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 미스터리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한국의 예언문화에 대한 연구의 일단락. 그 동안 저자의 책에서 수없이 등장했던 문제의 책, '정감록'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정감록' 혹은 예언서라고 하면 무엇인가 허황되고 과장된 묘사가 가득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예언서 연구'에 대해서도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겠다. 고작해야 어떤 예언서가 진본인가를 따진다거나(물론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긴 아니다), 예언의 내용이 얼마나 들어맞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다는 얘기. 그러나 예언서에 대한 연구는 '해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많은 상징이 들어가있고, 책 자체가 문화적 암호로 서술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가 예언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라는 문제는 물론이고 '과거의 사람들이 예언서를 어떻게 해석해왔느냐'라는 문제야 말로 중요한 지점이 된다.

 

  좀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다. 역사 속 민중들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정치적 예언을 늘 새롭게 해석했다. 나 역시 사실보다는 "해석"에 무게를 둘 것이다. 이 책은 <정감록>에 관한 해석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쪽)

 

신화에 대한 연구가 그러하듯이, 자연스레 이 예언서에 대한 연구도 방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한 사회나 문화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응축된 텍스트인 예언서를 읽어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사회의 특정 세대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 디씨인사이드의 글들을 전혀 읽어낼 수가 없듯이. 게다가 저자가 주목하는 '정감록'은 단순히 특정 시대에 유행했던 텍스트가 아니라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그 내용상의 축적과 변화를 추적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자세히 알면 알수록 예언은 그저 어느 한 사람의 무책임한 말장난이 아니라 문화의 집적임이 확인된다. 그 문화는 상층이나 하층의 어느 한 쪽의 전유물이 아니라, 상하를 왕래하며 풍부해진 것이었다. 민간의 설화, 점쟁이의 예언 그리고 유식한 양반들의 풀이와 기록이 정치적 목적과 어우러지며 문화의 나이테가 되어간 것이다. (42쪽)

 

그렇다면 저자가 '해석'하는 이 '문화의 나이테'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가 언급하듯이 예언서에서 중요했던 것은 "이상향의 모습이 아니라 과연 언제 새 날이 밝느냐는 문제"였다. 오랜 시간동안 영향을 미쳤던 불교의 영향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이상향의 모습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 자체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지긋지긋한 세계가 뒤집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오는 시점이었다. 때문에 저자는 '정감록'이 하나의 저항문화이며 저항 이데올로기였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와는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세상의 이론적 기반. 예언서가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각 시대마다 예언서를 불온하게 여기고 그것을 차단하려고 애썼던 지배권력의 모습으로 쉽게 증명 가능하다. 심지어 일제조차도 '정감록'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그것을 평가절하하려 했다. 일본 지식인 호소이 하지메는 1923년 '정감록비결집록'이라는 책을 출간, 최초의 '정감록' 인쇄본을 간행했다. 그냥 겉으로만 봤다가는 일제가 한국의 예언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정도의 해석에 그칠 수 있으나,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이것은 오히려 '정감록'을 죽이기 위한 프로젝트였으며, 따라서 일개 개인의 관심사에 의해 진행된 일은 아닐 거라는 주장이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공개해라. 그렇다, 금단의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는 방법은 공개하는것이다. 그러면 <정감록>은 신비함을 잃게 된다. 신비성을 잃어버린 <정감록>이라면 이미 반쯤은 죽은 거나 다름 없다.

또 하나, 기왕에 공개할 바엔 <정감록>의 정본을 만드는 거다. (254쪽) 

 

'정감록'과 같은 '비기'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책을 둘러싼 신비의 아우라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게 생각해서, '인쇄본'이라는 것 자체도 신비함과 은밀함을 없애는 데 적격이었을지 모른다. 상상해보라. 당신이 산에 오르다 만난 도인이 건네준 비기가 2쇄의 인쇄본인데다 인쇄일자나 저자, 출판사, 가격까지 떡하니 적혀있다면 어떠할지. 어찌보면 일제의 전략은 일방적인 금지보다도 더 효과적이고 무서운 것일지 모른다. '정본'의 의미도 그렇게 읽을 수 있다. 다양함을 무기로 삼아 번식하던 예언서가 '정본'을 만나는 순간 그 번식력은 확연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런 문화적 전략은 '문화적 번역', '문화적 설득'이라는 맥락에서 금서, 민중신앙, 미신 등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할 때 매우 중요한 관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현재 저자는 금서에 관련된 다른 저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아는데, 매우 흥미로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최근 국내 굴지의 기업의 대표이사가 '점장이'의 말을 믿고 주식 투자를 했다가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날렸다는 얘기가 있었다. 우리가 이미 '비이성적'이고 '전근대적'이라고 비난을 해대는 와중에도, 이 '전근대'와 '비근대'는 계층에 상관없이 근대 속에 여전히 숨쉬고 있다. 내가 준비하는 논문도 이런 관점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제시하는 관점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자신이 관심을 가진 한 주제를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성실히 연구하는 연구자의 모습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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