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홀로 죽는다 - 무연사회를 살아가기 위하여
시마다 히로미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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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연사회란? 말 그대로 인연, 연줄이 없는 사회다.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지역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이젠 가족마저도 '인연'이라는 말로 부를 어떤 끈끈함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죽음은 또다른 양태를 보인다.

 

   특히 자의식이 강한 청소년기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강렬하다.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두려움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지금까지와는 성질이 조금 다르다. 오늘날 우리는 단순히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어떻게 죽게 될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죽음 자체보다도 죽는 방식이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고독한 죽음을 두려워한다. 간병도 받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죽는 것이 두렵다. 이를 고독사라고 부른다. 고독한 사람은 죽은 뒤 며칠이 지나도 발견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러면 누군가 내 죽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며칠씩이나 버려진 것처럼 방치된다.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송장 썩는 냄새도 진동할 터이다. 발견 시간이 늦어지면 백골이 도어 있을지도 모른다. (14~15쪽)

 

이 고독한 죽음을 일본에서는 '무연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저렇게 고독하게 죽어가는 모습은 아무래도 처참했던 모양이다. 무연사를 주제로 한 다큐가 NHK에서 방영된 후, 상당한 반영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새로운 방식의 모멘토 모리랄까. 평생 죽음을 잊고(혹은 잊으려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는 이런 방식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다. 저자는 무연사회의 반대편에 유연사회를 놓고 설명을 시작한다. 농촌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유연사회가 어떻게 무연사회가 되었는지 설명하고, 결국 무연사회가 된 것은 모두 우리(일본인)가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연사회라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연사회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며, 고독사 또한 죽기 전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온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나쁠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저자에게 있어 제사나 장례식은 크게 의미가 없는 행사다. 지금처럼 성대하게(?) 치러지는 것은 낭비에 가깝다는 것이다.

 

  관혼상제의 '제'는 원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뜻했다. 조상을 어떻게 공양하는가가 '제'의 원래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관혼상제입분>)에서는 '제'를 연중행사로 취급했다. 본래 뜻과는 조금 다르다. 다도의 세계에서는 계절 변화를 다도에 접목시키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한 다도 종가 출신 저자였기에 제사를 연중행사로 연결할 수 있었다. 저자는 연중행사가 사회생활의 윤활유가 된다고 보았다. (156쪽)

 

  가족이나 친척이 있더라도 고인이 죽기 전까지 의료나 간병으로 상당한 돈을 썼다면 비싼 장례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례비용은 비싸다. 졸저 <장례식은 필요 없다>에서 서술했듯이 평균적인 장례비용은 약 231만 엔(한화로 약 3천만 원)에 달한다. 한편 관혼상제 상조회인 '쿠라시노토모 생활의 친구'가 10년 만에 시행한 2010년 조사에 따르면 평균 장례비용은 242만~243만 엔이었다. 10년 전인 1999년 조사와 비교하면 124.4만 엔이나 줄었다. 물론 여전히 장례비용은 비싸다. 그러나 10년 만에 2/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은 장례의 간소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조사에 따르면 조문객 수도 줄어드는 추세이며, 회사 동료가 장례식을 도우러 나서는 경우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76쪽)

 

제사나 장례식의 성격이 시대나 사회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례식은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학문적 영역을 벗어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 책의 성격이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인류학자'인 저자를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로 인연이나 사회의 관습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걸 느낄 수 있다. 뒷부분에 그 이유에 대한 약간이 증거가 나오는데, 저자는 오옴진리교 관련 저서 때문에 연구직도 박탈당하고 건강도 나빠지는 등 개인사적으로 고초를 겪었으며 함께 살고 있는 가족도 없다. 이 개인사가 그의 저서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 개인의 연구나 이론 등이 개인사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르나, 이 책의 서술들은 자신의 삶을 '정당화'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만큼 저자의 생각이나 관점이 이제 굳어질대로 굳어졌거나 혹은 그의 서술방식이 그 모든 것을 독자에게 그대로 드러낼만큼 투박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현재 일본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만 하다. 그리고 이 분위기가 한국이라고 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더욱 생각해볼 문제다. 논문 관련해서 살펴볼만 했던 점은, 화장의 경제성(실은 경제논리).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이 결코 작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부분을 빼놓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토장일 때에는 마을 공동묘지에 유체를 묻으면 끝이었다. 따로 묘를 세우더라도 집 근처에 세웠기 때문에 일부러 성묘를 하러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화장이 보급되면서 반드시 유골이 남기 때문에 어딘가에 안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 말해 모두 묘지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화장이 가장 보편화한 나라라고 한다. 99퍼센트에 달하는 화장률을 자랑한다. 화장이 보편화한 이유로 공중위생 문제를 꼽을 수 있긴 하지만 이보다도 토지부족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도시에는 토장을 할 만한 땅이 없다. 마을 공동묘지처럼 마을 사람이기만하면 누구나 무료로 묻힐 만한 땅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183~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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