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와 광대 - 중세 교회문화와 민중문화 현대의 지성 133
유희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중세 교회문화와 민중문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당시의 '현실'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또한 중세에서 '민중문화'라는 말은 '하층계급의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문화'를 의미하는 것임을 강조함과 함께.

비록 1부는 기존 논문들을 모은 것이라 통일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몇 가지 흥미있는 화두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도덕체계는 '이웃과의 친밀성'과 '긴밀한 상호성'에 기초한 유서 깊은 농촌 공동체의 자율기제, 말하자면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작은 공동체에서 상호주체적인 '이웃의 시선에 대한 내면화한 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의해 작동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마을 사람들의 에토스와 아비투스에 동시에 작동한 도덕체계는 교회가 내면화시키고자 했던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죄의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이전부터 면면히 이어온 유서 깊은 농민 공동체적 '수오지심'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예화는 교화적 담론에서 사용될 때 화자와 수용자(청중) 사이의 수사적 상황을 포함한다. 설득을 전제로 한 수사학적 맥락에 자리한 예화는 화자가 그것을 통하여 수용자에게 도덕적 규범을 내면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편, 화자는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용자의 기대지평과 역(逆)통제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화는 기술=성직자(문자해독자) 문화, 구술=민속(문맹자) 문화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이 양자가 상호작용하고 삼투하는 '언어 수행'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꼭 중세만이 아니더라도 각 집단의 전략을 읽어낼 때 중요한 관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나의 관심사가 그러한지라, 1부보다는 2부에 더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

2부의 제목은 '타나토스에 대한 교회권력과 영생전략'으로, 역시 죽음과 관련된 저자의 박사논문이다.

'유언방식은 당시의 사회와 죽음의 이미지를 증언'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앞으로의 연구'꺼리'를 생각하게끔 한다.

 

중세에 유언과 같은 임종의식이 사사로운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관점.

아동을 죽음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임종장소가 가정에서 병원으로 이동되며,

"현대사회에서는 노령과 죽음 같은 타나토스가 억압되는 대신, 젊음, 건강,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적인 에로스가 죽음을 감추는"

'금지된 죽음'의 양식이 만들어졌다는 건, 아리에스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엘리아스의 지적대로 이런 '낭만적' 혹은 '상고주의적' 관점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언은 후대로 갈수록 고독과 소외되고 있다거나 죽음의 일상성과 편재성 때문에 과거의 죽음은 '감수하는 죽음'이었다는 관점은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가 어렵다.

일상성과 편재성 때문에 죽음의 공포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건 비약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논문주제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겠다.

"죽음"의 관리는 권력의 최종 통제 영역이며, 가장 사적인 영역이지만 공적영역으로 치환이 가능할 때 상당히 유용한 영역이라는 점.

때문에 중세 교회가 민간의 풍습이 기독교식 장례식과 상충하기에 임종과 매장 사이의 기간을 가급적 단축하려 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또 권력에 의해 통제되어 창출된 '묘지'라는 공간이 가지는 '공간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고

망자의 개입가능성이 높았던 중세와 식민지 조선을 비교해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대도시의 외래인은 조성을 덜 찾는 '뿌리 뽑힌 사람들'"이라는 분석도, 재조 일본인들을 보는 관점으로 적용이 가능할 듯.

그밖에 연옥의 생성이나 천국이나 지옥의 이미지 전략 등도 흥미롭지만, 당장 이것을 논문과 연결짓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심성사'와 같은 부분에도 관심이 가는 편이지만, 이것을 논문의 중심방향으로 잡는 건 어려운 일 같다.

차후에 단편적인 논문을 쓸 때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특히 죽음의 '공공화'가 되려 개인의 고독을 낳는다는 건 재미있는 주제다).

 

많은 국내 서양사 관련 책들이 그러하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주장은 적어서 그 점이 아쉽다.

하지만 이런 단행본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은 현실을 생각하면, 의미가 있는 책이다.

 

보벨의 책은 번역이 안되나? 꼭 보고 싶은 책이긴 한데, 불어... ㅠ.ㅜ 영어로라도 번역본이 있으면 꼭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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