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널리스트의 죽음 - 한국 공론장의 위기와 전망
손석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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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손석춘 씨의 책. 미디어 비평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가장 시장 점유율이 높고 따라서 영향력도 큰 조중동 3사의 논설과 기사가 주요 비평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제점이 가장 많기 때문. -_-

저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듯이, 신문의 논조는 각기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논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조를 숨기면서 악의적인 왜곡을 일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이 '찌라시'들을 언론이라고 불러야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중앙일보는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를 28일자 3면에 편집하면서 "평준화 지역 학력 더 높다?"라는 표제를 달았다. 물음표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처음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기사는 학계에서 "무리한 연구"라는 의견이 많다며 그 근거로 "연구에 사용된 기초 자료에 한계가 있고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보도에 대해 당사자인 김기석 교수는 강력히 반발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기자 설명회에서 '평준화가 학력 하향 평준화를 초래한다'는 지난해 KDI 논문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정부가) 자료를 안 줬기 때문"으로 이유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를 자신의 연구에 대해 한계를 토로한 것으로 오도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종전 연구의 자료 한계를 지적한 말을 이번 우리 연구의 자료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명백한 오보"라며 "평준화를 깨기 위해, 신념을 보도하기 위해 이렇게 사실을 왜곡해도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반문했으나 아마 저들은 침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냥 자기들이 의도한대로 싸지르듯이 기사를 남발한 뒤에 책임지지 않는 이 따위 것들이 무슨 신문이며 언론인가.

그리고 그런 기사들을 남발하는 것들이 무슨 기자인가.

(뉴스위크에서 이건희를 'The Hermit King'이란 타이틀로 특집보도한 것을 '수도자적 경영인'으로 옮기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논리와 분석은 없고 주장과 왜곡만 난무하는 저것들은 종이낭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철도노조 게시판에 한 노동자가 올린 글은, 저자의 말대로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찌라시. 참 반가운 단어를 들어 봅니다. 어릴 적, 논쟁의 정점에서 모두를 한방에 보내 버리는 '그거 신문(방송)에서 봤어!'를 그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보게 됩니다. 사실은 사라지고, 쟁점은 묻혀 버리는, 그래서 누구라도 쉽게 뱉을 수 있는 그 말,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한 파업!' 얼핏 돌이켜 봐도 20년은 들어온 것 같습니다. 2,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직위 해제한 것이 '법의 엄정 적용'이 돼 버리고 조합원 하나하나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 '원칙의 고수'가 돼 버리는, 충혈된 눈동자에 빰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조차 느끼지 못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그 참담한 심정의 노동자들을 마치 '패잔병' 취급하는 찌라시들을 오늘 다시 만나게 됩니다."

 

여러가지 분석도 좋았지만, 뒷부분에 수록된 '언론의 후보자 공개 지지'에 관련된 부분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고, 이 문제가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꼼꼼히 기사나 논설을 분석해나가는 방식은 마치 학부 수업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대학 초년생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특히나 '난 언론에 속지 않아'라는 위험한 믿음까지 만들고 있는 요즘 더욱 그러하다.

더군다나 미디어 악법 또한 날치기 통과되지 않았던가.

 

책의 내용에 언급된 사설이 신문 이미지 그대로 스캔되어 작은 사이즈로 삽입되어 있는데, 꼬박꼬박 눈아픈거 참아가면서 읽었었다.

그러다가 반쯤 읽어가면서 이미지로 편집되어 있는 사설 전문은 포기해버렸다. 눈 아픈 것은 참겠으나 열 받아서 읽을 수가 없었다.

조선일보 기자도 먹고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이... 라는 말 따위, 웃기지 마라. 이젠 들어주지 않을테다.

 

이건 사족인데, 손석춘 씨가 사용하는 몇몇 단어나 문체가 좀 낯설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강조점을 찍기 위해서인지 문단의 시작을 '그래서다.'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빈도가 너무 잦아서 오히려 방점의 기능을 못하는 것 같았다. 내 '글버릇'도 한 번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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