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에 괴담을 읽어도 되는가? 내 답은 Yes이다. 사실 서늘하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따뜻하다.이야기의 첫 시작의 계절은 여름이다. 나는 퍽 추워지는 12월 무렵 읽었던 터라 기이한 계절감을 더투어 올라가면서 이 이야기를 읽었다. 왠지 연결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네 명의 중년 남성. 그마저도 한 사람은 너무나도 바쁜 검사 출신이라 초반에는 내내 보이지 않다가 후반부에서 겨우 나오나 그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이 퍽 서늘하다.작가가 서술하는 계절이 너무 선명하다. 내가 겪었던 여름이 생각날 만큼. 땀으로 끈끈했고 걷는 걸음마다 버거웠던. 그 세세하고 녹음 짙은 여름을 읽다 보면 겨울로 넘어오게 되고 덜덜 떨며 사계절은 이상하다고 말하는데 같은 사계절을 나는 나라에서 사는 처지로서 크게 공감하며 읽게 된다. 괴담보다는 기이한 이야기인 기담에 좀 더 가까운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테면 잃어버려도 자꾸만 돌아오는 우산에 대한. 그리고 그 우산 이야기를 끝내는 순간 비가 내린다. 아, 영락없이 비를 맞겠다고 생각하며 가게를 막 나서던 차에 다른 지역에서 잃어버려 이번에는 못 찾겠다고 생각했던 이야기 속 주인공인 우산과 조우하는. 왠지 그 작은 우산이 꾸역꾸역 주인을 찾아 돌아왔을 것을 생각하면 귀엽다. 보람찼을까? 오늘도 주인님을 비로부터 막아줬다고.
미친 페이지 터너. 팽팽한 긴장감에 주인공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쉬는 순간 없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게 된다. 결핍증을 채우기 위해 호더로 발현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엘라. 집은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학대와 방임. 미성숙한 어머니 밑에서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게 자람은 어딘가 애처로운 구석이 있다. 너무나도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이 더러운 집을 치우려고 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고 그걸 들켰던 날에는 내내 옷장에 갇혀 있었던 엘라. 이 엘라의 삶에 희망이라는 건 허락 되는 일일까. 학대당한 어린아이 엘라와 학교에서 해고당한 교사 케이시. 이 둘의 이야기가 교차 되는 순간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그 서술 방식이 탁월하다.
이번에 좋은 기회로 통역사를 읽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청소년 문학 같은 표지에 큰 기대 하지 않고 읽어 나갔으나 이 책의 큰 허들이라고 하면 책 표지 말고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다.평소에는 첫 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기까지 예열이 오래 걸리는 소설들이 많은데. 시나리오 작가답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끌어당기는 소설이었다. 잠깐 시간 있는 도중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전부 읽고서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로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통역사 '도화'는 소수 민족 언어인 네팔어 법정 통역사인 탓에 수입이 변변치 않아 마트에서 알바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마저도 갑상샘암, 후유증 탓에 약값이 만만치 않다. 그러던 도중에 변호사 '구재만'이 허위 통역을 부탁받는다. 무려 1억 원과 함께. 살인 피의자는 무려 전직 로열 쿠마리. 변호사는 그저 피의자의 죗값을 온전히 받게 하기 위해서라는데.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하나둘 알아보니 그 뒤에 있는 방사는 폐기물 처리장과 연관이 되어있는데......나는 여수에 산다. 광양에 사는 여자들은 갑상샘암에 잘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기에는 제철 공장이 있기 때문인데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지나치리만큼 해피엔딩 중독자인 내게 이만한 결말도 없다고 생각한다.
강보라의 소설은 어딘가 내가 한번 즈음 가져봤던 못난 마음 같다. 타인을 반면교사 삼으면서 그래도 내가 쟤보다는 낫지, 같은. 종이처럼 평평하지만 잘못 짚으면 상처를 만들던 마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의 야릇한 결핍에서 나오는 열등감과 수치심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린다. 친한 사람끼리 못마땅한 사람 이름 하나를 혀 위에 올리고 돌림 노래처럼 조근조근 씹었던 나날들. 우습게도 나는 그런 것에 끼지 못했다. 항상 방관자처럼 자는 척 눈은 감고 귀는 열었던 시절처럼. 이 소설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좁은 선박에 두 개의 이 층 침대. 커튼 치고 누워 자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으면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고 별 해괴한 말들이 자장가처럼 노다니던 그 시절. 어쩌면 입을 닫고 듣고 있던 나도 어느 정도 일조하고 있지 않았던가. 남을 씹어대는 그 애를 속으로 되뇄다. 이 이야기에서 가진 묘한 불편감은 사실 무결한 사람은 없다는 방증 같기도 하다. 배배 꼬여있는가 싶다가도 사람이 그렇지 뭐, 하는 이해로 마무리되는 감각. 그러니 그 모난 감정은 오래 곱씹지 말라고. 그건 그저 그런 찰나이니 쉽게 털어내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