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마녀 사냥
브라이언 P. 르박 지음, 김동순 옮김 / 소나무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마녀 사냥. 이젠 이 용어가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을 가리키는 하나의 관용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유럽에서 일어난 마녀 사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정작 많지 않다.

이 책은 마녀 사냥에 관한 일종의 개설서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유럽을 이야기할 때 마녀 사냥은 빼놓을 수 없는 문제지만, 이 책의 필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다.

 

이 책의 특징은 한 가지 주장을 결코 단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무엇인가를 주장하려는 듯 하다가 결국에는 주저한다.

그만큼 마녀 사냥이란 주제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저자가 아주 조심스럽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던 것은, 매장마다 '단언할 수 없다',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등의 표현으로

조심에 또 조심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 머리 속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담박 떠올랐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미 짜여진 저자의 논리체계에 복잡하다는 마녀 사냥을 집어 넣어 단순한 결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르박이 강조하는 키워드는 1대1로 매치가 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마녀술 - 악마숭배, 중앙정부 - 지방사법기관, 엄격한 사법처리 절차 - 고문, 유도심문 등의 사용, 종교적 열정 - 이성적, 회의적 사고

 

이렇게 대비되는 요소들이 마녀 사냥의 확대 및 쇠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르박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법제도'다. 현대의 마녀 사냥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사법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자의 분석에 크게 반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애초에 그가 꺼냈던 화두-마녀 사냥은 지역, 시대에 따라 너무나 복잡한 문제라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단순화된 도식을 제시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앞서 그가 주저하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학문적 가장'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 밖에 마녀들이 당시 사회의 '희생양'이었다는 주장은 이미 너무나 많이 알려진 사실이므로 생략.)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국보법' 같은 것들이 생각났는데, 마침 르박도 거기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는다.

 

1678년 교황의 반란 음모에 경악한 영국인이나, 1919~1920년 그리고 1947~1954년의 미국 시민이 겪은 적색 공포처럼, 촌락민과 도시인은 이웃 가운데 점차 많은 사람이 심지어 지배층까지 마녀로 고발되자 공포에 빠지게 되었다. 즉 가장 가까운 친구나 이웃이 마녀일지 모르고, 사회가 완전히 악마의 수중에 들어갔을지도 모르며, 그리고 심지어 자신이 마녀로 고발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는 '빨갱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얼마전 국보법을 들이대서 모 단체와 모 교수에게 딴지를 걸었다가 법원에서 퇴짜를 맞은 사건을 알고 계시는지?

저들의 목적이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아직 빨갱이가 너네 주위에 있다는 걸 알아둬!'

고소가 기각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레드바이러스가 아직도 주변에 맴돌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할 뿐.

(거기에다, '빨갱이가 대학교수까지 하고 있었다니!'라는 충격!)

지목되면 부정해야하고 부정하지 않으면 처벌 받는, 이 프레임 자체를 깨부수어야 한다.

국보법 철폐가 바로 그 시작이다.

 

마녀 사냥에 관련된 사법 절차는 모두 임시로 긴급하게, 그리고 예외적으로 마련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회를 '정화'한다는 엄숙한 사명하에 '잔인하게',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마녀와 그들의 의식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마녀가 아니라 마녀를 처벌한 종교인, 사법관들이었다.

어떤가. 임시 법안 국보법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빨갱이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극우보수와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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