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사생활
하영휘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1,700통에 달하는 행서와 초서의 편지들. 그 편지 속에서 19세기 한 양반의 생활상과 그가 살았던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자 주문하여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정말 녹녹한 책이 아니다.

어려운 말로 태반을 채운다거나 하는 일도 없는데도 이 책을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이 '노작'이란 점 때문이리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건성으로 넘기기엔, 한 학자가 원사료를 보고 해석하고 그 해석을 다시 재구성하여 하나의 글로 만들어내는

그 힘든 과정이 내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사이 나오는 가벼우면서도 자극적인 책들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책으로 생각하고 집어들었다가는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이다.

(뒤에 달려있는 미주들도 꼬박꼬박 챙겨가며 읽었기에 읽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 노력 끝에 짧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든 작업을 해놓고서 그 작업에 타당한 '한계선'을 스스로 긋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사실 남들이 보기엔 아무렇지 않더라도, 자기가 고생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점이 가장 큰 착각이며 가장 위험한 지점이기도 하다.

필자는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끔, 자신의 노고에 대한 '애정'을 툭툭 잘 털어낸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19세기 양반 유학자의 일용품은 대부분 선물에 의하여 조달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중략)...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실생활에서 시장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극히 미미했음을 의미한다. 선물, 이른바 '도덕경제'가 시장경제의 발달을 강력히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의 삶은 공과 사로 구분되어 있었다. 학문, 벼슬살이, 사회생활은 공에 속했고, 가정생활은 사에 속했다. 그들의 공은 훤히 드러나 있는 반면, 사는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그들은 말과 행동에 늘 공을 앞세웠기에, 평소의 말과 행동은 모두 공에 속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감정까지도 공과 사로 구분하고 있었다. 혹 사적인 감정이 드러날 경우, 반드시 '사적인'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였다. 가령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사적으로' 슬펐고,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면 '사적으로' 기뻤다.

 

  조병덕의 편지를 통하여 살펴 본 19세기 조선사회의 모습이 결코 19세기 전체 조선사회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은 19세기 기호지방 양반에 관한 하나의 사례연구에 불과할 뿐이다....(중략)...

  조병덕의 눈을 통하여 본 19세기 조선 사회가 암울하고 변괴로 가득한 사회였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중략)... 만약 조병덕의 반대편에 서서 19세기 조선 사회를 바라본다면, 조병덕이 '세상의 변괴'라고 한 갖가지 모습은 바로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새로운 몸짓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몸짓은 그 전 시대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음을 조병덕의 편지는 말해주고 있다. 바로 거기에 조병덕 편지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양반'들'의 사생활'이 아니라 '양반의 사생활'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양반의 여유나 멋 같은 것 보다는, 몰락해가는 양반의 서러움과 어려움, 그러면서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어하는 양면성.

아들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들, 이 모든 것에서 투영되는 19세기 조선의 사회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기는 한데, 역시 어느 시대나 '아비의 마음'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부모 걱정 시키는 자식놈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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