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전 -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
정철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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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국어사전에서 사전의 정의는 위와 같다.

학생이 학습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책이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카피라이터 정철의 사람사전에는 보편적인 사전의 정의를 떠나 인생이라는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들을 모아 배열하고 작가 나름의 해설을 덧붙여 놓은 책이다.

국어사전에는 없는 사람을 품은 단어들이 1234개나 있다.

참 재미있는 책이다. 정철 작가의 매력은 창의적인 생각과 표현들이 사이다처럼 톡톡 터지고 일상적인 것에서의 특별함을 찾아 낼 줄 아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아마 그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신작도 기대가 많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전답게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작가 본연의 필력이 그대로 살아있어 참신하고 신선함이 강하게 느껴져 좋았다. 역시 정철 작가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 생각이 들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익히고 터득해가는 학생이다.

인생을 육하원칙에 맞춰 짜여 진 각본대로 글을 쓰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끝날 때 까지 배움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것이 사람이요, 삶이라고 생각이 든다.

사람사전의 다른 이름으로 인생사전이라고 지어주고 싶다.


#863 인생

발자국을 남기고 가는 것.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 찍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발자국의 깊이다.

-p249-


책을 통틀어 가장 장하게 느껴졌던 단어를 꼽자면 나는 인생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외에도 사랑, 가족, 친구, 슬픔 등 삼라만상 모든 삶의 모습과 감정들이 그대로 단어 안에 녹아들어가 있다. 때론 유치원생들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가도 중년의 아재개그를 보는 듯 하고 래퍼가 그럴듯하게 라임을 맞춰 랩을 부르듯 말장난을 걸기도 하고 정치, 경제, 사회를 다루는 신문의 한 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의 묘미는 사람마다 다른 환경과 생활,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관심이 가는 단어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여자이자 아내이고 엄마이기에 결혼, 남편, 양육비, 반지, 간식, 계란 과 같은 생활형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 단어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가만히리본이란 단어에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세월호가 떠올랐다.


아주 먼 미래의 후손들이 이 책 한권으로 20세기 역사를 공부 할 것 같다.

사회적 분위기,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 가치관 등 현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힘들어도 그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절망하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이 한 몸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데 너무 애쓰지 말고 조금은 가볍게, 쉽게 생각하며 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자칫하면 人生無常, 人生無念이 될 수 있으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1

본명은 기역. 별명은 기억. 기역은 훈민정음 시절부터 줄곧 자신이 자음의 우두머리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자음은 모음을 만나야 글자가 된다는, 의미가 된다는 세종 말씀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홀로서기를 주저한다. 독립을 꿈꾸지 않는다. 이런 경직을 키읔이 비웃는다. ㅋㅋ.

-p12-


#202 껍데기

얼굴이 너무 예뻐요. 손이 고와요. 키가 훤칠하시네요. 운동하세요?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이거 면세점에서 사셨죠? 다 다른 말이지만 다 같은 말이다. 껍데기는 괜찮네요.

-p64-


#404 맛집

귀의 일. 맛이 혀의 일이라면 맛집도 혀의 일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집을 찾는다. 분명 귀의 일이다. 귀는 단맛과 쓴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

-p124-


#434 모두

모두가 좋아하는 색깔은 없다. 모두가 좋아하는 계절도 없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가 나를 좋아해주길 바란다. 그런 모두는 없는데 그런 모두를 바란다. 모두라는 단어는 말이나 글의 첫머리라는 뜻 하나로만 사용하는 게 좋다.

- p133-


#1073 커피숍

건물마다 하나씩. 교회를 이겼다.

-p312-


첫 장에서부터 책에 온갖 색연필로 동그라미, 네모, 밑줄을 긋고 내 생각 한 점을 첨삭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작가의 인생 단어가 아닌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철이라는 작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구나,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작가도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쓰는데 나도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경험과 생각과 삶은 누구의 것과 비교 할 수 없는 값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기에 지나간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완성해 나가야겠다.


짧고 간결한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화장실 갈 여유만 있다면 틈나는 대로 읽기 좋고 국어사전처럼 자신이 관심 있는 단어를 찾아 골라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서른한 가지의 아이스크림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데 1234개의 골라보는 재미라니.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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