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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8 - 개혁과 (종교)개혁 ㅣ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8
아이케 볼가스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백승종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 푸른역사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코젤렉은 1750년부터 1850년까지 유럽에서 개념들의 의미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 근대 세계와 그 이전을 나누는 근본적인 단절이 발생했음에 주목했습니다.(6쪽)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념에도 역사가 있다. 단순히 어원을 찾는 수준을 넘어서, 한 개념이 긴 역사 속에서 어떤 극적인 변화를 겪었는지 살피는 작업은 흥미롭다. 물론, 그것이 고된 작업이라는 것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 또한 책 자체의 분량은 적지만, '개혁'이라는 한 개념에 천착하여 그 역동적인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서양에서도 고대나 중세에 개혁이 '회귀', '복귀', '회복' 등을 의미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유교 및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상고주의와 사뭇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2세기 중엽부터 성과 속의 모든 영역에서 'reformare'의 개념은 이중적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 분명했다. 첫째, 그것은 부패한 현재의 모범적인 규준이 되는 과거 상태로의 회귀였다. 둘째, 그것은 과거의 모범과는 무관한 변화를 뜻했다. 두 번째 의미의 개념은 신학적으로 구원사의 전통에 뿌리박은 것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라는 이상을 향한 변화였다.(20쪽)
그 뒤로 "바람적이지 못한 상태의 종식"이나 "낡은 규칙의 재현" 등을 뜻하다가, "잘못된 상태의 척결이라는 뜻과 더불어 미래지향적인 측면을 가지게 되었다."(55쪽) 그러나 또 그 이후에는 혁명의 반대 의미, 즉 보수적 성격을 가진 용어로 자리잡는다. 이제 개혁은 "본질적으로 기왕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변화를 꾀하는 것"(81쪽)이 되었다. 그리하여 점차 개혁가들은 개혁이라는 용어에 진부함을 느꼈고, 오히려 보수적인 인물들이 개혁을 논하기 시작했다. 즉, '혁명을 막기 위한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온유한 복을 가져다주며, 서서히, 그리고 조용하지만 확실히 앞으로 나가는 개혁의 천사가" 아니라, "혁명이란 사악한 악마가 존재하는지"를 캐내는 작업이라고 했다.(94쪽)
푈리츠는 "설사 모든 혁명이 그렇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은 시의적절한 개혁들을 통해서 회피할 수 있다는 원칙을 경험으로 확인했다"고 했다.(96쪽)
그리고는 결국 개혁은 유행어가 되었다. 포퓰리즘 속에서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이다(어쩌면 보수주의자들의 의도대로 진행된 것일지도?). 그래서 때로는 혁명주의자들에 의해 '수정주의' 등으로 비난 받기에 이른다.
"개혁주의란 노동자들에 대한 유산계급의 사기 행위다."(115쪽)
결국 개념의 역사 또한 일종의 문화투쟁의 역사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어떤 개념을 어떤 의도로 선점하느냐. 그 반대 세력은 그 개념을 어떻게 공략하거나 균열시키느냐하는 것은 재미있는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민영화'라는 용어는 그 사용 방식과 언어 자체가 주는 뉘앙스 덕에 그 개념을 신자유주의자들이 선점해버렸다. 실은 '사유화'에 가까움에도 언어의 선택으로 그들의 의도에 맞춰 개념을 바꾸거나 가려버리는 적절한 '커튼'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그 커튼을 걷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공적 자산을 사적 자산으로 돌리는 작업 중에 발생한 개념의 (1차) 문화투쟁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개혁'이 부정적인 개념이 되었다는 저자의 최종 평가엔 동의하지만, 어떤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개념을 둘러싼 일종의 문화투쟁은 여전히 계속될 테고, 또 계속되어야만 하니까.
어쨌거나 개념사의 학문적 기반이 탄탄하다고는 할 수 없는 한국학 분야에서, 이런 연구가 진행된다면 여타 학문의 굳건한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번역 또한 고된 작업이었을 것이 뻔하다. 어찌보면 이 지리한 작업을 진행한 저자, 역자, 출판사 관계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그 박수는 다른 시리즈를 구입하여 읽는 것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