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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웃음 - 김승옥의 시사만화 <파고다 영감>을 통해본 4.19 혁명의 가을
천정환.김건우.이정숙 지음 / 앨피 / 2005년 11월
평점 :
김승옥, 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 1964년 겨울'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는 신문 상에 만화를 그리는 시사만화가였다. 물론 대학 1학년 휴학생에 불과했지만. 하지만 분명 보통 젊은이는 아니었고, 게다가 그가 만화를 그렸던 그 짧은 기간이 4.19 직후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가 그린 만화는 그 시대를 읽는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성실한 세 명의 학자가 김승옥이 그린 시사만화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문학 전공자답게 텍스트의 행간에 숨어 있는 내용이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장치를 꼼꼼하게 짚어낸다. 그렇다고 1960년을 읽는 뻔하디 뻔한 결론으로 가닿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읽어나간다.
여름이 지나며 '4.19'가 모든 이들의 마음에 퍼져가자 가난하고 쩌든 대한민국에는 가을꽃이 활짝 피었다. 인간 해방과 민중해방을 위한 상상력의 꽃이자 민주주의의 꽃 말이다.... (중략)...
역사의 '상식'은 제2공화국의 '혼란'이 박정희 일당의 쿠데타를 불렀다고 한다. '혼란'은 나쁘다는 가치평가가 이미 담겨 있는 말이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그 402일이 마치 없어도 되는, 역사의 '낭비'였던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7쪽)
그리고 텍스트를 읽어나가다보면, 어찌할 수 없이 1960년은 2017년과 겹친다. 1960년을 알기에 희망을 가지지만, 그 결말도 알기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은 알고 있다. 진압복을 입고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저 '상명하복'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청년일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런 생각은 시위하는 쪽의 힘이 압도적으로 크고 자신감이 충만할 때나 가능하다. 시위를 벌이는 것 자체가 어렵거나, 시위를 막는 경찰이 강경대응으로 일관할 때에는, 그런 생각을 떠올릴 여유가 없다. 우리 현대사에서 시위대가 경찰들에게 꽃을 꽂아주거나 '민주경찰 동참하라.'고 '권유'했던 순간들을 생각해보라. 그때 시위대는 도덕적 명분뿐 아니라, 어쩌면 힘에서도 경찰 배후에 버티고 있는 권력보다 우월하였다. (46쪽)
종종 수사적인 과잉이 보여서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1960년 4월 이후의 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읽을만한 책이다. 물론 기본 텍스트가 만화이기 때문에 재미도 있다. 사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풍자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부분.
그리고 만화는 대저 '웃음'이다. 고전적인 수사학은 어떤 고달프고 위압적인 현실이라도 가장 인간적이며 지적인 주체화의 전략인 '웃음 한방'으로 제압된다고 가르친다. (12-13쪽)
하지만 읽으면서, 그리고 최근에 여러가지 이슈를 접하면서, 내 관심은 조금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고전적인 수사학'의 주장도 분명 맞는 말이지만, 웃음은 약자만의 무기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웃음이 강자의 (치사한) 무기가 될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게 힘의 과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웃음은 결코, 나락에 떨어진 자의 무기가 될 수 없다. 이 시각으로 식민지기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작년 하반기에 했던 발표는 실패였다. 좀 더 다듬에서 이 주제로 글 하나를 완성하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아니, 내가 게으른 거겠지. 억지로 4월 중에는 글을 완성해야하는데, 만족할만한 글을 쓸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