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데이비드 바사미언.하워드 진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하워드 진의 인터뷰 집.

본래 하워드 진은 무겁고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을 결코 어렵지 않게 풀어내곤 했지만, 이 책은 더욱 다가기가 쉬운 책이다.

역사, 사회는 물론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하워드 진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 정말 적합한 책.

짧은 분량과 구술 인터뷰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하워드 진 특유의 설득력을 맛볼 수 있다.

 

  정부가 '안보'라는 말을 어떻게 선전하는지 잘 보십시오. 무척 흥미롭습니다. 안보라는 미명하에 정부는 사람들에게 지문날인을 강요하고 감시합니다. 게다가 한밤중에 잡아가기도 합니다. 시민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지만, 시민권을 가진 미국 국민도 예외는 아닙니다. 미국 국부의 상당한 부분이 군사비에 지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모두가 안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짓이지요. 하지만 일상적인 삶에서 국민의 안전은 도외시됩니다. 국민이 노동을 중단하고 싶은 연령에 이르렀을 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삶이 진정한 안보입니다.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생산이 증가하고, 국민총생산이 증가하니까요. 하지만 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분석해보십시오. 문자 그대로 '천박하기(gross)' 이를 데가 없습니다.

 

조금 전에 나는 계급을 기준으로 사회를 관찰하고, 우리 모두가 공통된 이익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은 소속된 계급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애국주의는 공통된 이익을 지향합니다. 국기가 그런 공통된 이익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애국주의는 정부가 흔히 동원하는 그럴듯한 단어와 똑같은 역할을 하면서 공통된 이익이라는 착각을 조장합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하워드 진의 글에는 사람을 일어서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마음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후방에서 팔짱을 끼고 냉소짓는 것과는 달리, 그는 전장의 최전선에 서서 웃음 짓는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내가 젋었을 땐 당신이 서있는 그 자리에 있었다고.

그러니 너의 목소리를 내고, 너의 행동을 취하라고.

 

  조용히 하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토론할 때입니다. 밤을 새우면서라도 전쟁의 타당성을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부도덕하고 타당한 근거도 없는 전쟁이 아무런 반대도 없이 그대로 진행되도록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전쟁 중이니까 반대의 목소리를 죽이라고요?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태가 위험해졌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뤄야 하니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인가요? 그런 게 사회적 통념이라고요? 그건 결국 덜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만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 가장 절박한 문제를 다뤄야 할 때는 어떤 주장도 하지 말고, 논쟁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민주적인 토론과 논쟁이 필요할 때입니다. 사람이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국민이 죽어가고, 미국 국민이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토론의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전쟁을 중단시킬 정도로 저항의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그의 자신감은 아마도 그가 경험했던 60년대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어줍짢은 한국의 386, 그러니까 이젠 486들의 패배주의적 우월감이 없다.

(요새 듣고 있는 한 수업 중 하나에서 이런 패배주의적 우월감 때문에 소통의 단절을 절감하는 중. 짜증도 좀 나고.)

그래서 더욱 세대차가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도.

 

시민불복종. 우리가 택한 이 주제는 약간 혼란스럽다. 시민불복종이 주제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 문제는 시민불복종이 된다. 하지만 시민불복종은 우리 문제가 아니다. …… 우리 문제는 시민복종이다. 우리 문제는 정부 지도자들의 지시에 복종해서 전쟁터로 간 사람들의 수(數)다. 정부의 명령에 복종했기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었다.

 

또 강연이 끝나면 누군가 일어나서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로 속수무책인데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여기에만 1500명 가량이 앉아 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부와 권력의 독점을 반대하는 내 강연에 여러분 모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미국에는 어딜 가나 여러분과 똑같이 느끼고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1500명, 아니 2천명이 있습니다. 여러분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느낌을 대신해서 행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보통 사람들의 일은 보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는 보도해도 어떤 중요한 쟁점을 갖고 천 명의 보통 사람이 모여 시위한 사건은 보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똑같은 걸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이 이 나라에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이렇게 대답합니다.

 

수업시간에는 교수의 정치적 입장을 절대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막스 베버와는 달리,

하워드 진은 교실 밖에서 선생의 삶이 어떠한 지를 분명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막스 베버의 말도 이해는 가지만, 나는 하워드 진의 태도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으니까.

 

  나는 선생들에게 개인적인 경험을 교실에서 쏟아내는 데 망설이지 말라고 자주 말합니다. 선생들은 그런 점에서 무척 소심한 편입니다. 선생답지 못한 짓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강의 진도표에 맞춰 교과서를 가르치고, 본인이 가르쳐주고 싶은 내용만 가르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이나 개인적인 경험은 좀처럼 언급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선생이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생은 나름대로 어떤 세계를 경험했을 테고, 그런 경험 덕분에 현재 위치에 있는 것 아닐까요? 선생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경험을 통해 선생의 의식이 변하기 시작했는지 학생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힙니다.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나도 배워서 아는 거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가르치는 지식을 태어나면서부터 알았던 게 아니고, 신이나 역사가 거저 준 게 아니라, 학생들도 얼마든지 터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운 거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여기까지야 흔히 들을 수도 있는 이야기. 그러나.

 

  이런 자세는 나 자신을 위해서 중요합니다. 내가 세상을 분석하는 관점은 부분적일 수박에 없습니다. 내 나름대로 옳다고 선택한 관점에서 본 세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내 관점을 진리처럼 받아들이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내 관점은 그저 내 관점에 불과한 거라고요. 지식은 주관적이고 역사도 주관적이어서 수많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내 해석은 그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관점, 즉 '생각을 파는 시장'에서 내 관점은 한 모퉁이를 차지할 뿐이라고요. 물론 '생각 시장'은 자유 시장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실물경제 시장처럼 '생각 시장'도 소수의 강력한 집단이 지배하고, 나는 그 시장에서 작은 수레를 밀고 다니며 학생 손님들에게 "이걸 맛보세요. 괜찮은 맛보세요!"라고 외칠 뿐이라고 말합니다.

 

16살의 여학생이 자신을 초청하는 편지를 받고 달려가 강연을 했다는 하워드 진.

그가 이렇게 헌신적으로 활동을 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때문에 그의 말에는 신솔함이 담겨있고, 그의 관점에는 항상 밝음이 담겨져 있었을지도.

학생의 입장에서도, 또 앞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는 선생의 입장에서도.

내겐 그야말로 '스승'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다.

 

편히 쉬시지 마시고, 여전히 제 머리와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저를 다그치고 용기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직 하워드 진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추전한다. 그리고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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