪고 받아들이느라 열심히 움직인다. 그래서 더욱 대단한 작가이자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인문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란 것이 증명된 셈이다.

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난 것 같다.

인간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가 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의 답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통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사고 확장을 시켜가는 창조적인 일이 바로 인간에 대한 삶에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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