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어둠의 시대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언니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몇장 읽어보다가 그만 본격적으로 읽게 된 책이다. 주인공인 정약용뿐만아니라 주위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다 천재급이다. 그가 모신 왕 정조가 그러하며, 그의 아버지, 형제, 친구들, 심지어 그의 적들까지, 그의 주위에는 소위 만만한 인물이 없다. 이 비범한 인물들이 엮어간 이야기들, 곧 영/정조기의 역사가 숨막히게 펼쳐져, 읽다보면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져있는 것을 발견하게된다.

나는 천재들에 대한 호기심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렇게 똑똑한 인간들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까하는 그런 의구심... 그가 정조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의 천재성은 어떤 식으로 발휘되었을지 알 수 없다. 만일 그가 정씨 가문에서, 남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노론 벽파의 가문에서 태어났더라면 또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쓸데없는 일일 뿐이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건 어렸을 때나 나이들어서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 어쨌든 그는 남인가문에서 태어난 천재로 정조의 사랑받는 충신이었고, 그 이유로 인해 정조사후 숙청된다. 형 약종은 역모죄로 사형당하고(천주교와 관련되어), 약전과 약용자신은 유배형에 처해지며 그밖의 수많은 친척들이 천주교와 연루되어 숙청된다. 정약용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는 천재이고 훌륭한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그처럼 목숨의 위협을 당하게 된 때에도 비겁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명히 엄청난 공포를 느꼈을텐데도 그의 생각은 흐트러짐이 없고,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항상 일치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면적으로 흔들림이 없을만큼의 내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를 통털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유배되어 있던 18년간 정약용은 실학이라는 학문체계를 세운다. 실학이 실제로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회의적이기는 하지만, 노론벽파의 성리학이 대세였던 시대에 18년간이나 혼자 꿋꿋이 그 공부를 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는 놀라운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배되어 있는 처지에, 절망하지 않고 오직 옳다고 여기는 일에 매진하는 것은 쉽게 들릴지는 몰라도 실행에 옮기기에는 분명히 어려운 일임을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정조가 조금만 더 오래 살 수 있었던들, 순조가 조금만 나이가 더 들었었거나,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던들 조선의 운명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사족) 나는 정조가, 그리고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현대에 태어났더라도 꽤 매력적인 인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조는 김홍도를 아끼고 가까이했을 정도로 예술에도 뛰어났으며, 외가의 영향을 받은 정약용의 그림실력 역시 보통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여러면에서  이 들은 내 마음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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