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은행나무, 2009. 

  이 책은 사실 작년 가을쯤에 읽었던 책인데 이제서야 서평을 쓰게되었다. 작년 가을쯤 아마 나는 여러가지 일들로 한참 굉장히 힘들어했었던 거 같다. 한참 힘들 때는 그렇게 좋아하는 독서도 멀리하게 되는데, 이 책도 그렇게 한참 힘들고 난 끝에 우연히 읽게 되었던 책이었다. 우선 정유정이라는 작가가 간호사로 일한 적이 있다는 이력이 눈에 띄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희귀한 직업은 아니지만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 직업과는 별 상관이 없는 글쓰기를 했다는 사실, 나도 그렇게 바라마지 않는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책도 읽어보기 전에 벌써 부러워졌고, 심지어 한순간에 쓸데없는 질투심까지 생기게 만들 지경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들이다. 이수명과 류승민. 스물 다섯살. 이 둘은 각기 다른 이유로 정신병동에까지 오게 되었지만, 거듭 탈출을 꿈꾸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한다. 혹자는 도입부가 잘 읽히지 않았다고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신병동에서 실습을 해본 경험이 있고, 간호사인 나에게는 제삼자가 묘사하는, 그리고 환자자신이 묘사하는 정신병원의 면면들이 너무나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말 취재를 열심히 했구나, 이걸 쓰려고 공부를 제대로 했구나하는 것이었다. 생생한 상황묘사, 정확한 의료지식-물론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이 치밀한 상황전개와 함께 좋은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글을 재미있게 이끈다. 읽기 쉽고 호흡이 빠른 문장, 자주 섞여 있는 씨니컬한 블랙유머들은 아마 작가가 젊기때문인 것 같다. - 이 점이 매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점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은 이 두명의 젊은이들이 정신병동에 수감되면서부터 계속해서 벌이는 탈출시도와 각자가 걸어온 인생, 탈출을 시도해야만 하는 이유들이 큰 맥이지만, 그들이 정신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같이 수감되어 있는 환자들, 공부해서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원하는 청소부등등 매력적인, 또는 연민을 느끼게 하는 등장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들이다. 일단 한번 몰입되면 두 명의 주인공들과 함께 무섭도록 탈출을 향해 같이 가게 되고, 승민이 결국 소원대로 글라이더를 타고 날게 되었을 때나  수명이 왜 그토록 가위를 두려워했었는지,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을만큼 그가 괴로워했던 이유가 밝혀지면 또 한번 뭔가 가슴을 쿵하고 울리는 충격을 받는다.  

 너무나 부끄러운 진실, 마주 대하기 어려운 나 자신의 비겁함... 작가는  '운명이 우리 자신을 침몰시킬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것인가' 묻고 싶었다고 한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무엇을 해 왔는 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든 힘든 시기가 있고, 모두가 인생을 거치면서 크든 작든 과오를 범한다. 물론 내가 저지르는 시행착오들이 크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보기에 너무 심하게 부끄럽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작가의 표현대로 '침몰 직전'에 몰리더라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기를, 그들처럼 끝까지 싸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후기에서 작가 본인이 쓰고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뒤돌아 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