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문화사 - 역사는 미술과 어떻게 만나는가, 심산 픽처링 히스토리 1
피터 버크 지음, 박광식 옮김 / 심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책의 부제가 책의 내용을 더 잘 설명해주고 있다 - 역사는 미술과 어떻게 만나는가?

 

사실 역사가에게 사료의 분야가 넓어진다는 것은 일면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어찌됐거나 기쁜 일임에는 틀림없다.

제대로 된 역사가라면 사료가 풍부해지는 것은 그야말로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 기록만이 아닌 '이미지'가 사료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은 혁명에 가깝다.

하지만 실제로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사료로 이용되는 사례는 그리 많이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에 대해서는 학계의 보수성을 운운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미지의 사용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문자 기록을 사료로 사용할 때에도 엄정한 사료 비판이 필수적이지만, 이미지에 대한 비판은 무척이나 중층적이다.

 

  1. 역사가들의 처지에서 반가울 얘기를 먼저한다면, 고대 이집트의 사냥 광경처럼 최소한 몇몇 지역과 시대뿐일지라도 예술은 문서자료들이 지나쳐 버리는 사회적 현실의 단면들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2. 나쁜 소식은 재현 예술은 겉보기보다 현실적이지 않고, 사회현실을 반영한다기보다는 왜곡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후원자들이나 고객은 말할 것도 없고) 화가나 사진가들의 다양한 의도를 계산에 넣지 않는 역사가들은 심각한 오해를 하게 될 수도 있다.

  3. 하지만 다시 반가운 소식이 있는데, 왜곡의 과정 그 자체가 많은 역사가들이 연구하고 싶어하는 현상들의 증거라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사고방식이나 이데올로기, 정체성 따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또는 현실에 충실한 이미지는 사람이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갖고 있는 심리적 또는 은유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이미지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므로 어찌보면 장황한 설명보다도 훨씬 직관적으로 역사가가 원하는 그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사회를 다루고 있는 이미지들을 사회의 단순한 반영이나 스냅사진 정도로 읽는' '명백한 오독'을 하지 않는다면,

이미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자 기록을 버려야 한다는 양자택일의 논리로 치닫는 건 바보짓.

 

타자를 왜곡한 이미지들, 예를 들어 극도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의 경우에도, 그것을 '사료가 아니다'고만 치부하는 것은

한없이 열려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내차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좀 더 심층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런 그림들은 서구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수도 있다. 여기서 살펴본 이미지에 표현된 타자는 바로 자아의 전도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타자를 보는 관점이 정형과 편견을 통해 중개된다고 했을 때, 이런 이미지들이 함축하고 있는 자아에 대한 관점은 한층 더 우회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들을 읽어내는 방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이 이미지들은 귀중한 증거가 될 터이다. 루스 멜린코프가 중세 말의 북유럽을 두고 했던 언급은 분명히 훨씬 더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한 사회의 정수와 그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사회가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어디에 긋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한 지역과 시대에서 사람들이 '인간 이하'라고 여겼던 것들을 분석해 보면, 그들이 인간의 조건을 바라보았던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결국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주어진 과거의 자료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의 문제다. 그것의 형태가 어떻던 간에.

보수적인 역사가는 사진이나 그림의 경우 조작의 가능성이 너무 크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문자 기록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부지런하지 못함'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조작된 것이 분명한 사료를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활용할 수도, 아니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조작과 거짓 속에는, 역사가들이 열광하는 그 어떤 '전형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고 보면, 나도 석사논문을 쓸 때 나름 이미지가 주된 소재 중 하나였는데, 정말 발톱만큼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여튼, 요새 논문 쓸 자세를 잡기 위해서 나름 노력 중인데. 이 책도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좀 아쉬운 점이라면, 편집. 도판들이 죄다 흑백인 건 그렇다치더라도, 그림을 찾아보는 것이 굉장히 불편하게 편집이 되어 있다.

하다 못해, 사진 번호 뒤에 그 도판이 실려있는 페이지 정도는 적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나 싶다.

 

이상하게 맘 잡는 것이 힘든데, 다음 주부터는 정말 시작해야할 것 같다. 한 권만 더 읽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