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꼬프스끼 선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64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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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나오던 세계문학 시리즈 'Mr. Know'가 절판됐다.

물론 같은 내용의 책이 양장의 형태로 나오기는 하지만, 요새 나는 양장보다는 페이퍼 북 형태의 저가책이 맘에 들어서 아쉽다.

종이가격도 오른데다가 우리나라에선 이런 형태의 책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까울뿐.

특히 이 시리즈는 다른 전집들과는 달리 각 책의 표지가 다른 컨셉으로 그려져있어 외양상으로도 맘에 딱 들었었는데. 

'20세기 위대한 혁명 시인'으로 불리는 블라지미르 마야꼬프스키의 선집이다.

해외문학, 특히 시 종류는 거의 읽어보질 못했는데, 그 중에서도 러시아 문학을 완독한 건 거의 처음이다.

짧은 산문도 수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시를 만들 것인가'라는 글을 보면 이 시인이 한 줄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고민하는지 엿볼 수 있다.

'번역시'로는 아무래도 그러한 각운이나 운율을 제대로 맛볼 수가 없기에 좀 아쉽기도.

어쨌거나 마야꼬프스키는 혁명 뿐만 아니라 사랑도 노래했다. 역자가 '혁명의 시인'이라는 말 중 후자를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듯이.

 

사람들이 킁킁거린다 -

무언가 타는 냄새!

불자동차의 출동

번쩍이는 방화복!

철모!

장화는 안 돼!

소방대원에게 말해

심장에 붙은 불은 애무로 꺼야 한다고.

 

그러나 역자의 지적대로 '시대는 그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범속했고 그는 시대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민감했다'.

 

  어제 내 동무 한 사람이 전장에서 돌아왔다. 그는 위생병이었다. 그는 보잘것없긴 하지만 아름다움을 무척 사랑하는 예술가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캐스터네츠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집 파티에 온 그 친구에게 한 곡 부탁했다. 그는 연주를 시작했으나 도중에 그만두어 버렸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관찰했다. 그의 손은 불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부상자에게서 총알을 뽑다가 유산탄 조각에 찔려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또한 포탄이 비 오듯이 날고 있는 장면을 말해 주었고 사흘간 붕대를 감느라고 한잠도 못 자 쓰러진 자신에게 사람들이 피비린내 나는 비슬라 강물 한 컵을 갖다주었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건 그의 <직업>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었지 않은가. 그는 화를 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대가 공격할 때 한꺼번에 울려 퍼지는 우렁찬 <만세> 소리 중 어떤 목소리가 이반의 목소리인지 가려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수없이 발생하는 전사 중 어떤 것이 내 죽음이고 어떤 것이 다른 이의 죽음인지 가려낼 수 없다. 죽음은 전군을 공격한다. 그러나 죽음은 무력하기 때문에 전체의 극히 일부만을 놀라게 할 뿐이다. 공동의 육신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전장에서 하나가 되어 숨쉬고 있다. 따라서 그곳에 있는 것은 불멸이다. 그것이 내 친구의 생각이었다.

 

개인의 감성과 혁명이라는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그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일은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산다는 것 또한 더 새로울 게 없다.

 

라는 글을 남기고 자살한 예세닌의 사회적 여파에 대항하여 그는 시를 지었는데, 그럴 때조차 그는 진지하고도 신중했다.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자살자와 자살에 반대하는 자들의 이 논리는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된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러나 결국 이 시를 작성한지 5년이 채되지 않아, 마야꼬프스끼 또한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이 또한 상징적이다.

 

뒷부분에 옮긴이 석영중 교수의 글은, 최근 내가 본 옮긴이의 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

자세한 설명에 적절한 표현과 비유 등이 독자에게 앞서 읽어온 책을 다시 뒤적이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옮긴이의 후기는, 그의 번역에도 신뢰를 가지게끔 만든다.

 

진정어린 관심과 애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결과물에서 드러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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