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니, 이완용에 대한 평전을?" 아직도 이렇게 놀랄 사람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만큼이나 이완용은 '친일파', '매국노'의 대명사다. 내가 강의 시간에 '국민 매국노'라는 드립을 칠 정도로, 이런 평가에 '함부로' 반박 의견을 내놓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완용 평전은 많아야 하는 것 아닐까? 어쨌거나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으니까. 히틀러 평전이 많은 것은 히틀러가 훌륭한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훌륭한 인물들, 그러니까 독립운동가들의 삶만이 우리에게 지적, 사회적 자극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긴, '평전'이라고 하면 보통 훌륭한 인물의 삶을 생각하기 마련이니,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혹시나 이완용을 미화하거나 방어하려는 글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왜 안 생기겠는가? 독자들이 다음의 글을 보면 그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려나?


  이완용은 부조리하나 사회의 구조와 관행이라는 거대한 힘에 맞서 승산 없는 싸움을 할 만큼 분노와 투지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방 향리 및 양반 토호와 한패가 돼서 진흙탕 속에 자신을 내던질 만큼 탐욕스러운 인물도 아니었다.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되새기면서 자신만이라도 오롯이 지켜내려 노력하는 완고한 원칙주의자도 아니었고, 주위의 시선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관행을 잘라내는 과격한 행동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느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피해가 가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서 가능한 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 하는 현실주의자, 합리주의자, 실용주의자였다. (157~158쪽)

 

이완용이 탐욕스럽지도 않은 합리주의자, 실용주의자라니? 뭔가 께름칙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실용과 합리는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인가? 이 가치들은 맥락과는 상관 없이, 비판 받을 여지가 전혀 없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분노할 현실이 없거나 또는 그것을 외면하려 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 그래서 오늘날의 이완용은 '매국노'로서보다는 '부조리한 현실에분노할 줄 모르는' 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호명하는 가치에 호응할 줄 모르는' 인물로 비판되어야 할 대상이다. (14~15쪽)


저항과 투쟁이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일본의 강압을 더 불러안다고 생각했던 지식인들은 '실력 양성'만이 독립 주권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부강해지면 되찾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이완용의 주장은 대한제국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210쪽)


어쩌면 이 책은 '이완용 평전'이라는 이름을 단, 근대성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비판은 적절한 소재와 관점을 유지한 덕에 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자는 얼마나 '합리'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는 의문. 아무래도 대상이 대상인지라 최대한 객관을 유지하기 위해 '합리'를 강제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데, 때로는 그 노력이 약간의 무리수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거나 이완용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그동안 이완용을 입에 담기조차 싫어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이 책을 펼쳐봐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이완용은 우리 시대의 금기여서는 안 된다. 그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만, 이 시대에 그와 같은 '합리주의자'가 판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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