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다문화주의 - 시앙스포 총서 8
마르코 마르티니엘로 지음, 윤진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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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 전형적인 책 제목. 마치 대학 교양 수업의 교재로 쓰여야 할 것만 같은 표지까지 갖춘 책이지만, 의외로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되고, 그러면서도 명확함을 잃지 않는 책이다. '다문화'가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는 때라, "한 번 읽어볼만 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읽다보면, "대체 우리가 '다문화주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지?"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그만큼 우리는 다문화주의에 대해 정말 아무 생각없이 접근하고 있는듯. 그러니 현재 수많은 멍청한 제도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겠지만.

 

다문화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통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혹은 "농촌공동화로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따위의 말을 쓰지만, 사실 문화적 다양성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있어왔던 것일뿐.

 

  하지만 문화와 정체성의 다양성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인간사회는 그 다양성의 정도가 달랐을 뿐 언제나 다양화되어 있었다. 문화의 정체성, 혹은 다른 모든 영역의 정체성 - 민족, 문화, 성(性), 계층, 직업상의 정체성 - 과 관련하여 다양성이란 곧 삶의 동의어인 것이다. 완벽하게 단일문화적인 사회, 단일한 정체성을 갖는 사회는 오직 강자들이 강요하는 틀에 맞추어 인간 모두를 획일적으로 키워낼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는 사회생활이라는 원칙 자체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22쪽)

 

그만큼 '우리'라는 강력한 환상의 힘이 대단했던 것이리라. 대체 '우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우리'가 또 얼마나 많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우리'는 인식하고 있는가? 아주 좁은 폭으로 논의해보더라도, 이제 조금만 시간이 더 흐르면 이민자들이 '침묵하는 타자'로 순순히 존재(?)할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민자들 중 상당수는 자기들이 처한 상황을 일시적인 경제적 유배라고 생각했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몇 년간 일하고 나서 적은 돈이라도 모으면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바로 그러한 조건에 있었기 때문에 생활에 있어서 상당한 희생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 새로 구성되고 또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신화 같은 믿음이 사라지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새 나라에 완전히 정착하고 또 자녀들이 그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민자들은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자기들의 문화적인 관습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감추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된다. (32쪽)

 

저자는 정부의 정책 모델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보고 있다. 동화주의적 접근(프랑스식), 다원주의적 접근(미국식), 차별적 포섭/배제(독일식). 물론 이 모든 모델이 현실적으로 전형적인 적용이 되고 있는 곳은 없다. 동화주의적 접근을 시도하는 정부라할지라도 세부 정책에 있어서는 다원주의적 접근을 시도할 수도(혹은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책에 관심이 있는 분은 동화주의적 접근과 다원주의적 접근이 의미하는 바를 한 번 추측해보시길. '상식'이 무참하게 밟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은 어쩌면 가장 보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차별적 포섭/배제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입장 때문에 저자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문화적 게토화'를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이 책의 원제는 <문화적 게토를 벗어나기>다). 경제적 필요 혹은 노동력의 필요는 인정하여 그 분야에서는 차별적으로 포섭하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배제. 이런 차별적 포섭/배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기도 하지만, 이 정책이 가능한 바탕은 대한민국의 구성원 모두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혈통주의, 문화적 순혈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타문화에 대한 공포'. 아마 사무엘 헌팅턴의 주장이 이렇게나 잘 들어먹힌 건 미국을 제외하곤 한국이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현상도 모두 여기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왜 '문화의 충돌'이 그토록 '한국인'들을 매혹했을까? 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어쨌거나 문화의 충돌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문제가 많다.

 

  하지만 세계가 문화의 전면전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이러한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리일 것이다. 실제 그러한 주장은 어느 곳에서도 증명된 바 없다. 물론 민족적, 문화적 양상을 띠는 갈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되지만, 문화적 다양성이 현재의 갈등과 난국의 유일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것처럼 보이느느 갈등 뒤에는 흔히 경제적인 문제, 경제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이런 점에서 문화적 갈등은 사회, 경제적 갈등과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결과인 것이다. (50~51쪽)

 

더 큰 문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의 여러가지 모순을 문화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회 모순을 은폐하려 한다는 점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를 더욱 강조하여 보도하는 보수 언론의 태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문화를 사회를 읽는 유일한 열쇠로 삼아 문화, 경제, 사회의 영역간 상호작용을 소홀히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현대사회에서 작용하고 있는 역학에 대해 단순화되고 편파적인, 부분적인 관점을 가질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프랑크푸르트의 예를 보면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문화의 문제로 읽어내는 것은 결국 오진(誤診)이며, 무용한 대책이 될 위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몇몇 형태의 다문화주의가 사회 상황들을 지나치게 '문화화'하는 것은 국가가 새로운 사회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하려는 능력이나 의지가 없음을 은폐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123~124쪽) 

 

이 책의 좋은 점은, "현대사회는 다문화주의가 받아들여져야만 한다"라는 단순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다문화주의의 성격을 찬찬히 살피면서 그 문제점도 여러 측면에서 부각시킨다. 다문화주의는 일종의 방법론이지 그 자체가 어떤 절대선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어떤' 다문화주의인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지금 한국 정부가 시행하는 다문화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런 관점에서 가능할 것이다).

 

  개인이 꼭 어떤 문화에, 단 하나의 문화에 소속되어야 한다고 간주하여 문화적 소속에 있어서 배타적 개념에 집착하는 '다문화주의자'들이 있다. 그것은 다원주의의 영향을 받은 '다문화주의'로, 정체성에 있어서 개인의 고립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을 보호하듯이 민족, 문화, 인종집단을 보호하고 존속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 집단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유지함으로써, 개인을 그 집단 중 어느 하나에 자동적으로 소속시키게 된다. 그때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조상과 혈통으로, 개인들이 정체성을 바꾸고 싶어한다든가 혹은 실제 사회적 여정을 통해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사회적인 시행의 문제이건 정체 혹은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건, 이러한 다문화주의는 개인을 한 문화적 집단에 귀속시키며 한 가지 정체성을 강제로 부과하는 것이다. 개인이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117쪽)

 

  결국 관용의 원칙에 근거하는 모든 상징적 인정은 오히려 다르다고 간주되는 개인과 집단들이 배제될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사실 관용은 타자에 대한, 타자의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전적인 무시가 될 수 있다. (141쪽)

 

  법적이고 정치적인 도구들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때로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약간의 양식과 선의만으로도 시민적 다문화주의의 발전에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147~148쪽)

 

논술 문제의 모범 답안마냥, 제도적 접근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뻔한 결론에 도착할 수 밖에 없지만, 이 결론을 하나의 '원칙'으로 삼고 접근을 한다면 그 '뻔한 결론'이 조금 더 쉽게 그리고 더 빨리 현실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프랑스 쪽의 사회학/철학 책은 내 취향과 맞지 않아서 이 책도 긴가민가 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읽는 '명징'한 책이다. 분량이 많지 않으면서도 많은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고, 또 그러면서도 다문화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가이드가 된다. 말버릇처럼 다문화를 떠들기 전에 한 번쯤은 읽어봐야할 책이다. 특히 정책입안자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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