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박지우.송호창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불현듯 책상에 올려 놓은 이 책을 보고 후배 녀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왜 필요하냐고? 당연히 필요한 거 아냐?'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왜'라는 질문에 논리적/합리적으로 답할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저 '정당성'에 함몰되어 그 타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한 문제제기. 당위성의 근거 강화를 위한 심화.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는 굉장히 간단하다.

 

많은 경우, 대중의 뜻을 따르는 것은 개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들은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좀 더 활발하게 이견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같은 노력은 부분적으로는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오히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그 동안 우리가 '소수자의 의견 존중'이라는 당위성의 측면에서 이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면,

이 책의 저자는 이견을 존중하는 것 자체가 결국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동조'의 개념과 '집단 편향성'의 개념을 많이 사용한다.

'동조'는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 채 집단 혹은 권위에 억눌려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집단 편향성'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을 거칠 때 더 극단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물론 저자가 이 두 현상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현상들이 종종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한다고 본다.

이럴 때, '적어도 한 명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면 동조로 인한 실수는 모두 극적으로 줄어든다'는 점이 바로 이견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이견'의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그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조직 안에서 이견을 익명으로 밝힐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집단 편향성이 극단화되지 않도록 소수집단을 소통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만약 이것에 성공할 경우, 사회전체적으로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소수집단에게도 교조화/극단화되지 않을 기회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비록 소수의 의견이 곧바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도

 

소수의 의견이 사람들의 공적 진술과 의견에는 영향을 미치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종종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사람들이 '운동'의 한 방편으로서 생각해볼만한 부분이다.

 

저자가 로스쿨 교수인 관계로 법에 관련된 부분도 많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준비 중인 논문에도 참고할만한 부분을 종종 찾을 수 있었다.

 

법은 당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보다는 앞서 있지만, 너무 많이 앞서 있지는 않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법의 효율성은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신호를 주고, 타인들이 어떤 행동을 옳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만일 연방대법원이 성적 취향에 따른 차별이 불법적이라는 판결을 내린다면, 나는 이것이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와 같은 차별이 윤리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들이 언제나 선거 결과에 따르는 것은 아니며, 대중의 의견은 많은 경우 사법부가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사회적 인식, 혹은 관습과 법의 상관관계는 각 사안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고, 또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를 것이다.

준비 중인 논문에서 이 부분을 고려해 가면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어쨌거나 저자의 결론을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사회에 선택 가능한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기 위해서 이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선호와 가치관을 밝히는 것은 사회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중요하다'는 의견에도 100% 동의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의문점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다시 후배의 대답으로 돌아가서, 이 책은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왜'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다.

각종 실험을 분석해서 나온 결과는 어찌보면 굉장히 뻔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때로는 그 적용에도 문제가 있다.

 

우선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이견으로 인한 이익'의 사례는 단편적일 뿐이다.

이견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당연한 이유' 때문에 이런 사례의 나열은 사실상 논지의 전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쿠바 침공과 같은 사건을 동조현상이라고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이미 결과를 아는 상태에서(물론 이것은 후회하는 케네디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저자는 이 사건을 '잘못된 사건'으로 단정을 지은 채로 사례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쿠바 침공을 잘했다고 이야기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당시 '그들'에게는 쿠바 침공이 나름의 합리적 판단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그들'에게도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이 책에서 제시되는 각종 실험에 있어, 각 개인의 판단에 있어 '정보'와 '신호'의 구분이 불명확하며,

개인의 판단이 동조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보상'이 전제된 실험에서는 '비합리적' 선택이 개인에게는 '합리적' 선택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 가지 더. 극단적인 집단 편향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술을 보자.

 

여기에서 우리는 배심원단, 성난 폭도들, 정부 등이 어째서 특정 사안에 대해 유난히 엄격한 처벌을 내리는지뿐만 아니라, 분노에 기반을 둔 다른 현상들, 예를 들면 혁명과 폭력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미 분노할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서로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들이 더욱 거세게 분노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는 짧기는 하지만 테러범을 양성하는 데 있어서 분노와 집단 내의 사회적 역학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많은 논쟁의 중심에 있는 "그들은 어째서 우리를 증오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제공한다. 대부분의 테러범들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며, 무엇보다도 전적으로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양성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또한 아주 쉽게 사라질 수도 있다. …… 상대적으로 작은 변화만 있어도, 극심한 민족주의적 대립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가에서 나타나는 그와 같은 병폐는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테러 역시 이와 같이 쉽게 없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쎄. 과연 쉽게 없어질까? 왜 '사회적인 과정'을 국내적 요인으로 한정하는가?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던가?

그리고 분노한 사람들이 왜 모이게 되는 지는 생각하지 않는가?

판사들이 집단 편향성과 동조 현상을 보인다는 점을 두고 '충격적'이라고 서술하는 부분과 더불어 이 부분은 굉장히 순진해보일 뿐이다.

미국인 자유주의자에 대한 나의 삐딱한 시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것도 이견이라면 이견?)

 

미국 법조계를 분석대상으로 한 8장과 미국 고등교육의 입시사정을 두고 분석한 9장은 책 전체의 맥락에 어울리지 않아 사족 같았다.

꼼꼼한 주석과 적절한 그림과 편집 등이 마음에 들었지만, 내용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책이다.

 

한 편으로 지금 대한민국을 놓고 생각하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느낌이 사실이라면, 이 책은 그 의의가 더 커질 것이며 그것은 비극이다.

(출판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이 그저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인, 그런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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