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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도로시 스트레이치 지음, 이영주 옮김 / 초코 / 2024년 8월
평점 :
도로시 스트레이치는 여든의 나이에 자신의 첫 소설 ‘올리비아’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 부부가 함께 세운 호가스 프레스에서 출판되었다.
여성 작가가 은밀한 감정을 다룬 이야기를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올리비아』에 흐르는 감정은 노골적이지 않고 언제나 경계선 위에 서 있다. 학생과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에 오가는 애정은 사랑일 수도, 우정일 수도, 존경이나 의존일 수도 있다. 바로 그 모호함 속에서 독자는 섬세한 감정의 온도차를 느끼게 된다.
작품의 무대는 파리 교외의 여자 기숙학교이다. 주인공 올리비아는 그곳에서 줄리 교장에게 깊이 매혹되지만, 동시에 줄리와 카라 교장 사이의 복잡한 관계도 알게 된다. 줄리와 카라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강하게 연결되 있고, 그 긴장은 학교 전체를 지배한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 감정들을 한쪽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정과 집착, 존경과 사랑, 질투와 의존이 얽혀 있지만, 독자가 그 의미를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흔히 ‘퀴어 소설’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반드시 퀴어 소설로만 단정지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의 중요함은 이야기 속에 흐르는 감정의 섬세함이다.
도로시 스트레이치는 단 한 권의 소설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규정하기 어려운 감정의 농도를 포착해냈다. 그래서 ‘올리비아’는 특정 시대의 문제작이라기보다, 지금도 독자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읽어낼 수 있는 열린 작품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책의 서문 말미에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이미 이 세상에 없음을 회고하며 ‘진귀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자신이 모독 하지 않았음을 그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썼다.
이 고백은 ’올리비아‘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과 정서에서 비롯된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지나간 시절을 애도하면서도, 여전히 현재의 독자에게 감정의 흔적을 남기는 진귀한 문학적 기록으로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무엇에 감동했고, 무엇을 사랑했으며, 나의 열정은 어디에 쏟아졌는지. 우리 모두에게 이토록 섬세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 어쩌면 신의 선물이 아닐까... ‘올리비아’가 지금까지도 독자에게 남기는 선물은 바로 그 기억의 힘일 것이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