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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 - 지옥에서 쓰는 편지
라몬 삼페드로 지음, 김경주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추락으로 전신마비. 그 후 30년 동안 '죽기위해' 사회와 외롭게 싸워온 한 인간.
우리는 그를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육체를 잃은 사람이 삶을 포기하려고 할까 봐 주변 사람들이 그토록 불안에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또 삶에 대한 권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 제가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정당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라몬 삼페드로는 전신마비를 맞은 후, 육체가 없는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으로 죽음을 요구했다.
그러나 가족은 물론, 사법체계, 종교계, 의료계 등에선 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누가 누구의 죽음을 허락하고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라몬은 이후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외로운 투쟁을 시작했다.
그가 싸우는 이유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을 하게 해달라는 것과, 그런 자신을 도와주는 이를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비난 뿐이었다. 물론 그 냉소와 비난 속에서 우리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모순이 툭툭 드러났지만.
그런데 이러한 방법을 옹호하는 '사도들'에 따르면 굶어 죽는 것이 어느 누구도 곤경에 빠뜨리지 않게 하는 가장 윤리적인 방법이라고 합니다. 신부나 목사에 의하면 신은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은 개의치 않지만 약을 먹고 죽는 것은 문제 삼는다고 합니다.
자살은 또한 초월이다. 안락사를 주장할 만한 타당한 상황이 아닌데도 삶을 포기하려 한다면, 그 사람을 정신병자라고 규정짓기 전에 그가 자살하려고 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사회에 물어보아야 한다. 개인의 판단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사회의 이성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미친 사람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제도화하려는 사람들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살한 이의 나약함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한 인간을 무엇이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고 옥상의 문을 잠그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음의 수단을 통제하는 것보다 죽음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안락사라는 문제가 여러가지 예상되는 문제점 때문에 간단히 접근할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굶어죽는 것은 괜찮지만 안락사는 안된다'라는 태도는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네가 죽는 것은 그렇다치지만,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건 안된다. 사회에 책임을 돌리지 마라'는 식이니까.
이 책엔 라몬이 자신의 입을 사용하여 여러 사람들과 주고 받은 편지와 시, 적어놓은 문구들이 담겨 있다.
책 전체로 봐선 강력 추천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죽기 위해 싸웠던 사람'의 존재가 던져주는 문제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